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럽다. 아무리 여섯 번째 정규작을 앞두고 몸풀기 겸 발매한 믹스테이프라 해도 최소한의 무기도 없이 전쟁터에 나서는 것은 겸손의 부재가 아닌가. 굳이 다른 데서 비유를 가져오거나 커리어를 기준으로 비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조금만 콩깍지를 벗고 객관적으로 볼 의사가 있다면 이 작품에 흥미를 붙일 이유가 전혀 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드레이크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그루비, 칠(Chill), 릿(Lit) 등 수많은 단어로 묘사되는 트렌디함이 있다. 음악에 쏟은 열의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장 흐름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 덕에 얻어낸 타이틀이다. 지금껏 그가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 곡만 해도 자그마치 200개가 넘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드레이크 인베이전’은 영민하고 조심스럽게 이뤄졌다.
간혹 노출 빈도를 높이기 위한 '트랙 수 거대화'나 '챌린지 유도' 등 상업성을 조장한 행보가 있었음에도 문제시되지 않은 건, 그럼에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양질의 결과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 Dark Lane Demo Tapes >는 그런 설득의 기미조차 없다. 수록곡 전부가 차트에 안착해 또 한 번의 놀라운 '기록'을 남겼지만, 말 그대로 남은 건 기록뿐. 반복으로 유도한 인위적인 중독성과 일회용 카메라처럼 찰나의 순간만을 남기는 소모성 곡들이 지대하게 깔린다. 다양한 방향에서 마구 치고 나오며 상상력을 자극하던 믹스테이프 < More Life >의 게릴라성 번뜩임과는 정반대로, 상당히 편협하고 안일하다.
'When to say when'은 코러스에 중점을 둔 'Nice for what'의 유사품에 불과하고 'Toosie slide'는 이전 싱글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God's plan'의 전체 이용가 축소판처럼 보인다. < Views >와 < Scorpion >을 거치며 점차 곡이 비슷해진다는 일각의 비판은 현작에 비하면 무색할 정도다. 앨범 전반에는 최근 유명세를 치른 미니멀리즘 트랩이 쓰였지만, 귀에 들어오는 포인트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 신선함보다는 지루함이 먼저 다가온다. ‘Landed’, ‘From florida with love’는 마치 한 음절만 입력한 뒤 나머지는 자동 완성에 돌린 모양새다.
차라리 스테차소닉(Stetsasonic)의 'Go stetsa I'을 샘플링한 'Deep pockets'와 70년대 소울 풍을 가미한 ‘Losses’ 도입부가 잠시나마 오아시스처럼 다가온다. 의도한 콘셉트를 어느 정도 충족하면서도 'Hold on, we're going home'에서 다룬 몽환경을 재현한 덕이다. 어쩌면 익숙함에서 기인한 신기루일 수 있지만, 나머지 트랙이 심히 메마른 탓에 그나마 그가 구사하던 예전 작법에서 목을 축이게 된다.
물론 앨범의 의의가 '스펙트럼 넓히기'라면 방금처럼 이 음반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는 일만큼 무의미한 일이 없을 테다. 혹여나 만들어둔 곡을 그저 ‘소비'하려는 심산으로 대충 던져두고 즐기라 한 셈이라면 더욱 무례하다. 드레이크라면 이렇게 단순하고 성의 없는 방식이 아닌, 좀 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신중하게 견적을 넓히리라 믿었던 아쉬움. 9년 전, 힙합 신에 큰 파장을 일으킨 < Take Care >가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힙합 신에는 새 유행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유일한 차이라면 < Dark Lane Demo Tapes >는 그 유행의 표본이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수록곡-
1. Deep pockets [추천]
2. When to say when
3. Chicago freestyle (Feat. Giveon)
4. Not you too (Feat. Chris Brown)
5. Toosie slide
6. Desires (Feat. Future)
7. TIme files [추천]
8. Landed
9. D4L (Feat. Future, Young Thug)
10. Pain 1993 (Feat. Playboi Carti)
11. Losses [추천]
12. From florida with love
13. Demons (Feat. Fivio Foreign & Sosa Geek)
14. 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