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의 신예 팝스타에서 < In The Zone >을 통해 포스트 마돈나로 입지를 달리했던 그가 머지않아 온갖 기행으로 가십지에 오르내리는 사고뭉치가 되리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은 절정의 아이돌을 극한으로 내몰았고 급기야 그의 자살을 예측하는 웹사이트까지 등장했다. 모두가 재기 불가라고 결론 내렸을 때, 그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신곡 'Gimme more'를 발표하며 귀환을 시도했지만 엉망이 된 겉모습과 조악하고 초라한 몸짓은 그가 컴백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증명했다. 어떠한 복귀의 발판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맨땅에 헤딩'하듯 앨범을 세상에 공개했다.
'정전'이라는 타이틀처럼 그의 인생 중 가장 암흑기에 제작된 앨범은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어두운 분위기를 품고 있다. 팀바랜드(Timbaland) 사단의 댄저(Danja)와 'Toxic' 등 브리트니의 히트곡을 다수 만들었던 블러드샤이 앤 아방(Bloodshy&Avant)가 주축이 되어 만든 앨범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일렉트로니카다. 전작에서 부분적으로 전자 음악을 수용했던 그는 거칠고 날카롭게 재단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웠고, 특유의 개성 있는 보컬은 짜 맞춘 듯 차가운 일렉트로팝에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시너지를 발휘했다.
자극적인 내레이션(“It's Britney, bitch”)으로 시작되는 'Gimme more'는 최악의 컴백 공연과 뮤직비디오에도 불구하고 몽환적이고 어두운 신스 사운드와 중독적인 훅으로 차트 3위를 차지했다. 최고의 팝스타에서 추락한 악동이 되어도 언제나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타블로이드와 파파라치에게 '한 판 뜨고 싶냐'며 경고하는 'Piece of me'와 전남편을 원망하며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는 앨범 내 유일한 발라드 'Why should I be sad' 에서는 자전적인 가사로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가사의 내러티브가 바뀌어도 그가 견지하고 있는 것은 귀를 자극하는 어둡고 거친 질감의 일렉트로니카다.
차세대 섹시 퀸으로 촉망받던 전작의 기조를 이어받아 'Break the ice', 'Freakshow', 'Toy soldier', 'Perfect lover' 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섹스어필 넘버들도 대거 수록됐다. '당신은 내게 지상낙원'이라고 고백하는 'Heaven on earth'와 틴 팝을 부르던 데뷔 초를 연상케 하는 'Hot as ice'가 그나마 앨범의 밝은 부분을 담당하며 음양의 조화를 꾀했다. 경쾌하게 '넌 내 레이더에 걸렸'다고 유혹하는 고밀도의 일렉트로팝 'Radar'는 짜임새 있는 구조와 사운드, 그만의 특별한 음색으로 브리트니 맞춤형 곡으로 탄생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이 앨범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무대를 선보이지 못했다. 뛰어난 퍼포머였던 그는 옛 명성이 무색해질 만큼 민망한 수준의 무대로 빈축을 샀고 가십지 등장 빈도도 앨범 발매 전과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렉트로팝의 정수를 보여준 이 앨범으로 정전(Blackout)이 끝나면 재기발랄하던 '팝의 요정'이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복귀의 희망을 보게 되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역경 속에서도 그의 감각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록곡-
1. Gimme more [추천]
2. Piece of me
3. Radar [추천]
4. Break the ice
5. Heaven on earth [추천]
6. Get naked (I got a plan) [추천]
7. Freakshow
8. Toy soldier
9. Hot as ice [추천]
10. Ooh ooh baby
11. Perfect lover
12. Why should I be 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