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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旅程)
캐스커(Casker)
2012

by 허보영

2012.11.01

일렉트로니카는 가슴으로 반사되어 퍼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듣고 돌아서도 파장이 몰려오지 못한다. 그러나 캐스커는 이러한 갈증에 단비를 내리며 반복으로 인해 자칫 단순할 수 있는 전자음의 굴레에 고독함을 불어 넣어 무게를 실었다.


여성 보컬 ‘융진’의 색깔이 이러한 콘셉트를 충족시킨다.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말이 듣기 좋은 창법으로 통용되듯, 융진의 차분한 호흡과 고음에서의 간드러짐이 앨범 콘셉트의 고독과 결핍된 애정을 뚜렷이 하고 있다. 타이틀 'Undo'에서 두드러지듯, 나만 그리워 한 것은 아닌지 섭섭함을 내비추지만 곧장 그리움으로 내달린다. 사랑을 갈구하는 메시지에 앙증맞음이 있다가도 차분한 목소리 너머 적적한 기운이 감돈다.


그리움을 애써 묻으려하는 ‘편지’와 남성 보컬 이준오가 부른 ‘P'는, 원망과 세월의 야속함도 모두 억누른다. 하지만 자꾸만 맴도는 미련에서, 사랑만큼 완벽한 절제는 없음을 느끼게 한다. 영화 <용의자 X>의 삽입곡으로 쓰인 ‘천 개의 태양’은 상대로 인해 타버리고 부수어진 마음을 뒤늦게 가다듬는다. 몽환적 사운드와 융진의 냉랭한 호흡이 슬픔을 증폭시킨다.


단번에 떨어져 나갈 만큼 자신을 모질고 잔인하게 대해달라는 곡 ‘나쁘게’는 웬일로 미련이 없다. 냉정하고 침착한 보컬은 냉소적일만큼 차가움이 돈다. 바쁜 일상 속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낯설음을 전하는 ‘Blossom'도 음산한 잔상이 깃들어 있다. ‘인정’의 그리움과 따뜻함을 간구한다.


이렇듯 캐스커는 여전히 치유할 길 없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 고독, 상처, 그리고 애정을 모두 흡수하며, 신선하지만 자칫 깊이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는 전자음의 성공적인 결합으로 서정적인 조율을 일궈낸다. 인간 개인의 쓸쓸함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과 고독을 소통하며 어루만져준다.


-수록곡-

1. Intro

2. The healing song

3. 나쁘게 [추천]

4. Wonderful

5. Undo [추천]

6. 잔상(Inst.)

7. 편지

8. P

9. 천 개의 태양 [추천]

10. Face you

11. 여전히

12. Blossom [추천]

허보영(stylish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