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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Gun Mo 3
김건모
1995

by 임진모

2022.11.01

한국적 흑인대중음악을 완성한 보컬 향연의 기념비

앨범을 다시 한 번 쭉 들어본 사람들은 일제히 나지막하게 탄성을 지를 것이다. “어떻게 다 노래가 이렇게 익숙하지?” 실제와 선입견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간극이겠지만 28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레퍼토리는 '잘못된 만남' 하나로 축소되어 있을 테고 그래서 이 앨범을 1995년 그 좋았던 시절을 대변하는 격정적 하우스 댄스앨범으로 인식할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앨범에 수록된 열한 곡 중 비록 TV는 '잘못된 만남'이 독점했지만 라디오의 경우는 거의 전곡이 순차적으로 전파를 탔고 카페와 클럽 그리고 거리 등 어디에서든 앨범 <김건모3> 곡들이 어지러이 들렸기 때문에 곡목은 몰라도 어떤 곡이든 선율은 특히 코러스 선율은 즉각적 친숙함을 자극한다. 김건모의 팬이든 아니든, 들을 의지가 있든 없든 그 노래들이 도처에 산재했기에 피하려 해도 피할 수없는 반강제적인 자연입력이 이뤄진 것이다.

LP에서 CD로 음반 플랫폼의 대세가 바뀌는 시점을 수놓은, LP 시대의 마지막 궤적임을 전제하면 리마스터링을 통해 다시 접할 수 있게 된 LP는 감개무량이 아닐 수 없다. 1990년 초중반에 청춘이었던 사람들은 잔뜩 추억을 묻고 있는 그 사운드를 들으며 또 다시 격하게 감탄할 것이다. 앨범의 예술성을 꾸려내기 위해 무진 땀을 흘리며 한곡 한곡에 공을 들인 그 고통스런 창작의 노고가 천연한 광채를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11곡 모두 빼어난 예술성과 대중성을 자랑한다. 내용도 생각 밖으로 다채롭다. 들으면 '이 노래!' 하는 곡 '드라마'와 '너에게(마음으로 하는 말)'은 전작 '핑계'를 이으며 살짝 입힌 레게리듬의 맛을 전하며 '아름다운 이별', '그대와 함께' 그리고 이정식 색소폰연주가 잘 처리된 '이 밤이 가면'은 장르를 떠나 빼어난 선율만으로 그만이다.

당대 그러니까 올드 스쿨 랩 힙합 스타일을 따른 '너를 만난 후로'와 미디엄 템포의 댄스 '넌 친구? 난 연인!'도 줄기차게 전파를 탔다. 발라드는 선율로, 댄스 풍 레퍼토리는 비트로 중독성을 발휘한 셈이다. 모처럼 청취한 사람들은 머리까지 올라오는 회상의 기운과 전율을 만끽할 것이다. 단 한 곡도 버릴 게 없는 수작 모음집, 영어로 하면 베스트 컴필레이션이요, 앤솔로지(anthology)다.

일등공신은 말할 것도 없이 화려한 가창력을 선사한 김건모다. 우선 거르지 않은 칭송을 자아낸 '잘못된 만남'에서 래핑을 방불케 하는 그의 속사포 싱잉과 리듬 타기는 달인의 경지를 자랑한다. 발라드의 해석력도 '아름다운 이별', '겨울이 오면', '그대와 함께'가 증명하듯 댄스 소화력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 오선지의 선율과 리듬도 막상 가수의 능력이 동원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적정 호흡, 완급 조절, 감정의 점진적 전개, 클라이맥스에서의 에너지 분출로 표현되는 그의 경이적 가창력은 앨범 전체를 가로지르며 쉴 새 없이 끈질기게 계속된다. 듣는 사람을 쥐락펴락하면서 당대 음악수요자들의 감성체계에 일대 동요를 초래한 것이다. 이전 음악정서의 대세는 포크와 컨트리가 말해주듯 백인 대중음악에 놓여있었다. 그것이 R&B, 소울, 재즈, 펑크, 디스코, 랩 힙합 등 흑인음악으로 변색(變色)된 게 1990년대 초반에 들어와서다.

그 주역이 주요 음악문법이 되기 어려운 흑인음악을 능란하고 친숙한 매직 보컬로 자연스럽게 들리게 한 김건모인 것이다. 따라서 앨범을 '한국적 흑인음악의 완성을 이끈 보컬의 향연'으로 수식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많은 팬들이 지속적으로 현저한 감동에 사로잡히게 되자 언론은 그에게 '국민가수'란 칭호를 하사했다. 당대 최고는 서태지와 아이들이었지 몰라도 1995년만은 김건모가 패권을 장악했다.

예술성과 맞잡은 대중성은 곧바로 대중들에게 동의를 획득했다. 너도나도 심지어 신세대 음악에 불편함을 토로한 어른들까지도 이 3집 구매에 가세하면서 이 앨범이 꽂혀있지 않는 가정은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 찬란한 판매열풍의 부산물이라 할 한국 기네스북의 기록, 이제는 상식이 된 286만장의 판매량은 신작 특수의 초기기간으로 따지면 이전도 이후도 추격을 허락하지 않는다.

'잘못된 만남'과 '드라마'만으로 충분하지만 대중성 코드의 조타수는 '위대한 프로듀서' 김창환이다. 무엇이 대중들의 감성과 접점을 이루는가를 경험적으로 체득한 그는 앨범에서 단 3곡의 작곡으로 승부를 냈다. 전곡의 노랫말을 쓰면서 경제 활황으로 부유한 시대분위기와는 다른 그 속의 우울, 소외, 고독, 슬픔, 절규, 넋두리 등의 비감(悲感)에 주목했던 것도 출중한 대목이다. 신세대의 자유분방한 연애로 정의된 '잘못된 만남'에 그려진 사랑과 우정의 배신은 신나는 리듬과 처절한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그의 재기(才氣)를 확인시켜준다.

물론 '아름다운 이별'을 작곡한 김형석, '이 밤이 가면', '너에게(마음으로 하는 말)' 등 네 곡이나 쓴 댄스그룹 노이즈의 음악감독 천성일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최후의 등식은 앨범의 성공은 김건모와 김창환, 양김 콜라보레이션의 산물로 성립될 것이다. '스타는 김건모, 작가는 김창환'이었다고 할까.

마치 무궁한 우주에 큰 생명을 불어넣은 듯한 보컬의 김건모, 그리고 그 터전과 대중과의 만남을 음악적으로 주선한 김창환의 합이 다양한 스타일을 꾸려내며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걸작을 생산해냈다. 음악수요자들에게는 음악뿐 아니라 IMF 이전의, 그 호시절의 뜨거운 분위기를 명중한 시대의 생생한 기록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 음악이 기억나고 그때가 생각이 난다.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수록곡-
1. 아름다운 이별
2. 드라마
3. 이 밤이 가면
4. 너에게 (마음으로 하는 말)
5. 너를 만난 후로
6. 잘못된 만남
7. 멋있는 이별을 위해
8. 겨울이 오면 (R&B mix)
9. 넌 친구 난 연인
10. 그대와 함께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