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음악에서 가사의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시(詩)와 맥을 같이 하는 그 본래의 의미가 무색하게, 노래 가사들이 깊이를 잃은 지는 이미 오래다. 내용면에서도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없는 음악들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그러한 사랑 노래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몇 번을 들어도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려운 가사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중독성 위주의 '후크송' 시대를 지나 요즘은 독특한 컨셉으로 눈길을 끄는 '콘셉트 송'이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다. 멜로디와 조화를 이루는 가사의 내용이 몇 번에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음악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에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은 어린 시절의 친구처럼 편안하고 반갑다. 이들의 음악은 보기 드물게 가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이들의 노랫말에서는 자신들과 같은 젊은 세대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고 또한 듣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드러난다. 데뷔 앨범인 <보편적인 노래>에 이어 2010년에 발표한 이 앨범에서도 '미친 세상'에서의 삶과 그 속에서의 감정적 단절로부터 발생하는 근원적인 슬픔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위로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열두시 반'의 지친 귀갓길에서 이들이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사에서 드러나는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기분에 빠진 우리들'을 위로하는 것이 곧 이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다. 두 타이틀 곡 '졸업'과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을 비롯하여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울지마', '마음의 문제', '환절기' 등 대다수의 수록곡을 통해 일관된 주제의식을 이어가고 있다. 진심어린 관심이 없이는 포착해낼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이들의 위로는 잠 못 드는 새벽 '다섯시 반'의 마음에 대한 다독임으로 마무리된다.
이 앨범을 발표하기 전, 멤버들이 함께 소속사를 떠나는 동시에 첫 번째 앨범에서 메인 보컬을 맡았던 계피가 팀에서 빠지고 팀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덕원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팀의 체제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한결같다. 누군가가 알아주고 감싸 안아주길 바라면서도 서로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이들의 음악은 이해하고 있다.
과잉된 감정으로는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없다. 이들의 음악에서는 폭발적인 가창력이나 화려한 기교는 배제되어있다. 모든 트랙에서 덕원과 류지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담담함을 유지한다. 사운드나 곡 진행 또한 독특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러한 무난함과 담담함이 오히려 더 깊이 있는 다독임과 이해의 소리로 다가온다. 수많은 20대 대중들이 이들의 음악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다.
-수록곡-
1. 열두시 반
2.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추천]
3. 변두리 소년, 소녀
4.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5. 을지마 [추천]
6. 마음의 문제 [추천]
7. 할머니
8. 이젠 안녕
9. 환절기
10. 졸업 [추천]
11. 다섯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