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도 리메이크 음반이다. 아마도 흘러간 유행가들을 다시 불러 모은 리메이크 음반 트렌드의 시초는 이수영이 아니었을까. 물론 김태영 등의 가수가 몇 년 전부터 훌륭한 재해석 음반을 내놓기도 했지만, 성공적으로 상업적 복고의 유행을 일으켰던 것은 이수영의 음반이 시작인 듯하다. 그 유행에 린도 동참한다. 별 성의 없이 그 유행을 좇기만 하고 있다면 '또 리메이크야..'하고 한숨이 나올 법도 하겠지만, 그래보이지는 않는다. 나름의 소박한 정성과 성실이 담겼다. 린의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다만 굳이, 또다시 엇비슷한 리메이크 음반의 수순을 밟아야만 했는지에 의문이 생긴다. 이미 옛 추억, 향수들이 많이도 불러일으켜진 상황에서 또다시 어떤 감정을 끌어내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안타깝다. 한 곡 한 곡 정성을 실어 곱게 부른 노래들이지만 아련한 추억의 공감대 형성의 힘이 조금 달리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가요 팬들은 이미 옛날 노래 다시 부르기 유행에 충분히 익숙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큰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음반에 들인 정성은 희석되고 자칫 그저 시류에 편승한 음반들 중 하나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워진다. 타이틀곡인 김혜림 원곡의 '날 위한 이별'만 들어봐도, 린이라는 가수가 탄탄한 노래 실력으로 정성들여 곡을 소화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도회적 알앤비 사운드로 변모한 원미연 원곡의 '이별 여행'도 흥미롭다. 하지만 여러 번 써먹힌 리메이크 바람이 이제 더 이상 신선하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다. 정재일이 다시 조립해본 '천일동안'과 같은 돋보이는 노력들이 진부한 것으로 치부될까 걱정이다.

게다가 린 개인이 쌓아온 커리어(?)를 살펴볼 때도 그렇다. 이제까지 3집을 내고 차분히 내공을 쌓아온 성실한 가수이기는 하지만, 글쎄, 이 리메이크 음반이 그의 디스코그래피에 어떤 알찬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까? 리메이크 음반을 내는데 어떤 자격 요건이 딸려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수의 꿈을 키워준 노래들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나름의 정성이 빼곡해 보이기는 하나 핀트가 어긋난 것 같아 못내 아쉬운 음반이다.

-수록곡-

1. Go back (Misty memories) (작사 : 린 / 작곡 : 김진훈)

2. 이별 여행 (김기호 / 신재홍)

3. 날 위한 이별 (박주연 / 김형석)

4. 난 남자가 있는데 (박진영 / 박진영)

5. 바보 같은 미소 (임기훈 / 임기훈)

6. 단 한 번의 사랑 (이희진 / 김형석)

7. 보이네 (김명곤 / 김명곤)

8. 그대 안의 블루 (이현승 / 김현철)

9. 키 작은 하늘 (이승호 / 서영진)

10. 보고 싶은 얼굴 (이주호 / 이주호)

11. 미련 (최준영 / 김건모)

12. 천일동안 (이승환 / 김동률)

프로듀서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