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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et man: The Definitive Hits
엘튼 존(Elton John)
2007

by 임진모

2007.06.01

1973년 'Daniel'을 청소년기에 처음 들었을 때 '도대체 전주를 무슨 악기로 연주한 걸까' '어떻게 사람이 이런 멜로디를 쓸 수 있는 걸까'하는 경이감에 귀가 번쩍 뜨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어서 후렴 코러스가 너무도 강렬한 'Goodbye yellow brick road'를 비롯해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Philadelphia freedom'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Don't go breaking my heart' 그리고 결정적인 1976년 겨울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등 명품 멜로디와 리듬이 해마다 무차별로 쏟아질 때는 정말 그로기 상태, 실신 지경에 빠졌다.

'아니 어떻게 따발총처럼 연달아 이렇게 죽이는(killing) 곡들을 토해낼 수 있는 건가' 누구든 음악 팬이라면 저절로 입에서 '이 사람, 천재구나!'라는 감탄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엘튼 존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신경을 쓴 사람은 어느 나라에 살든, 다들 그렇게 감동과 경이의 연발 사격을 당했다. 1980년대, 1990년대가 되어 세대가 달라졌어도 그에게 받은 충격은 한결 같았다. 30년의 세월이 그렇게 흘러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를 경(卿), Sir로 부르며 경배하고 있다.

1947년 영국 미들섹스에서 3월25일에 태어난 그는 올해 60살 환갑을 맞았다. 이를 자축하고 기념하기 위해 생일에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친구들과 팬, 유명인사를 모시고 공연을 치렀다. 그는 지금까지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무대를 가진 아티스트다. 올해 60번째가 된다. '60살의 나이, 60번째의 스테이지'를 기념하는 것이라면 음반이 빠질 리 없다. 당연히 활동이력을 집대성한 히트 베스트 앨범이 필요하다.

그런 앨범이 없었던 게 아니다. 국내에도 2002년 한해 < The Very Best Of Elton John >과 < Greatest Hits 1970-2002 >라는 타이틀로 두 종류의 베스트 컴필레이션 앨범이 출시되었다. 게다가 두 종 모두 CD 2장의 더블 앨범이었다. 엘튼 존 마니아들은 하지만 총 30곡이 넘는 곡들이 수록된 이 앨범들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인기차트에 명함을 내민 곡들 말고도 엘튼 존이 국내 팬들과 접속해온 별도의 명곡들이 부지기수이기에 그것들을 모은 CD가 최소한 한 장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Empty sky' 'First episode at Hienton' 'Sixty years on' 'Love song' 'Funeral for a friend' 'Have mercy on the criminal' 'We all fall in love sometimes' 'Tonight' 등을 어찌 잊으랴.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CD 3장은 되어야 한다.

그런데 CD 1장의 베스트앨범이다. 2장도 불만스러운데 17곡밖에 들어있지 않은 한 장짜리 컴필이라면 엘튼 경(卿)의 거대 음악영토를 개괄하기에는 태부족이다. 왜 이런 축소지향을 구현한 것일까. 엘튼 존의 팝에 젖어 살아온 475, 386세대를 생각하면 1장의 포맷은 마니아 레퍼토리는커녕 기존 히트 곡마저 빼야 하는 폭압이겠지만 신세대로 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차트10위에 오른 곡도 무려 26곡이나 될 만큼 그의 히트 레퍼토리가 많은 것은 알지만 그의 전성기를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엘튼 존의 히트 명부를 전부 꿰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혹하다. '결정적인 것들'로 숫자를 줄여줘야 한다. 아무리 몰라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전제를 단 것으로 보인다. 앨범 타이틀 'Definitive'가 증명해준다.

엘튼 존은 콘서트의 골든 메뉴인 'The bitch is back' 'Island girl'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Empty garden' 'Blue eyes' 'Nikita'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The one' 등 신체의 일부 같을 히트 레퍼토리를 잘라내 가며, 안타까움을 짓눌러가며 신세대를 위한 '교양 필수'만을 엄선했다.

의외의 선곡은 2001년에 발표한 앨범 < Songs From The West Coast >에 수록된 'I want love'. 새천년에 들어서도 자신의 궤적이 만만치 않음을 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2006년에 발표한 앨범 < The Captain & The Kid >에 수록된 'Tinderbox'를 포함시키면서 이 컴필레이션의 첫 싱글로 내놓았다. 이제까지의 베스트와 달리 2000년대 곡을 포함해 자신의 활동 40년, 나이 60년의 훑도록 배려한 것이다.

