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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on`t Be Soon Before Long
마룬 파이브(Maroon 5)
2007

by 윤지훈

2007.05.01

마룬 파이브는 경계에 걸쳐 있는 밴드다. 어느 한 단어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에 이들이 점하고 있는 위치는 사뭇 독특하다. 백인으로서 블랙 뮤직인 펑크(funk)를 주재료로 삼고 있으며, 록 밴드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음악만큼은 팝 적인 감수성을 듬뿍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메가 히트곡 'This love'가 명백한 증거물이다. 흑인의 유연한 그루브를 역동적인 연주에 담아낸 이 싱글은 차트 5위에 오르며 전 세계의 클럽을 뜨겁게 울렸다. 상이한 영역의 충돌지점에서 발생한 긴장감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음악적인 측면뿐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외연도 그렇다. 밴드의 전신이자 그런지 음악을 시도했던 카라스 플라워스(Kara`s Flowers)의 실패, 그리고 단 한방으로 마룬 파이브의 이름을 알린 < Songs About Jane >(2002)의 인생 대역전극 역시 밴드의 성격이 우직한 안정감보다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린다. 뼈아픈 실책과 어마어마한 성공, 이렇게 음악계에 몸을 담은 10년간 내놓은 창작물은 단 두장이다. 이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아 한 순간이라도 어긋나면 곧바로 추락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말과도 같다.

따라서 5년의 공백기 동안에 당사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쳤는지는 굳이 입을 빌리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다. 몇 장의 라이브 앨범을 통해 데뷔작의 수명과 신보에 대한 유예기간을 더 늘리고 싶었을 것이다. 유능한 힙합 프로듀서 카니예 웨스트와의 합작,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헌정앨범 참여 등 비정규 작업도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밴드의 올곧은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정규앨범이다. 신보 < It Won`t Be Soon Before Long >이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마룬 파이브는 여기서 신중하게 한 수를 내민다. 그루브감이 넘실대는 댄스 록, 즉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분야를 더욱 구체화한다는 노선을 택한 것이다. 전작의 키워드를 답습한다는 비판은 더욱 매끄러워진 사운드와 숙고 끝에 빚어낸 멜로디가 무마시킨다. 사람들이 마룬 파이브에게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 무리한 도박이 아닌 듣기 좋은 팝송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한 현명한 선택이다.

군살 없이 다듬어진 'Makes me wonder'는 첫 싱글답게 앨범의 성격을 대표하는 펑키 댄스곡이다. 별난 기교로 에두르지 않고 곧장 주요 멜로디로 직행하며 듣는 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그럼에도 주류 흑인 음악에서나 들을 법한 잔뜩 찌그러진 사운드를 접붙이는 등 트렌드를 재빠르게 좆는 기민함을 놓치지 않았다. 기름기를 뺀 현대판 디스코 'If I never see your face again'이나 좀 더 댄스의 문법에 가까운 'Little of your time'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신보가 오랜 진통 끝에 낳은 결과물이라는 점은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은연중에 작용했을 성공에 대한 강박이 앨범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Can`t stop'은 거친 록 기타와 흑인 리듬을 한데 엮은 'Harder to breathe'의 성공 사례를 비추어 본 듯하지만 선율의 감도가 그만큼 미치지는 못한다. 고민보다는 본능에 의해 즉각적으로 탄생했을 데뷔작의 자연미에 비한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단번에 귀에 꽂히는 싱글이 적다는 불평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멤버들은 순간의 자극보다 오래 기억되는 노래를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앨범 중후반에 위치한 일련의 곡들은 전작의 'Sunday morning', 'Sweetest goodbye', 'She will be loved'에서 느낄 수 있던 감성적 면모의 긍정적인 확장판이다. 후기 폴리스의 재림이라 볼 수 있는 'Won`t go home without you'와 로맨틱 작별 송 'Goodnight goodnight', 오케스트라까지 대동하여 대규모의 소울 발라드를 선보이는 'Back at your door'로 이어지는 곡들은 농익은 멜로디로 성숙을 담보한다. 'Kiwi'의 말미에 등장하는 기타 노이즈 폭발음으로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상기시키지 않았다면 발라드를 전공 분야로 착각했을 만큼 달콤한 순간들이다.

신작은 < Songs About Jane >과 'This love'에 비견할 히트를 기록하기엔 힘들 듯하다. 'Makes me wonder'가 이미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거머쥐었지만 이는 이름값의 발현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룬 파이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노린 것 같다. 장수 밴드로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 말이다. 분명히 신보는 훌륭한 팝송 모음집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다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밴드의 기본기는 검증되었다. 크게 노선을 바꾸지 않는 이상 마룬 파이브의 경계선 위 줄타기는 변함없을 것이다. 다만, 이들이 노니는 동아줄은 더욱 탄탄해졌음에 틀림없다.

-수록곡-
1. If I never see your face again
2. Makes me wonder
3. Little of your time
4. Wake up call
5. Won`t go home without you
6. Nothing lasts forever
7. Can`t Stop
8. Goodnight goodnight
9. Not falling apart
10. Kiwi
11. Better that we break
12. Back at your door
13. Infatuation (bonus track)
윤지훈(lightblue12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