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레스크”(Burlesque)는 화려한 조명의 무대 위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버라이어티 쇼를 일컫는 하나의 장르적 의미다.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버레스크와 보드빌극장(Music hall) 그리고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의 요소에서 유래되었다. 1860년대 대중화되어 야한 코미디와 여성들의 스트립쇼로 발전했고, 20세기 초에 들어 풍자극과 행위예술(performance art), 보드빌 쇼, 유흥을 혼합한 전형적 형태로 재현되었다.
성적 농도 짙은 노골적 의상과 다양한 코미디 연기를 특징으로 하는 본격 성인오락물로 손님을 접대하는 버레스크 쇼는 카바레와 클럽, 보드빌 극장 등지에서 상연되며 대중적 인기를 누려왔다. 야하게 가무(歌舞)하는 저속한 스트립쇼나, 광대와 같이 익살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파는 희극, 또는 유명연기자나 가수들의 독무대로 한정 짓기보다 <버레스크>(Burlesque)를 특징짓는 쇼의 질료들은 육감적으로 풍만한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을 기본으로 시사적인 풍자극을 보여주는 공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버레스크>에서 보여 지는 이미지는 사후의 천국처럼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최신식 유흥가 선셋 스트립의 뒤편에 위치한 클럽은 기괴한 환상적 차원의 공간감을 제공한다. 무대는 정통카바레에 딱 맞는 크기로 처음 공개되지만 나중에 12명 이상의 무희들이 계단을 통해 내려와 군무를 펼칠 만큼 충분한 공간으로 확장된다. 거기서 관객들은 모두 무대 위 무희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응시하고 있는 보조출연자들로 어두운 객석에서 어슴푸레한 형체들로 나타날 뿐이다.
영화는 버레스크 라운지에 꽂힌 앨리(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아이오와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대도시 로스앤젤레스를 찾은 시골처녀. 그녀는 때마침 테스(셰어)가 노래 “Welcome to burlesque'(버레스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공연할 적시에 입장한다. 여기서 셰어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고정된 이미지처럼 보인다.
앨리(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테스(셰어), 노래와 연기를 모두 소화한 두 여우주연을 제외하면 영화에서 배역을 맡은 인물들에게 춤과 노래는 대개 별개로 다뤄진다. 앨리가 놀라운 가창력으로 청중들의 절찬을 받으면서 버레스크의 분위기를 새롭게 반전시키기 전까지 무대 위에서 쇼를 하는 여배우들은 단지 춤추는 바비인형에 불과하다. 재즈와 스탠더드 명곡들의 연주 테이프에 맞춰 그저 립싱크를 할 뿐이다.
버레스크의 무희들에게 테스는 대모(大母)와도 존재다. 그녀에게는 클럽 공동소유자인 전남편 빈스(피터 갤러거)가 있다. 그런데 한 때 부부였던 연인으로서 이들에게는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전남편 빈스의 역할은 클럽을 허물고 콘도를 세우기를 원하는 부동산개발업자 마커스(에릭 데인)에게 버레스크를 매도할 수 있다는 것을 간절히 희망하는 것이다.
클럽 바텐더 잭(캠 지갠뎃)는 눈에 아이라인을 여자처럼 짙게 한 것으로 봐선 미심쩍지만 성적으로는 이성애자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앨리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공유하도록 허용하지만 타지 뉴욕에 약혼자가 있기 때문에 쉽사리 성적교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곡을 쓸 줄 아는 잭의 음악적 재능으로 말미암아 두 남과 여의 진한 정적 소통이 이뤄지지만 말이다. 한편 무대감독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션(스탠리 투치)은 테스와 함께 잊을 수 없는 하룻밤을 보낸 것을 예외로 하곤 동성애자다.
