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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시간 사이로
장혜진
2010

by 임도빈

2010.09.01

가을바람에 실려 온 추억의 메아리. 1990년대 감성의 재조명이란 포부를 내세우며 아이돌에 편중된 가요시장을 향해 반기를 든 이번 앨범은 윤상, 김현철, 김민종 등 가요계에 일가를 이룬 가수들의 노래를 환생시켰다.

사업적 판단으로 생산되는 리메이크 앨범은 도전을 기피하고 안정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몇몇 히트곡을 포장만 바꿔 재 출시하는 경향이 이를 대변하지만 데뷔 20년 만에 장혜진의 첫 '다시 부르기'는 과감하다. 남성 뮤지션의 발라드 곡만을 골라 묶어 성(性)역을 극복하는 대담함을 보인다.

< 가려진 시간 사이로 >는 원곡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자신의 색채를 덧씌웠다. 최근작인 '한 남자'는 절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오리지널의 기억을 밀어내는 역전이 일어나고, '왜'는 후반에 몰아치는 폭발적인 가창력이 원곡의 웅장한 스트링을 대체한다.

힘 있는 보이스가 바탕이 되는 곡들과 달리, '가려진 시간 사이로'는 윤상 특유의 흐릿함 속에 은폐된 예민한 감수성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춘다. 재해석의 차원에서 템포에 변화를 주고 신디사이저의 지배로부터 밴드 사운드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지만 원곡의 아우라를 이탈하지 않는다.

'끝난 건가요'와 '비오는 거리'는 돌아서는 뒤를 붙잡는 듯 호흡 조절이 인상적이고 이성렬, 이태윤, 강수호 등 유명 세션들과 작업한 만큼 세련된 기교를 선보이고 있다.

자작곡에 대한 갈망이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장혜진은 잘 해도 본전인 리메이크 앨범을 내놓으며 잔잔한 쉼터를 마련하고자 했다. 다양성 확보라는 시대적 울림에 파장을 일으키기에는 추진력이 부족한 감이 있지만 1990년대로부터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시절의 음악적 환영을 되살리려는 의지가 가요계의 일률적인 유행에 균열을 가한다.

-수록곡-
1. 가려진 시간 사이로 (원곡 : 윤상)
2. 한 남자 (원곡 : 김종국) [추천]
3. 끝난 건가요 (원곡 : 김현철)
4. 왜 (원곡 : 김민종)
5. 비오는 거리 (원곡 : 이승훈)
6. 가려진 시간 사이로 (Inst.)
7. 한 남자 (Inst.)
8. 끝난 건가요 (Inst.)
9. 왜 (Inst.)
10. 비오는 거리 (Inst.)
임도빈(do335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