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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O' Clock
신승훈
2009

by 이대화

2009.11.01

최근 들어 미니 앨범으로 행보를 바꾼 신승훈은 어쩌면 각 앨범마다에 작은 '장르 소품집'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008년 가을 < Radio Wave >를 내놓으며 모던 록을 시도했던 그가 이번엔 알앤비 풍의 5곡이 채워진 앨범 < Love O' Clock >을 들고 나왔다.

솔직히 말해 신승훈의 창법은 알앤비 풍의 노래에 꼭 들어맞아 어울리진 않는다. 그는 필이 진하기보단 맑고, 기교와 바이브레이션보다는 절제와 직선의 우아함이 장점이었다. 장르적으론 오히려 포크나 정통의 팝에 어울리는 창법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모던 록'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도전'인 걸까?

앨범을 들어보면 바꾸고 적응해내는 의미에서의 도전이라기보다는 '해보는' 것에 포인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달콤하고 녹아들 것 같이 진한 필을 내줘야 할 노래들에서 신승훈은 그저 예전처럼 덤덤하게 부른다. 하지만 이것도 이색적이다. 이 부조화의 조화를 신승훈은 한 번 노려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수록곡의 완성도와 그 편곡 컨셉이 작금의 음악계에 대해 주는 교훈이다. 타이틀곡 '사랑치'는 악보만 놓고 본다면 지금껏 우리가 들어온 발라드와 별반 다를 것 없을지 몰라도 초입부터 흐르는 브라스 선율이 진한 감탄을 자아낸다. 우아하고 폼나게 선을 그려가는 것에서도 그렇지만 이것이 우리 가요계에선, 특히나 요즘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방식이어서 어떤 측면에선 신승훈의 목소리보다도 더 귀가 끌린다. '올해의 조연'이랄까.

어쿠스틱을 사운드 컨셉으로 잡고 품에 감싸 안듯 따뜻한 소리들을 뽑아낸 것도 신승훈답다. '사랑치'를 비롯해 '그랬으면 좋겠어', '지금, 사랑할 시간', '온도'에서 흐르는 통기타, 건반, 마이크 등 기타 음향들의 내츄럴한 조합은 부드럽고, 섬세하다. 요즘 그의 행보는 자기 시대의 음악 사랑법을 너무 디지털 환경에만 길들여진 요즘 팬들에게 가르쳐 주는 선생님 같기도 하다. 물론 그가 지금의 아이돌, 일렉트로니카 대세를 무조건 멀리하거나 꾸짖는 건 아닌 듯 보인다. 완연한 테크노 클럽 댄스 '이별할 때 버려야 할 것들'을 시도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아마도 거장의 여유일 것이다.

'사랑치'는 제목이 기발하다. 음치도, 박치도 아닌 사랑에 서툴러 고생하는 사랑치란다. 유명 작사가 양재선이 만든 '온도' 역시 제목부터 내용이 무엇일지 호기심을 갖게 한다. < Love O' Clock >은 트랙 순서대로 '바람', '설레임', '어리석음', '버림', '외로움'의 감정을 컨셉 형식으로 담은 앨범이라 한다. 작곡은 신승훈이 모두 도맡았다.

알앤비 창법의 대가는 아닐지 몰라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 편안함과 부클릿을 전혀 참고하지 않아도 술술 들리는 가사 전달력만으로도 신승훈은 이 앨범에서 충분히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도 과시하고 있다. 그가 보유한 전작들의 전설에 견주면 평작일지 몰라도 2009년의 시점에선 단연 발군이다. 무엇보다 시류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여유와 관록이 묻어 있어 좋다.

< 3 Waves Of Unexpected Twist > 시리즈가 '반전'을 콘셉트로 한다고 했던가? < Love O' Clock >은 그 시리즈가 '신승훈답지 않으면서도 신승훈다운 것'을 노린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수록곡-
1. 그랬으면 좋겠어 (작사 : 심현보 / 작곡 : 신승훈)
2. 지금, 사랑할 시간 (양재선 / 신승훈)
3. 사랑치 (심현보 / 신승훈) [추천]
4. 이별할 때 버려야 할 것들 (양재선 / 신승훈, 이현승)
5. 온도 (양재선 / 신승훈)
이대화(dae-hwa8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