버레스크의 최고 스타인 냥 제멋대로인 댄서 니키(크리스텐 벨)은 시골뜨기 앨리가 자기에게 여장을 좋아하는 호모라고 말하자 그 즉시 불같이 화를 낼 정도로 다혈질 여성. 앨리의 가창력 발휘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 위기에 처한다. 배우 겸 사교댄서 안무가에 컨트리 싱어까지 다재다능한 줄리안 허프(Julianne Hough)의 출연은 의외의 즐거움이다. 조지아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그녀는 플롯 상에서 매혹적인 나이스 걸로 자신의 몫을 매우 인상적으로 해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보이기도 하는 앨리는 버레스크에 첫 발을 내딛던 그 날 흑인여성이 입구 계단에 서있는 것을 본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 있는 미소를 보낸다. 관객들은 이후로 이 여성을 반복해서 대하게 된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대화도 없는 그녀는 클럽가족의 일원으로서 본적은 있지만 들은 적은 없는 흑인여성의 역할을 가졌다. 그녀는 불평불만도 없다. 다른 댄서들도 거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전혀 이득을 챙기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재워주고 먹여주기만 해도 괜찮다는 식? 여기가 무슨 “신기생뎐”의 부용각도 아니고.
영화에는 다수의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형식적이다. 음악적으로나 출연배우 개개의 인물됨으로 보나 스토리 전개와 탄탄히 엮여나가는 맛이 덜하다. 그래서 더더욱 셰여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쇼 케이스에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문 스트럭>(Moonstruck, 1987)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셰어와 그녀의 워너비를 자처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모녀와 같은 연기와 화려한 쇼 무대는 전적으로 영상음악 수준의 즐거움을 준다.
아길레라는 그녀의 초반부 장면들에서 자연스러운 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가 매혹적인 스타로 변모해가는 순간, 그녀는 덜 흥미진진한 인물로 점점 더 전락하게 된다. 애당초 그녀는 고아였고 그것은 그녀의 배경에 깔린 이야기를 단순화해버린다. 그녀의 깜짝 기지로 위기의 버레스크가 정상화된다는 것도 사실상 조금 난데없어 수긍하기 쉽지 않다.
인도의 볼리우드 뮤지컬에 필적하는 대단원의 막 장면에서 섹시한 여우들이 완벽한 코러스라인 대형을 갖추고 여주인공은 계단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모습을 드러낸다. 수컷무희들이 떼 지어 내려온다. 대체 그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리 없다. 어디로 갈 건지도 묘연할 따름이다. 이 클럽은 아주 작고 무대의상으로 꽉 들어찬 무대 뒤 의상실이 하나 있을 뿐인데 귀신이 곡할 노릇.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데 모든 것이 집중된 뮤지컬영화의 매무새에 시청각적 필이 꽂혔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일 수 있다. 그 외에 거의 두둔할 수 없는 빈정거림의 탐닉에 침을 뱉어도 좋다. 글쎄, 아무렴 어때, 좋다. 셰어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두 톱스타가 펼치는 초특급 버라이어티 쇼면 족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이 장편 뮤직비디오는 기대 이상일 수 있잖은가.
시각적 유혹 이상의 음악들이 필연적으로 함께 예술적 작품성을 공유하는 <버레스크>의 사운드트랙 송들은 버라이어티뮤지컬쇼의 운명을 타고난 영화의 본질적 차원에 따라 다채롭다. 사운드트랙에 실린 노래들을 별도로 발췌해 담은 앨범에는 크리스티나 아겔레라의 8곡과 2곡의 셰어의 노래가 실렸다.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한 아겔리라의 앨범 < Bionic >(2010)과 달리 <버레스크>에서 그녀의 타고난 목청은 그 빛을 발할 기회를 맞는다. '복고스타일에 대한 도전'을 증명한 < Back to Basics >(2006)의 연장선상에서 그 자체로 광채를 발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아길레라는 영화제목인 버레스크를 무대삼아 고전명곡들을 줄줄이 커버했다. 에타 제임스(Etta James)의 'Something's got a hold of me'와 'Tough lover', 메이 웨스트(Mae West)의 'A guy what takes his time'을 멋지게 소화하면서 명가(名歌)에 깃든 음악 혼을 정확히 포착해냈다. 단순히 카피하는 수준을 초월한다. 그녀가 원가창자인 'But I am a good girl' 또한 오래전 그 때의 감성을 재생한다. 한편 마를린 맨슨(Marilyn Manson)의 히트곡 'The beautiful people'의 코러스를 차용한 'Express'에서는 현재적인 흐름의 클럽감성이 발산되고 마돈나(Madonna)의 'Ray of light'와 함께 클래식 사운드의 곡조와 음색대비를 이룬다.
