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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Pill Blues (Deluxe)
마룬 파이브(Maroon 5)
2017

by 정연경

2017.11.01

이번 앨범을 통해 완전히 탈(脫) 록을 선언했다. 메트로놈처럼 일정하게 쿵쿵거리는 드럼 패드의 리듬과 프로그래밍 된 다양한 소리 샘플, 신시사이저의 반주가 음반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웅웅대며 퍼지는 음계의 파편들과 만나 세기말 분위기를 선사하는 ‘Lips on you’, ‘Bet my heart’나 전자 음악의 미래지향적인 사운드를 지향하며 알앤비/소울 신의 대안으로 떠오른 피비알앤비와 1980년대 신스 팝의 빛바랜 음색을 접목한 ‘Best 4 u’, ‘Who I am’은 자취를 감춘 밴드 사운드의 자리를 가상 악기가 대신한 대표적인 곡이다.

록 (내지는 팝) 밴드라는 정체성을 버려가면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음반은 상당히 지루하다. 영국 일렉트로니카 신 남성 듀오 스네이크쉽스(Snakeships)와 이디엠의 신예 보컬 뫼(MØ)가 함께 한 ‘Don’t leave’와 유사한 형식을 취하는 ‘Wait’의 트랩 비트, 트로피컬 하우스 트랙 ‘Don’t wanna know’, 케이티 페리의 ‘Swish Swish’를 공동 작곡한 가수 겸 래퍼 스타라(Starrah)의 ‘Rush’가 떠오르는 ‘What lovers do’는 트랜디하지만 귀에 익숙하고, 무엇보다 마룬 파이브의 색이 말끔히 지워졌다. 애덤 리바인의 독보적인 목소리만이 밴드와의 연결고리를 제공할 뿐이다.

전작 < V >는 과거와 교집합이 있었다. 팝 앨범이지만 ‘Lost stars’는 1집 수록곡 ‘She will be loved’의 기승전결을 따라가고, ‘Feelings’는 2집 < It Won`t Be Soon Before Long >에서 보여준 밴드 특유의 펑키(Funky)한 그루브가 조악한 방식으로나마 보존되어있다. 팝 밴드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한 앨범 < Hands All Over >마저도 ‘Give a little more’와 ‘Moves like Jagger’(재발매 버전에 수록)를 통해 발군의 멜로디 작법과 펑크(Funk), 소울을 한데 버무린 마룬 파이브 표 팝을 지향했다.

앨범의 주인이 누군지 몰랐다면 준수한 음악으로 여겨졌을 테다. 퓨처 베이스, 트랩 등 새로 생겨난 복잡한 장르들은 이제 이디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쳐 우리에게 친근한 음악이 되었고, < Red Pill Blues >는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잘 반영한 일렉트로닉 팝 음반이니 말이다. 문제는 유행을 주도했던 마룬 파이브가 도리어 이러한 유행에 잠식당했다는 점이다. 연속적인 성공은 매너리즘을 낳았고 그들은 그 이상의 성공을 위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막다른 벽에 다다르자, 밴드의 전매특허였던 창의적 재편성 대신 모방과 편승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장르의 전향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수록곡-
1. Best 4 u
2. What lovers do (Feat. SZA)
3. Wait
4. Lips on you
5. Bet my heart
6. Help me out
7. Who I am (Feat. LuunchMoney Lewis)
8. Whiskey (Feat. A$AP Rocky) [추천]
9. Girls like you
10. Closure [추천]
11. Denim jacket
12. Visions
13. Plastic rose
14. Don’t wanna know (Feat. Kendrick Lamar)
15. Cold (Feat. Future)
정연경(digikid8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