신세대들이 천재 엘튼을 알기 위해 30장이 넘는 정규 앨범을 다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정본이 있어야 한다. '비록 적은 수지만 이 정도면 내 음악을 밀도 있게 알 수 있는 지름길이다!' 손자를 배려하는 할아버지의 너그러운 마음이 가져온 산물이다. 이제 후대 역사는 엘튼 존의 필수 넘버를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로 기록할 것이다. 앨범의 진정한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록곡-
1. Bennie & the jets: 1974년 1위를 기록한 라이브 실황 히트작. 'Crocodile rock'에 이은 두 번째 전미 넘버원이다. 1970년대를 수놓았던 엘튼의 독특한 멜로디 전개 술을 자랑한다.
2. Philadelphia freedom: 테니스 남녀 성대결을 펼친 당대 테니스 여걸 빌리 진 킹과 그의 팀 '필라델피아 프리덤'에게 헌정하는 곡. 도입에서부터 상쾌한 리듬이 지배한다. 1975넌 1위를 기록했다.
3. Danie: 흔히 '공항의 이별 발라드'(a plane leaving ballad)로 통하는 곡으로 낭만적 선율이 극치를 이룬다. ARP 신시사이저 사운드, 플루트 멜로트론으로 빚어낸 반주 또한 절정의 미학을 선사한다. 1973년 2위 기록.
4. Rocket man: 엘튼 존의 별명을 만들어준 곡. 기량으로 보아 '피아노 맨'이어야 하지만 빌리 조엘이 제목으로 써서 그 별명은 빌리 조엘의 것이 되었고 대신 엘튼 존은 로켓 맨. 우주에서 외롭게 비행하는 우주인의 사색을 담았다.
5. I guess that's why you call it blues: 1981년부터 톱10히트곡이 나오지 않아 조금 부진해 보였던 상태를 깨고 1984년 초 전미차트 4위의 빅 히트를 기록했다. 엘튼 존의 특기는 탄탄한 선율구조임을 다시금 증명해준 곡
6. Tiny dancer: 원래는 마니아 레퍼토리였지만(1972년 41위) 2000년 평론가 출신 영화감독 카메룬 크로우 감독의 <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에 삽입되면서 다시 인기를 누렸다. 6분15초의 긴 곡이지만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7.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1974년 2위를 기록한 자신의 곡과 1992년 초 조지 마이클과의 라이브(1위) 등 두 차례 차트의 영광을 누린 곡. 여기에는 오리지널이 실렸다. 서핑 그룹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멤버들과 작업해 당시 화제를 모았다.
8. I want love: 2001년 앨범 < Song From The West Coast >에 수록된 곡. 전미차트에서 히트하지 못한 곡인데도 여기에 수록한 것은 2000년대에도 자신의 '현재진행형'임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9. Candle wind: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처럼 차트에 두 번 올라 1987년 멜버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호주공연 버전(6위)과 1997년 다이애나 황태자비 죽음에 부친 '97(1위) 모두 빅 히트했다. 이번 베스트에는 마릴린 먼로에게 바치는 내용의 오리지널을 수록하고 있다.
10. Crocodile rock: 1972년에 발표되어 최초의 전미 넘버원을 기록한 록 성향의 넘버. 달리는 듯 경쾌한 피아노 연주가 매력이다.
11. I'm still standing: 록 넘버. 1983년 12위에 그쳤으나 '나는 여전히 강건하다'는 메시지 때문에 엘튼 존이 아끼는 곡이라고 한다.
12.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업 템포 록 송. 폭력을 수긍하는 듯한 메시지로 인해 국내에선 금지되었다. 명반 < Goodbye Yellow Brick Road >에 수록된 곡으로 가장 먼저 싱글로 발표되었다. 1973년 12위.
13. Your song: 엘튼 존을 상징하는 명곡. 정제된 사랑의 언어가 빛나는 가사와 멜로디 모두 아름답고 수려하다. '당신이 세상이 있으니 얼마나 멋진 삶인가!' 엘튼 전설의 포문을 연 곡으로 2002년 영화 <물랑루즈>에서 이완 맥그리거와 연주곡으로 사실상 테마로 쓰여 다시금 사랑받았다. 그의 자랑. “앨범에 꼭 몇몇 내 생각에 잘된 곡들이 있는데 'Your song'은 당신이 피할 수 없는 곡이다. 곡도 가사도 아름답다. 난 이 곡을 5분 만에 썼고 2시간 만에 녹음했다.”
14.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때로 애절한 엘튼 선율 감수성의 절정으로 국내 팬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은 곡. 1976년 6위. 2000년대 들어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어 신세대들도 익숙한 곡.
15. Sacrifice: 신기하게도 엘튼 존은 모국 영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90년에 발표한 이 곡으로 처음 영국 차트 단독 1위의 기쁨을 맛본다. ('Don't go breaking my heart'가 먼저 1위에 올랐지만 키키 디와의 듀엣이다). 미국에서는 18위. 발라드그룹 '마이클 런스 투 록'의 멤버들이 “이 곡을 듣고 우리도 이런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놓은 게 기억난다.
16. Goodbye yellow brick road: 엘튼 존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곡. 너무나도 탄탄하고 절묘한 선율구조, 강력한 보이스와 코러스라인 등 완벽에 가깝다. 1973년 2위 기록. 이 곡이 1973년에 만들어진 곡이라고 누가 믿을 텐가.
17. Tinderbox: 지난해 발표한 앨범 < The Captain & The Kid >에 수록된 곡. 엘튼 존 전형적인 패턴의 곡으로 앨범의 싱글로 발표되었다.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