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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
2008

by 이민희

2009.03.01

그들은 미안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고, 사랑했지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면전에서 하지 못했던 아쉬운 이야기들을 뒤늦게 털어놓는 순간, 그들은 우리의 친구가 된다. 우리 가슴에도 잊혀질 만할 때쯤이면 다시 떠오르는 쓰리고 아픈 후회 하나 정도는 있기에. 우리는 언젠가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여봤던 '속좁은 여학생'이자 '하지 않았다면 좋은 말들'을 떠올리며 몸부림치다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본 적 있는 고독한 영혼이다. 다만 우리는 외로움과 슬픔을 자신의 언어나 특기를 동원해 낭만적으로 표현하고 나누는 건강한 해소에 그리 익숙하지 않을 뿐.

브로콜리 너마저의 데뷔 앨범 <보편적인 노래>는 그들이 관찰했던 '어떤 사건'의 회고를 넘어, 우리가 경험했을 '어떤 기억'을 환기하는 후일담에 가깝다. 이들이 추구하는 보편성이 작편곡이나 연주 및 가창력 같은 음악의 영역이라고 과연 우리는 확신할 수 있을까. 보편적 홍보와 보편적 활동이 동반되지 않는 한 이들의 음악적 명예는 작은 시장에서 얻은 일관된 지지 정도로 한정된다. 2007년 발표했던 EP에 호응했고 정규 앨범을 기대했던 '아는 자들'의 축을 넘어서는 특별한 힘과 매력은 '보편적인 이야기'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슬픔에 동의하는 순간을 지나 위로와 만족으로 이어지는 시간을 만난다. 그 노래 속의 화자들을 우리는 본적이 있다. 무언가 갈망했고 후회했던 그들은 가련하게도 우리 자신이다.

노래는 이야기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수수하고 새침하게 풀어낸 사운드의 연속이다. '춤'의 연주는 가사를 따라 춤을 추다 너의 발을 밟지는 않을까, 눈을 뜨면 너와 내가 꾸는 꿈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당장의 행복과 불안이 함께 움직인다.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을 묘사한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기교 없는 보컬은 외로움과 후련함을 두루 담은 진솔한 수단이며, 뜬금없이 과감해서 중독적인 '봄이 오면'의 랩은 후회와 체념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적합한 장치다. 한편 EP로 먼저 만났던 '말' '앵콜요청금지' 등은 보다 매끈해진 레코딩으로 밴드의 진전을 은근하게 속삭인다.

노래마다 깃들어 있는 수많은 망설임과 후회처럼, 사실 그들은 보편적인 노래의 기준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음악적 보편성이란 대중성의 다른 이름이거나 정교한 프로듀싱의 산물일 수 있기에.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질문이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춤을 추다가도 불안하고 슬픈 표정을 차마 숨기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벽을 때려볼까 마음먹었다가도 손 아플까봐 걱정하는 '가장 보통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브로콜리의 미련한 그러나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은 그들의 수수한 사운드에 귀를 활짝 열게 만든다. 그리고 가사를 음미하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으로 작지만 소중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우리는 참 오랜만에 말이 들리는 노래를 만나고 있는 중이다.

-수록곡-
1. 춤
2.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추천]
3. 봄이 오면 [추천]
4. 두근두근 [추천]
5. 속좁은 여학생 [추천]
6. 2009년의 우리들
7. 말 [추천]
8. 안녕 [추천]
9. 편지
10. 앵콜요청금지 [추천]
11. 보편적인 노래
12. 유자차
이민희(shamc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