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펑스 인터뷰
딕펑스(Dick Punks)
딕펑스는 내내 뜨겁진 않았어도 최전선에서 파릇한 감각을 퍼트려 왔다. 수많은 밴드 음악이 젊음을 무성히 대변하는 요즘이지만 2013년부터 일찍이 외쳐 온 ‘Viva 청춘’은 아직도 빠지지 않는 대표곡이다. 경쾌한 멜로디를 접고 돌아온 ‘안녕 여자친구’는 한 번쯤 품었을 이별의 조각을 어루만지며 마음을 적셨다. 작열하는 기타 대신 선명한 키보드를 내세운 흔치 않은 구성으로 4명의 친구는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다.
신보 발매를 앞두고 만난 이들은 유쾌하면서도 한결 진중했다. 변화와 고민을 달라진 사운드로 풀어낸 데에선 만족감이, 영향받은 음악을 읊었던 순간에선 과거를 향한 애정도 묻어났다. 어느덧 15년 차, 이번 기회를 또 다른 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는 연륜이 쌓여도 꺼지지 않은 청춘의 기류였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던 날씨에도 잔잔한 불꽃처럼 타올랐던 딕펑스의 이야기를 전한다.
딕펑스 하면 자연스레 ‘청춘’이 떠오른다. 활동한 지 오래됐는데 내부적으로 그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한가.
김태현: 예전에도 청춘이라는 주제를 언제까지 소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Viva 청춘’이 27살 때 발매됐는데 당시엔 그런 노래를 하는 게 잘 어울렸고 그때밖에 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고 지금까지 불러도 변함없이 우리 옷 같다. 사실 청춘이라는 주제가 많은 걸 관통하지 않나. 사랑, 이별, 힘듦, 기쁨 등 다채로운 면을 내포하니 큰 주제 안에서 계속 가도 되겠다 생각했다.
김재흥: 청춘이 꼭 어린 시절에 국한되는 단어는 아니다. 누군가에겐 지금일 수도 있지 않을까. 20년 가까이 밴드로 호흡을 맞춰와서 그런지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듯하다.
와중에 멤버 교체나 탈퇴가 없는 비결이 있다면.
박가람: 일을 제외하고 사생활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한다.
김현우: 각자가 큰 욕심이 없다. 무조건 자기 의견을 고수하기보다 서로에게 제안하는 식으로 가다 보니 잘 맞는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 고충은 없었나.
김태현: 유독 밴드가 유지해야 하는 기준이 좀 더 엄격하다. 솔로 가수는 여러 장르에 도전하면 그만큼 다양한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아티스트로 비치는 반면 밴드는 초심을 잃었다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을 만들며 일정한 틀에 갇히지 않을까 고민이 컸다.
김재흥: 한 곡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린다.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기에 의사 결정 과정이 필요하고 모두가 연주와 녹음에 관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음원을 완성하고 무대에서 공연할 땐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된다.
김현우: 한계를 깨기가 어렵다. 각자 해온 방식이 있어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거나 적응하는 데 더딜 때가 있다.
그럼 딕펑스를 지금까지 움직인 원동력이 궁금하다.
김재흥: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아직 다 못한 듯한 그 느낌. 꽤 긴 시간 음악을 했지만 아직 딕펑스로 할 수 있는 시도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박가람: 팬분들 덕분이다(웃음).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다.
김태현: 새로운 제작자들을 계속 만나는 복도 있다. 팀이 오래되면 마땅한 소속사를 못 찾는 케이스도 많다. 다행히 이번에 호기심 스튜디오와 연이 닿았고 그런 흐름이 이어져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대표곡 ‘Viva 청춘’ 덕분에 재미있게 활동했다. 부를 때마다 좋은 고마운 노래다.
새 앨범 < Spectra : RGB >를 어떻게 평가하나.
김태현: 만족도가 높다. 계획한 사운드를 최대한 구현하려 노력했는데 원하는 대로 잘 나왔다.
김재흥: 역시 만족스럽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넣을 수 있도록 세심히 접근했다.
