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의 공인 절대강자' 신승훈이 마침내 아홉 번째 음악답장 <Ninth Reply>을 우리에게 부쳤다. 굳이 답장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들의 의미를 '팬레터에 대한 답장'이라고 스스로 밝혀왔기 때문이다. 1990년 11월,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한 이래 줄곧 최고의 위치를 수성해온 그는 예전처럼 신작에도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담았다.
지난 8집의 '哀而不悲(애이불비)'에 이어 이번에도 '哀而不悲Ⅱ'라는 제목의 곡을 수록한 것처럼 그는 애이불비란 정서를 음악적 정서의 기초로 삼는 것으로 유명하다. 말인 즉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는 울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그는 때문에 다른 장르로 급선회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서적 기반을 표현하기에 유리한 스타일인 발라드에 집중한다. 그는 데뷔작에서 이번에 이르기까지 이별과 그 사랑의 슬픔을 견디는 남자의 속내를 노래한다.
신보 역시 '신승훈표 발라드'라는 특허권을 소유한 그답게 발라드의 진품으로 가득하다. 타이틀곡인 '그런 날이 오겠죠'를 비롯해 '두 번 헤어지는 일', '어쩌죠', '그댈 잊는다는 게' 등등 대부분이 그만의 '아픔이 새겨진 멜로디'와 '드라마틱한 감정표현'으로 스탠더드 발라드의 절정을 선사한다. 선이 굵은 소리를 타고난 것은 물론, 탁출한 상황묘사 능력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이번은 중견의 관록을 반영, 한층 깊은 질감의 노래솜씨를 일반에게 알린다.
발라드가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7집 <Desire To Fly High>에서는 월드 뮤직을 선보이는 등, 점진적인 음악적 변화를 시도해온 신승훈의 겸손한 '실험'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哀心歌 (애심가)'에서 그는 가야금과 오케스트레이션의 조화를 일궈낸 '크로스오버 발라드'를 들려주는가 하면 '哀而不悲Ⅱ(애이불비Ⅱ)'에서는 사물놀이를 접목했다. 그가 음악적 방향을 놓고 무진 갈등했다는 작업 이전의 고뇌를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뮤지컬 가수 김선경과 함께 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뮤지컬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이전 음악에서 발견할 수 없는 참신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사람의 '목소리 연기'는 공연장에서 재현될 경우 그 감동의 질이 다를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발라드에 관한 한 가히 도사의 경지에 오른 신승훈은 예의 발라드를 고수하는 동시에 '이제 더 이상 한 곳에 머물지 않기'로 결심을 한 것 같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만약 신보의 지향점이라면 소기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다음 10집은 전작들과 더 거리를 벌릴 것이 분명하다.
거의 모든 곡으로 혼자 써오다가, 이번에는 박근태, 이준호, 박창현, 조영수 등 유난히도 외부 작곡가의 곡을 많이 수용한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지분을 타인에게 양도한 것인데, 그만큼 앨범을 하나의 색깔보다 '멀티 칼라'를 구현해 한정된 음악적 틀을 탈피하고자 한 것이다.
어쩌면 신보에 저류하는 메시지는 '신승훈표 발라드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담금질' 아닐까. 노래 잘하는 가수가 워낙 없는 시점인 탓인지 더욱 신승훈의 가창과 음색이 돋보이게 들린다. 사실 변화고 뭐고 신승훈은 노래만 들어도 즐겁다.
-수록곡-
1. Prologue - East side story
2. 哀心歌 (애심가)
3. 두 번 헤어지는 일
4. 그런 날이 오겠죠
5. Come to me
6. Love song
7. 그게 바로 사랑이죠
8.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9. 어쩌죠
10. 게으름뱅이의 어느 날 아침
11. 사랑해도 되나요
12. 그댈 잊는다는 게
13. 네 멋대로 해라
14. 그녀와 마지막 춤을
15. 哀而不悲Ⅱ(애이불비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