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트니의 신보를 둘러싼 정황은 청신호다. 첫 싱글 'Womanizer'가 1999년 데뷔 싱글 '... Baby one more time' 이후 9년 만에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고, 눈에 띠게 달라진 몸매는 부쩍 나아진 자기 관리를 암시한다. “재기냐 실패냐”를 놓고 가십성 공방이 오갔지만 두 번째 싱글 'Circus'만 호조를 보인다면 재기 쪽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 Circus >는 그러나 긍정으로 넘쳐나는 과거 청산 앨범은 아니다. 차트 기록 호조와 달라진 주변 시선이 밝은 빛을 던지기는 하나 앨범 속 가사와 곡조들에 담긴 속내는 여전히 어둡고, 비(悲)감에 젖어 있다. 이혼, 양육권 쟁탈전, 자살 소동 등,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온갖 고초를 다 겪었으니 이것이 빨리 회복될 리가 만무하다. < Circus >는 브리트니의 여전한 방황과 갈등을 담은 앨범이다.
이번에 특히 부각되는 아픔은 미디어와 대중들의 날카로운 눈에 노출되며 살아가는 '연예인'로서의 숙명이다. 'Circus'는 “이 세상엔 딱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지. 하나는 즐겁게 하는 사람(Entertain), 하나는 지켜보는 사람(Observe)”이라며 춤추고 노래하는 자신을 광대로 빗대로 있다. 'Kill the lights'에 언급되는 '사진사'(Mr. Photographer) 역시 파파라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서커스에 연예계를 빗댄 것은 대담하면서도 뼈가 있는 한 방이다. 이미 < Blackout >에서도 브리트니는 'Piece of me'에서 자신을 '미디어의 병폐', '타락한 여자' 등으로 규정지으면서 마지막에 강한 한 마디를 날렸다. “너 한 번 해볼래?(You want a piece of me?)”
그보다 전에도 < In The Zone >의 'Everytime'은 뮤직비디오에 파파라치에 쫓기다 결국 죽음을 맞는 장면을 실었다. 'Gimme more'의 뮤직비디오 역시 스스로를 폴 댄스를 추는 스트리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공격적이다. 이런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은유들 속에서 음악계와 매체 생활에 대한 환멸, 그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대중과의 소통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방황도 소재가 되고 있는데, 의식이 흐리고 무딘 것을 의미하는 'Blur'가 대표적이다. 노래가 묘사하고 있는 상황은 필름이 끊긴 숙취와 그로 인한 자괴감이다. 그 내용이 아주 절절하다.
“불을 꺼 줘 / 너무 밝아 / 내가 어디에 있는 거야 / 당신은 누구야 / 우리가 지난 밤 뭘 한 거야 / 내가 어젯밤 무얼 했는지 기억나질 않아 / 모든 것이 여전히 흐릿해”
'Out from under', 'My baby' 같은 발라드 곡들도 1집의 'Sometimes' 같은 곡처럼 예쁘게 슬프기보다는 위태롭고 안쓰럽게 슬프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음악 세계는 여전히 어두운 골이 있고, 고통스럽고, 부서진 삶을 은유한다.
신기한 것은 그러나 망가진 삶에 대비되게 음악은 늘 좋다는 것이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헤어지며 본격적으로 타블로이드 퀸으로 떠오른 2002년 이후 발표된 < In The Zone >에서도 '자위', '아침 숙취' 같은 과격한 주제들이 다뤄지긴 했으나 'Toxic', 'Everytime', 'Brave new girl' 같은 수준급 곡들이 있었고, < Blackout >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였다. 'Gimme more', 'Break the ice'는 사생활 여부에 관계없이 아주 좋은 곡들이었다. 심지어 결혼 후 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낸 듯했던 2004년 < Greatest Hits >에서도 'Do something'과 'My prerogative'는 좋음은 물론이고 히트도 했다. < Circus >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다.
첫 싱글 'Womanizer'는 짙은 전자음과 리듬 훅이 중독적이고, 발라드인 'Out from under'는 평온한 가운데 강한 슬픔이 있는 선율 좋은 팝이다. 'Mannequin'에서의 사이렌 소리와 육성의 기묘한 조화, 'Blur'의 '숙취'라는 주제에 딱 맞아 떨어지는 무드는 기발하다.
제일 압도적인 곡은 'Kill the lights'다. 전주 격의 나레이션 삽입, 1절과 2절의 편곡이 조금씩 달라지는 점층 구성, 비장하고 큰 스케일로 울리는 전자음들이 변화무쌍하게 몰아댄다. 전작의 'Gimme more'를 맡았던 댄자(Danja)가 프로듀싱한 곡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근래 발표한 최고의 곡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1집부터 함께한 동료 맥스 마틴(Max Martin)이 만든 'If U seek Amy'도 그의 녹슬지 않은 실력을 증명한다.
이 앨범엔 '삶'이 있다. 그것도 타락한 삶, 부와 인기에 탐닉해 비행을 즐기다가 미디어의 혹독한 복수에 난자당한 우리 시대 연예계의 적나라한 흥망성쇠가 있다. 음악도 그것에 맞게 쓰였다. 절절한 사연과 은근한 분노가 배어 있는 곡조, 가사, 전자음 향연 속에서 동정을 억누르기 힘들다. Songs In The Key Of 'Shattered' Life!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여전히 최상 품질의 팝 미학을 구가하고 있는 재능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대단한 동네라는 것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목 받는 스타로서의 부담감, 고통을 술로 치유하는 나날들, 그로써 더 깊어지는 가족에 대한 의지, 그리고 이것들을 고스란히 머금고 나온 수준급 스타일리시 팝들이 있다. 파괴된 삶으로 아이돌 이미지를 씻어버린 이 음악과 삶의 조화작을 들으며 묘한 감탄을 느낀다.
-수록곡-
1. Womanizer [추천]
2. Circus
3. Out from under [추천]
4. Kill the lights [추천]
5. Shattered glass
6. If U seek Amy [추천]
7. Unusual you
8. Blur [추천]
9. Mmm papi
10. Mannequin [추천]
11. Lace and leather
12. My ba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