가수와 연기 양면에서 엄밀히 대선배로서 크리스티나 신예연기를 이끄는 셰어(Cher)의 가창은 <버레스크>에서도 유감없는 기량을 발휘한다. 버레스크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의미의 'Welcome to Burlesque'는 그녀가 주인장인 클럽 버레스크에 입장하는 느낌이나 기분을 확실히 전달하고 'You haven't seen the last of me'는 애조 띤 감정을 담고 있으면서 강력한 호소력을 전한다. 살면서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의 솔직한 심정을 곡조에 실어낸 노래다.
특히 이 가창곡은 영화 주제가의 전설적인 히트제조기 다이엔 워렌(Diane Warren)이 다시 한 번 위력을 발휘, 골든 글로브(Golden Globe)시상식에서 음악부문 주제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오직 두 곡의 노래에 자신의 가창력을 실었지만 셰어는 후배 아길레라와 조화를 이루면서 또 다른 전율을 선사한다. <버레스크>에 쓰인 노래들을 담아낸 사운드트랙앨범은 섹시하고 신나며 고전적이면서 동시대적인 멋과 감흥이 적절히 혼합된 기쁨이다.
그야말로 미국 시카고를 무대로 한 "올 댓 재즈"와 라이자 미넬리(Liza Minnelli)의 프랑스식 카바레에 최근의 현대식 전자음악을 융합한 버라이어티 사운드 곡조 상에서 소울과 블루스의 감성이 짙은 목청으로 감동적 순간들을 자아내는 아길레라의 'Lady Marmalade'!라고 단정지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수록곡-
1. Welcome to Burlesque – Cher
2. Something's Got a Hold on Mes – Christina Aguilera
3. Tough Lover– Christina Aguilera
4. Long John Blues – Kristen Bell
5. Diamonds – Christina Aguilera
6. You Haven't Seen the Last of Me – Cher
7. Express – Christina Aguilera
8. But I Am a Good Girl – Christina Aguilera
9. A Guy Who Takes His Time – Christina Aguilera
10. Bound to You – Christina Aguilera
11. That's Life – Alan Cumming
12. Spotlight – Christina Aguilera13. Makin' plans - Miranda Lambert
14. The beautiful people(from Burlesque) - Marilyn Manson
15. My drag - Andrew Bird and James Mathus
16. Don't touch - Chris Phillips and the fireside orchestra
17. Poor boy blues - Chris Phillips and the squirrel nut zippers orchestra
18. That fascinating thing - Chris Phillips and the squirrel nut zippers orchestra
19.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Swing cat mix) - Marilyn Monroe and Jane russell
20. Black bottom stomp - Wynton Marsalis
21. Long jone blues - Megan Mullally
22. Curly's blues - Chris Phillips and the squirrel nut zippers orchestra
23. Welcome to burlesque(Tango) - Chris Phillips and the petrojvic blasting company orchestra
24. Nasty naughty boy - Christina aguilera
25. Wagon wheel watusi - Elmer bernstein
26. Ray of light - Madonna
27. New orleans bump - Wynton Marsalis
28. Suits are picking up the bill - Chris Phillips and the squirrel nut zippers orchestra
29. Knock you down - Keri hilson
30. Jungle berlin - Joey Altruda
31. Animal - Neon trees
32. Hot stuff - Donna Summer
33. Forever young - Alphaville
34. Danke Schoen - Wayne Newton
35. More than a feeling - Boston
36. I melt with you - Modern English
37. Show me how you burlesque - Christina Aguilera
38. Fade into you - Mazzy star
39. Sitting pretty - Chris phillips and the squirrel nut zippers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