김현우: 사실 처음엔 조금 어려웠다. 회사를 옮겨 새로운 사람들과 맞추면서 일정 부분 타협도 필요했는데 결과물이 너무 잘 나왔다. 과정을 돌아보니 많이 성장했더라.
‘기타리스트 없는 밴드’가 팀의 특징인데 확실히 기타 사운드가 도드라진다. 의도한 부분인지.
김현우: 이미 쌓인 이미지가 있어서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 인디 시절 이야기다. 본격적으로 방송에 나가면서 그 특징을 고집한 적은 없다. 지금은 어떻게 사운드를 발전시킬지, 태현이 목소리를 더 돋보이게 할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 Spectra : RGB >의 자세한 의미는 무엇인가.
김태현: 다섯 트랙 장르가 모두 다르다. 음악적인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어 제목을 ‘Spectra’로 지었고 스펙트럼의 색을 구성하는 요소에서 따와 각각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에 해당하는 곡으로 나누어 RGB 3부작으로 내보내게 되었다.
확실히 장르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김태현: 엄청 많았다. 대중들이 딕펑스라는 팀을 떠올렸을 때 가볍고 신나고 재밌다는 이미지가 견고하지 않나. 그런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무거운 분위기도 많다. 영원히 20대도 아니고 언제까지 달릴 수만은 없는데 보여지는 인상과 우리 모습 사이에서 나름의 딜레마를 겪었다.
김현우: 마냥 어린 시절과는 달리 명분이 생기더라.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비트나 사운드 하나하나 나노 단위로 보면서 미세하게 접근했다.
박가람: 모아놓고 한 번에 들어보면 어느 정도는 다 딕펑스의 결이 있다. 한 앨범에 존재하는 게 처음엔 이질적일 수 있어도 다섯 곡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수록곡을 소개해달라.
김재흥: ‘Light up’은 기운을 북돋는, 타오르는 불꽃 같은 노래다. ‘Flashback’과 ‘Below the stars’는 관계와 일상을 다뤘고, 새로 공개된 ‘무지개’와 ‘Ignite us’는 서로 엄청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내면을 성찰한다. 특히 ‘Ignite us’는 ‘Light up’과 소재를 공유하지만 아직 죽지 않은 부활의 불꽃이라 여기면 좋다. 이번 앨범을 잡아주는 수미상관 구조다.
박가람: 아까 말했던 결이 이런 느낌이다. 제목도 일부러 맞췄다.
‘Ignite us'를 B쪽에 배치한 이유가 궁금하다. 비슷한 분위기의 두 곡을 R 파트로 묶을 수도 있었을 텐데.
김태현: 사운드보단 가사에 중점을 뒀다. 모두 자전적이고 힘든 시기를 견딘 후 찾아오는 희망을 그렸다.
김재흥: 내면 성찰이 핵심이다. 파란색이 되게 섬세한 색 아닌가. 어떻게 보면 회복력을 갖춘 색깔이기도 한데, 다루는 메시지가 이런 특성과 닿아있어 B에 넣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트랙은 무엇인가.
김태현: ‘Light up’. EP의 시작을 잘 끊어줬고 노래도 편곡도 모두 흡족해서 이후 방향성에 확신이 섰다.
알고 들으면 좋은 감상 포인트가 있나.
김현우: 전체적으로 빈티지 테마 한 스푼에 곡마다 시대성이 있다. R 영역이 1980년에서 1990년을 담았다면 G 부분의 ‘Below the stars’는 1970년대 밴드 클라투(Klaatu)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 B 파트에서도 고려하며 들어보길 바란다.
작업을 하며 자주 들은 음악이 있는지.
김현우: 앞서 말했던 1970년대 밴드 클라투의 < Hope >. 작업 당시 폴 매카트니가 썼던 호프너 베이스도 사용하며 그 시대를 상기했다. ‘무지개’는 서던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같이 일본 음악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형적인 한국식 발라드가 아닌 거다.
선공개한 ‘Flashback’에선 제목처럼 회고가 주를 이뤘다.
