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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Korea?
체리필터
2002

by 이경준

2002.08.01

-자신감에서 비롯된, 업그레이드의 정수-

혹 아직도 이들을 기억하는 자 있는가? 데뷔 당시, 무대를 종횡무진 하던 여성 보컬 조유진의 카리스마와 강력한 연주로 자우림에 필적하는(혹은 능가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던 체리필터가 2년 만에 새 음반 <Made In Korea?>를 발표했다. 그간 체리필터는 남자 멤버들의 군 문제로 잠시 개점휴업을 하고, 홍일점 조유진 홀로 일본에서 활동해왔다.

자우림 이후 여성보컬을 전면에 내건 그룹들이 대거 등장했음에도, 실제로 뚜렷한 궤적을 남긴 팀은 거의 없었다. 태반은 공력 부족으로 나가떨어졌고, 뒷심이 달려 도중에 주저앉고 마는 밴드들도 적지 않았다. 급기야 이들을 '곱살스런 여성 멤버가 하나 낀 고만고만한 밴드'로 취급하는 시대착오적 시각도 생겨나게 됐다.

체리필터의 신보 <Made In Korea?>는 이런 편견에 정면으로 맞설 만한 빼어난 텍스트를 제시하는 음반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제목에서부터 심기일전한 면모가 느껴진다.

우선 조유진의 변신에서부터 진일보한 음악파일이 드러난다. 그녀는 이번 음반에서 오르고 내리는 기교를 장착, 팔색조 보컬을 건져 올렸다. 혹시 2000년에 내놓은 1집 <Cherry Filter 001>의 'Head-Up' 같은 하드코어 넘버를 바랐다면 일찌감치 기대를 접는 것이 좋다. 그녀의 보컬은 더 이상 남성 보컬의 이미테이션에 머물지 않기에. 여전히 파워풀하지만 수련의 경지가 더해져, 한층 맛깔스런 어조를 구사하고 있다.

타이틀곡으로 내정된 '낭만 고양이'는 그녀의 달라진 보이스 톤을 실감할 수 있는 트랙이다. 감성의 파도를 자유자재로 타며, 페이스를 조절하는 노련미는 분명 데뷔작에선 볼 수 없었던 테크닉이다. '내 안의 폐허에 닿아', '내게로 와'에서 관찰되는 통제력도 녹록하지 않다. 예리한 날을 들어 돌진하다가도, 이내 기세를 접고, 나긋나긋한 모습을 비추는 그녀의 목소리는 거부하기 어려운 야누스적 매력을 발산한다.

그러나 <Made In Korea?>가 뛰어난 앨범이라고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곡의 패턴이 다각화되어 있다는 데 있다. 쉽게 물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처음에 기대를 모았던 밴드가 한순간에 좌초하는 가장 큰 원인은 주무기의 과다노출이 빚어내는 정형화, 천편일률적 도식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그 '고착화의 덫'을 템포와 강약, 분위기를 계속해서 전환하며 솜씨 좋게 피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전쟁과도 같은 주류의 늪지를 헤쳐 나가기 위한 그룹의 생존술이다.

이는 분명 '이번 한 번'을 무사히 넘어가기 위한 단편적 노림수가 아니었으리라. 1년 넘도록 준비한 내용물은 곱씹어 들을수록 그간의 노력의 흔적이 묻어난다. 땀이 동반된 영민함이기에 더욱 평가해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멜로디와 보컬, 연주 모든 면이 빼어나다. 준비기간 동안의 선택작업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튼 제대로 필터링 된, 안심하고 들을 수 있는 록 음악이자,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부터 비롯된 제대로 '업그레이드' 된 후속작이다.

한 마디 더. '국민 펑크 밴드' 크라잉 넛의 한경록이 '낭만 고양이'의 작사를 해주며, 돈독한 우애를 과시했다.

-수록곡-
1. Blood of witch
2. Cherry filter
3. 낭만 고양이
4. 내안의 폐허에 닿아
5. 내게로 와
6. 하와이안 블루스
7. Yesterday
8. Special
9. 점프
10. 랄랄라
11. 나를 왜
12. 갈매기 조나단
13. Independent you
14. Lucky shadow
이경준(zakkrand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