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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브로콜리 너마저
2024

by 신동규

2024.10.13

내가 하려던 말이 마침 대중이 듣고 싶어 하던 말이었고, 당장 마음에 꼭 들어앉은 음악이 적연히 세상에 필요했던 음악인 상황만큼 대중음악가에게 주어진 값진 축복이 있을까. 브로콜리 너마저는 어느덧 20년에 가까워진 세월 동안 한결같이 청춘들의 삶 속에 스며들었고, 그 곁을 지키며 이러한 영광을 유지해 왔다. 우린 < 보편적인 노래 >에 위로를 받았고, < 졸업 >으로 눈물을 흘렸으며, < 속물들 >로 성숙을 얻었다. 아마 그들 또한 그랬으리라. 


5년 만에 발매한 신보는 여유와 긴장의 아슬한 줄다리기를 반복했던 그간의 음반과 달리 시간의 여백을 내걸고 느긋하게 전진한다. 분명 좋은 접근이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특유의 평온한 보컬과 완곡한 전개가 높아진 발라드 트랙 비율에 맥을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웹툰 삽입곡으로 이미 발매된 바 있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기점으로 앨범이 끝날 때까지 한 꺼풀씩 소리를 벗어가며 결국 피아노 한 대와 겹겹이 쌓인 합창만으로 끝을 맞이한다. 마지막 곡 ‘영원한 사랑’이 올해 봄에 있었던 공연 속 관객의 목소리를 넣어 의미를 더한 트랙인 건 알지만 급작스러운 소강의 인상은 전반적인 강약 조절의 실패로 비친다.


만약 의도적으로 작품의 틀을 데크레셴도 모형으로 잡았다면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높은 스케일이 필요했다. < 졸업 >의 ‘환절기’처럼 선이 굵은 음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하고 견고한 곡의 부재가 주는 불균형을 의미한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매력은 듣는 이를 어루만지는 일상의 낱말과 단순해 보이지만 굉장히 세밀하게 주조된 사운드가 주는 깊은 여운에 있다. 그러나 <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에선 감정의 호소를 위해 피아노에 자리를 내준 얇은 두께의 기타와 팝 요소에 제 풀이 꺾인 모던 록 사운드가 이미 과반을 차지해 그 두 가지의 조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치밀한 소리 계산으로 그려진 고운 형상은 몸을 감췄지만 아름다운 가사는 여전히 우릴 반긴다. 시간의 속새질에 닳아버린 오랜 꿈 하나를 ‘신발의 목적’에 비유한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 인디 신을 오랫동안 사랑해 온 팬이라면 흐뭇한 미소가 일었을 ‘요즘 애들’, 여름의 향기에 세월의 덧없음을 덧댄 ‘풍등’까지 은약(隱約)한 노랫말은 이완된 감정에 적절한 긴장을 불어넣는다. 소박할지라도 울림을 전하는 문장과 반가운 기억을 상기시키는 두 보컬의 교차에 철저히 기댄 음반이다. 그 이상의 감흥은 전적으로 음악에서 오기에 아쉬움은 배가 된다.


언제까지나 청춘의 대변인으로 위치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선보인 이전의 음악은 계속해서 젊음을 쓰다듬을지 몰라도 앞으로의 행보를 위해선 다각도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수작을 남긴 베테랑 밴드라면 거쳐야 할 일종의 관문과 같다. 그러나 변화에는 도전이 필요하고, 도전에는 무모함이 필요한 법. <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 속에도 변전의 움직임이 보이지만 다소 소극적인 모습으로 그간 해왔던 안정감과의 저울질에 실패한 모양이다. 브로콜리 너마저에게 받았던 위로의 폭만큼이나 대중이 기다려 줄 여지는 충분하다. 이미 뒤집어진 모래시계, 머지않을 다음 챕터를 기다려본다.


-수록곡-

1.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 [추천]

2. 요즘 애들 [추천]

3. 되고 싶었어요

4. 윙

5. 풍등 [추천]

6. CM

7. 세탁혁명 (Feat. 최엘비)

8.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9. 다정한 말

10. 너를 업고

11. 매일 새롭게

12. 영원한 사랑

신동규(momdk778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