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7일 밤, 록 페스티벌이 한창인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난데없이 애국가 떼창이 울려 퍼졌다. 갑작스레 시작된 전자기타 연주를 따라 목청이 터져라 애국가를 내지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 날의 헤드라이너 ‘Muse’를 위해 모여든 열혈관객이었다. 눈부시게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밴드, 영국이라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음악팬들이 유난히도 애정을 쏟는 밴드 Muse. 팀의 리더 매튜 벨라미가 깜짝 선물로 쏘아 올린 애국가는 그렇기에 더 짙은 감동을 이끌어냈다.
‘사실은 Muse가 국내 밴드가 아닐까?’하고 사람들은 이제 귀여운 농담도 주고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해를 더할수록 배가되는 인기와 스케줄을 감안하면 이렇듯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참으로 고맙게도 부를 때마다 척척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준다. 이 얼마나 훈훈한 광경인가. 물론 처음부터 이런 그림이 연출되리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잠시만 몇 년 전 앞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2007년, Muse가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절대 다수의 공감’으로 통하는 아찔한 위치는 아니었을 때다. 일설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의 첫 공연에 대한 멤버들의 자세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옆 작은 나라 정도로 'South Korea'를 인식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 대형 밴드들과 입장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달라야 할 이유도 없다.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투어 일정을 소화하는 김에 한국 공연을 진행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한 번의 선택은 꽤나 찰진 인연이 되었으니 실로 운명적이라 할 만하다. 이 모든 결과는 세계 어느 곳에도 밀리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우리나라 관객의 열정적인 매너 덕택이리라. 이제 그 뿌듯함을 마음껏 되새김질 하셔도 좋다.
2013년 여름, 잠실에서 펼친 공연은 말 그대로 Muse다운 웅장함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여섯 번째 정규 앨범 < The 2nd Law > 발매 이후 우리나라에서 갖는 첫 라이브라 팬들의 기대감은 말할 것 없이 높았겠지만 슬프게도 단독이 아니었기에 < The 2nd Law > 앨범에서는 4곡 정도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매튜 벨라미의 절절한 외침이 서울의 하늘을 찌르기 약 40일 전인 7월 6일, Muse는 이탈리아 로마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 The 2nd Law World Tour >의 하루를 보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장비와 조명, 영상이 동원되었는데 이번 투어가 지금까지의 공연 중 가장 크고 자랑스러운 쇼가 될 것임을 멤버들은 입 모아 말했다. 그 결과의 하나로 로마 실황은 최근 세계 각지의 영화관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화질인 4K(ULTRA HD)-블록 버스터급 영화와 같은 퀄리티-로 상영되었다(속상하게도 국내 상영 소식은 없다). 투어는 계속되고 있으며 2014년 4월까지의 대략적인 스케줄도 공개되었지만 우리에겐 아직 그럴듯한 희소식이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번 투어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은 명백해졌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로마 실황의 트랙리스트를 체크하는 것이다.
오프닝곡 ‘Supremacy'에 이어지는 곡은 가장 최근에 싱글로 다시 발표된 ’Panic station'이다. Funk 리듬의 댄서블한 넘버로, 우리나라에서 연주하지 않았던 곡이기에 특히 주목하는 시선이 많을 듯싶다. (DVD로 감상하는 경우)이 곡에서는 무대 뒤편 전면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을 집중해서 보기 바란다. 프란시스 교황과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미대통령 오바마를 비롯한 각국 수상들의 모습이 귀여운 카툰으로 둔갑해 등장한다. 이 유명 인사 캐릭터들은 심지어 곡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데, 프란시스 교황 캐릭터가 춤을 시작할 때 놀라고 즐거워하며 함께 몸을 흔드는 관객들 모습이 흥미롭다.
떼창의 향연이 전율을 선사하는 ‘Resistance', 사운드만으로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완성한 'Animals', 매튜 벨라미의 피아노 연주와 목소리가 청중을 압도한 ’Explorers'..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가다 'Madness'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관객과의 호흡이 돋보이는 뮤즈 전매특허 곡들에서도 마찬가지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Starlight'에서 들려오는 수만 관객의 1-2-1-3 박수는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기까지 하다.
로마 실황은 시작부터 끝까지 공연의 전부를 오롯이 담아내지는 않았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연주한 27곡 중 13곡을 골라내어 재배치했다. 좋은 점은 틀을 잡아 매끈하게 편집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서사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Muse는 어느덧 라이브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는 록밴드 U2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극적이며 과감한 스케일의 공연을 만들어내고 있다. 투어의 규모 뿐 아니라 관객 동원력과 수입 면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U2의 길을 닮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도전은 더 광범위해질 것이다. 감탄을 날숨처럼 쉴 새 없이 뿜게 하는 이번 공연이, 어느 날 순식간에 작은 한 점으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영광의 기록이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세워졌으면 한다. 무한한 가능성의 능력과 조건을 고루 갖춘 밴드 뮤즈에게 부릴 욕심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 Live At Rome Olympic Stadium CD/DVD 음반 해설지를 수정한 글입니다.
- 수록곡 -
CD
1. Supremacy
2. Panic station [추천]
3. Resistance
4. Hysteria
5. Animals [추천]
6. Knights of Cydonia
7. Explorers [추천]
8. Follow me
9. Madness [추천]
10. Guiding light
11. Supermassive black hole
12. Uprising
13. Starlight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