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닉 듀오 캐스커(Casker)가 다시 한 번 감성적 내구성을 높였다. 라운지 스타일의 '쿨'을 강요하지 않아도 여전히 무표정한 이들의 음악은 현대인들의 가려진 외로움을 표방한다. 장르에 대한 고정적 틀이 동요할수록 그 안에 담긴 감수성은 흔들림 없는 기반을 공고히 다진다.
기계음과 어쿠스틱 악기의 혼용, 여성 멤버 융진의 습도 높은 음색과 리듬에 비해 부각되는 선율로 여타의 일렉트로닉 밴드와는 다른 영역을 딛고 있다. 캐스커는 클럽에서 소비되는 전자음악의 패턴을 따르면서 격렬한 댄스가 아닌 서정적 참여를 유도한다. 다섯 번째 앨범 < Tender >도 이 흐름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대표곡 '꼭 이만큼만'은 끝에 다다른 사랑을 뒤돌아보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담고 있다. 애써 지어낸 원망과 위안으로 미련을 덮으려하지만 이별의 순간은 반복적인 피아노 터치로 점차 다가온다. 단호한 샘플러와 음을 길게 지속하는 바이올린이 흔들리는 결단을 대변하고, 융진의 음색은 체념한 듯 아련하다. 헤어짐의 복잡한 심정을 담은 가사는 윤상과 콤비플레이로 유명한 작사가 박창학이 도움을 줬다.
'안녕'은 하우스의 업템포로 심장박동을 가속하고 '고양이편지'에선 어쿠스틱 기타의 보사노바 리듬에 첨가되는 드럼 & 베이스 비트가 경쾌하지만, 앨범 전체적으론 'Tender'의 의미와 같이 유연하고도 유약한 감성이 주를 이룬다. 자칫 답습으로 그칠 수 있는 꾸준한 자기 영역 구축은 '마이 앤트 메리'의 정순용,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의 참여로 색다른 분위기를 시도한다. '나의 하루 나의 밤'에서 정순용은 황량한 도시인의 감성을 노래하고 '놓아줘'에서 조원선의 음색은 호소력 있는 흐느낌을 갖는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는 융진의 도약이다. 비로소 그는 영점조절을 완성했다.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창법은 이제 생기 있는 무표정, 혹은 다채로운 무채색을 발한다. 이 모순적인 형용은 '안녕'의 청량함, 'I loved you'의 극적인 감정 분출, '꼭 이만큼만'에서의 절제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네게 간다', 'Missing'로 융진은 싱어송라이터로서 또 하나의 수확을 거둔다.
준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즘과의 인터뷰(2009.02)에서 영국 출신 일렉트로닉 듀오 '프루프루(Frou Fruo)'를 언급했을 때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신작의 커버가 그려지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양분한듯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있지만 다시 보면 등을 기대고 의지하고 있는 '人'(사람 인)처럼, 캐스커의 음악은 융진과 준오의 동등한 지위 점유와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추진력을 마련했다.
어김없이 컴퓨터 비트는 유려한 선율에 가려진다. 가슴을 타격하는 비트나 귀를 휘감는 효과음 같은 외형이 아닌 내면의 울림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앨범을 관통하는 무표정한 얼굴 뒤에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연약한 감정의 배려가 기다린다.
-수록곡-
1. Intro
2. 안녕
3. 꼭 이만큼만 [추천]
4. 나의 하루 나의 밤 (feat. 정순용)
5. 야간비행
6. 고양이편지
7. Missing
8. 물고기
9. 놓아줘 (feat. 조원선) [추천]
10. Regret
11. 네게 간다 (Piano Ver.)
12. I loved you
13. Your song (Fanny Fink Remix)
14. Hidden Track 1
15. Hidden Track 2
16. Hidden Track 3
17. Hidden Track 4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