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펑크(funk)와 고급 발라드의 이인삼각이라는 장혜진 음악의 거시적 공식은 사계절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번 7집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별 후유증'이나 '위기의 여자' 같은 업 템포 넘버로 분위기를 한껏 띄워놓은 뒤, '꿈의 대화'나 '완전한 사랑' 등의 슬로 발라드로 좌중을 휘어잡는다는 음악적 전략은 그 오랜 지속성으로 인해 순간 가속의 페달을 마음껏 밟는다. 중견 이상의 경력과 그에 상응하는 각고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5년이라는 시간은 수동적 공백이라기보다는 능동적 여백에 더 가까운 의미를 추수한다. 그 빈자리를 땀방울로 채워 넣은 장혜진은 버클리에서의 고된 하루하루가 7집의 원동력이었고 밑거름이었음을 조심스레 밝히고 있다. 늦게 시작한 공부였으니만큼 더 배우고 싶다는 욕심 역시 젊은 학도들에 비해 훨씬 컸을 것이다.
장혜진 콘서트를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미세한 톤 조절을 통한 능수능란한 보컬 연기는 장혜진의 지금을 위한 힘이었고 미래를 대비하는 충전 연료이기도 했다. 신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장혜진 펑크의 전도사였던 네이키드 펑크(Naked Funk)를 포함해 손무현, 주영훈의 자리를 전해성, 이현승 등의 신진 작곡가로 대체했지만 온전한 새 것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예전 것을 좀 더 다듬어 세련미를 부여하는 데에만 중점을 둔 형상이다. 자연스레 탁월한 가창력의 조탁 덕분인지 어느 곡을 들어도 장혜진스럽게 다가온다. “대중들이 예스럽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다”는 염려는 그저 기우였을 뿐, 그럴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방대한 곡 수가 부담스러운 측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서투른 완성도라고는 일체 찾아볼 수 없는 옹골찬 앨범이다. 첫 싱글로 발표한 '마주치지 말자'에서의 호소력이나 주특기인 펑크(funk) 사운드를 한층 부드럽게 방사하는 '미운 오리', 전해성 특유의 곡 전개가 눈에 띄는 '불어다오' 등에서 대번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 '꿈의 대화'에서 목소리 하중을 제거한 듯 들리는 '간청', 코러스의 캐치한 가사와 멜로디가 감흥과의 접속을 유도하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등도 돋보이는 트랙들이다.
또한 애시드 재즈('장미의 기도'), 보사노바('그림자 하나') 등으로 장르적 다양성을 꾀한 점과 중간 중간 봄여름가을겨울에 해당하는 연주곡을 끼워 넣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낸 점은 70분이라는 롱-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동인(動因)으로 명백한 작용점을 형성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스트링 편곡을 과하게 쓴 이유는 아마도 음악적 확장에 대한 발현일 텐데, 멜로디의 빈약함을 인위적으로 커버하기 위한 '떡칠'은 아니지만 감정 과잉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염려스럽다. '1994년 어느 늦은 밤'이나 '키작은 하늘'이 10년 이상이 지난 현재에도 왜 사랑 받고 있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체득의 속도는 나이와는 무관하게 욕망의 크기에 비례해 증가하는 법이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음악에 대한 불타는 욕구를 차곡차곡 삭혔을 장혜진의 이번 앨범은 '바라는 목표'와 '얻어진 결과'가 거의 합치의 수준을 쾌척하는 준작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숙련과 창의는 어디까지나 연습의 아들과 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것이 예술적 자유와 자기표현이라는 최종적 산물을 잉태한다는 점에서 다년 간의 유학 생활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 아름다운 여백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스스로 밝혔듯) 자작곡이라는 넥스트 라운드로 뻗어나가는 일뿐이다.
-수록곡-
1. Spring (작곡: 홍정수)
2. 미운 오리 (작사: 수지 / 작곡: 윤승환)
3. 이연(異緣) (임선아 / 황세준)
4. 간청 (윤경 / 박영민, 홍정수)
5. 불어다오 (전해성 / 전해성)
6.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윤경 / 이준석)
7. Summer (이은주 / 민명기)
8. 장미의 기도 (허재혁 / 허재혁)
9. 비온 뒤 (조은희 / 황세준)
10. 마주치지 말자 (최갑원 / 김도훈)
11. 그림자 하나 (조사라 / 이석주)
12. 불면증 (이은주 / 민명기)
13. Autumn (작곡 황세준)
14. 두 번 뜨는 달 (윤경 / 홍정수)
15. 왜 나만 아프죠 (김진용 / 이현승)
16. Sweet Morning (윤경 / MSC)
17. 널 위한 세상 (윤경 / 김미선, 장세원)
18. 너 떠난 후 (수지 / 홍정수)
19. 다시 찾은 겨울 (윤경 / 유해준)
20. Winter (작곡: 박영민 / 홍정수)
프로듀서: 강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