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국내에서 발매된 엘튼 존(Elton John)의 43번째 정규 앨범 <Peachtree Road>의 성적부진은 우리나라 팝음악 팬들의 청취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 음반이 발매되기 2개월 전인 9월 17일(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지 정확히 16년이 되는 날)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엘튼 존의 첫 내한공연이 펼쳐졌지만 사람들은 그의 신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Peachtree Road>가 공개된 이후에도 국내 레코드 매장에서 신보보다는 그의 히트곡 모음집이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것이 대중들은 낯선 신곡보단 익숙한 노래에 관대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번 작품은 엘튼 존의 1970년대 분위기와 가깝지만 그의 음색은 예전과는 멀다. 미국 남부에 위치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고향 투펠로를 소재로 한 'Porch swing in Tupelo'에서의 고음은 머리카락의 가르마처럼 갈라지며 'They call her the cat'에서는 도로의 병목현상처럼 막힌 목소리가 부담스럽다(60을 앞둔 노병에게 절정의 목소리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1975년에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Philadelphia freedom'의 초반부 현악기 연주가 떠오르는 'Answer in the sky'와 1972년에 8위를 기록한 'Honky cat'이 연상되는 로큰롤 트랙 'They call her the cat(두 곡 모두 제목에 고양이가 등장!)', 그리고 데뷔곡 'Your song'의 피아노 인트로와 근접한 'Too many tears' 등은 엘튼 존의 창작 농축도가 예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하지만 뉴 래디컬스(New Radicals)의 'Someday we'll know(나중에 맨디 무어와 홀 & 오츠가 리메이크)'와 유사한 멜로디의 'All that I'm allowed'와 'Answer in the sky', 'Weight of the world' 같은 곡들은 엘튼 존다운 멜로디 감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랜 작사 파트너 버니 토핀(Bernie Taupin)의 가사도 편하다. 이 둘의 합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Peachtree Road>는 매력적이다.
엘튼 존 본인이 프로듀스 한 <Peachtree Road>는 다른 음반들에 비해서 조금 더 미국적이다. 스틸 기타를 사용해 컨트리를 시범한 'Turn the lights out when you leave'를 비롯해 가스펠 코러스를 끌어들인 'Porch swing in Tupelo' 등이 대표적인데 이것은 영국 출신인 그가 미국의 대중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곧 환갑을 바라보는 엘튼 존이 자신에게 나침반 역할을 한 미국 음악에 보내는 감사의 뜻이라고 할까?
<Peachtree Road>에서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히는 대표적인 싱글을 선택하긴 어렵지만 전체적으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 확실히 엘튼 존의 저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수록곡-
1. Weight of the world
2. Porch swing in Tupelo
3. Answer in the sky
4. Turn the lights out when you leave
5. My elusive drug
6. They call her the cat
7. Freaks in love
8. All that I'm allowed
9. I stop and I breathe
10. Too many tears
11. It's getting dark in here
12. I can't keep this from you
프로듀서 - Elton J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