김태현: 변화도 생각도 많은 복잡한 시기다. 여러 경험을 통과하며 생긴 감정이 음악에도 저절로 묻어나더라. 옛날만큼 가벼움을 쫓기엔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음악적, 메시지적으로 어떤 부분을 돌아봤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준다면.
박가람: ‘Flashback’을 녹음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 중 하나가 기타였다. 이전엔 그런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앨범을 내본 적이 없어 프로듀서님과 거듭 논의했다. 피아노를 강조한 과거와 다른 도전이었는데 잘 나와 만족스럽다.
김현우: 가사 측면에서 딕펑스와 잘 어울리는 트랙이다. 세월이 지나며 과거와 현재 사이 무엇이, 왜 변했을까 돌아보게 되더라. 가장 우리다운 음악이라 봐도 무방하다.
김태현: 역시 가사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옛날엔 다 가져야 했다면 나이가 든 지금은 좋아하는 걸 위해 몇 개는 놓을 줄도 아는 삶의 태도로 바뀌면서 곡과 결이 비슷해지더라. 그래서 노래도 뭔갈 보여주려고 꾸며 부르기보다 담담하게, 말하듯이 툭툭 내뱉어보자 마음먹었다.
김현우: 옆에서 지켜봐도 태현이가 많이 고심했다. 힘을 빼고 온전히 표현해야 해서 개인적으로 제일 어려웠다.
다루는 정서의 측면에서 외부적으로 봤을 땐 꽤 급격한 변화다. 합의한 결과인가.
김태현: 그보단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우리끼리 속마음을 자주 털어놓진 않지만 다들 친구라 공감하는 지점이 비슷하다. 암묵적인 합의가 아닐까.
김재흥: 여러 해를 보내며 우리가 흐르고 있는 방향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모르게 체감한다. 작사나 작곡을 하든 합주를 하든 삶이 녹아들어 애써 말하지 않아도 서로 동화되는 것 같다.
이번 EP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부분은.
김재흥: 딕펑스가 여러 색깔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과거 작업물과 이 앨범, 그리고 미래를 연속적으로 바라보니 한 작품의 시놉시스 같더라.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앨범이면 더 좋겠다.
앨범 홍보와 마케팅 계획도 궁금하다.
김태현: 음악 방송을 오랜만에 나갈 예정이고, 주위 아티스트들과 함께 챌린지도 할 것 같다.
김현우: 연말 공연을 준비하면서 전국 투어로 가닥을 잡는 중이다.
근래 밴드 신을 향한 관심이 이전보다 커졌다. 눈여겨보는 후배는 누구인가.
김현우: 고고학이다. 자기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흐름이 좋았고 사운드에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다른 팀과 비교하면 특히 건반 주자가 밴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눈여겨봤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12년 전 첫 인터뷰에서는 각자 좋아하는, 영향받은 아티스트로 퀸(김태현), 시저 시스터즈(김현우), 비틀스(김재흥), 미카(박가람)를 뽑았는데 최근 기준으로 다시 뽑아줄 수 있나?
김태현: 최근엔 미세스 그린 애플 같은 일본 밴드다. ‘무지개’를 녹음할 땐 어울리는 보컬 톤을 찾기 위해 오랜만에 도니 해서웨이와 루더 밴드로스의 앨범을 들었다.
김현우: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대니 엘프먼, 존 윌리엄스 노래를 즐겨 듣는다. 20대 초반부터 영화음악을 좋아해 장르의 폭이 넓어졌다. 또 건반을 치다 보니 원래도 화성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이 가는데 요즘은 옛날보다 더 그렇다.
김재흥: 돌고 돌아도 비틀스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 계속 찾아보는 편이다.
박가람: 일본 밴드 중 오피셜히게단디즘, 바운디, 녹황색사회를 고르고 싶다. 피아노 록이 우리 음악과 맞닿아 있어 듣기 시작했는데 연주도 좋다.
진행: 임진모, 손민현, 임동엽, 정하림
정리: 정하림
사진: 정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