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분홍굴착기
김창완밴드
2012

by 이수호

2012.05.01

산울림 이후 김창완은 더 젊어졌다. 펑크 사운드는 작약의 원료가 되어주었고, 직설적 포효는 회춘의 비약으로 작용했다. 이뿐이랴. 주어 술어가 뒤바뀐 가사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니 그저 LP판 위에서나 보던 옛 가수구나 하고 접근했다가는 크게 데일 수도 있겠다. '우두두다다'나 'Darn it'에서 보이는 일련의 행보는 웬만한 펑크 밴드들보다도 더 열정적이다. 분명 산울림 때와는 다른 김창완의 모습이고, 산울림과는 다른 김창완밴드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김창완밴드는 산울림의 영역 내에 존재한다. 한국 록 씬의 전설이라는 산울림, 그 속에서도 반 이상의 영역을 차지했던 김창완이라는 공통된 유전자는 김창완밴드가 산울림의 연장선 위에 자리하게 하는 요소, 다시 말해 직계 자손임을 알리는 증거이다.

동시에, 산울림과는 엄연히 다른 밴드이기도 하다. 연장선상에 있지만 분명 그 입지에는 차이가 있다. 결국 김창완밴드는 산울림을 끌어안음과 동시에 그들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만들어 내야하는 이중의 숙제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셈이다.

으레 산울림의 곡을 다시 불렀을 법도 하지만 그 동안 김창완밴드의 앨범에는 산울림의 노래가 없었다. 음반이라는 작품 속에서는 자신만의 패러다임을 구현하려 했을 터, 방송이나 공연에서만 산울림 곡을 연주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의도로 해석된다.

이번 작품의 트랙 구성은 여간 심상치 않다. '금지곡'을 제외한 나머지 11곡이 모두 산울림의 노래다. 겉으로만 보면 이는 분명 리메이크 앨범에 가깝다. 더 의아한 점은 산울림 노래 중에서도 펑크 넘버로 기록되고 있는 곡들이 올라있다는 것이다. 줄곧 펑크 사운드를 구사해오던 김창완밴드였기에 이 같은 선곡 방식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어떤 결과물을 보일 것인가?

우려의 물음표와는 달리 밴드는 어떠한 답을 써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분홍굴착기 >는 분명 김창완밴드의 사운드를 담고 있다. 기본적인 리프나 곡의 구조는 물론이고 솔로 연주조차도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귀를 깨우는 부분은 편곡의 색채가 아닌 연주의 양감에 자리한다.

앨범 전체에 생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날카로운 보컬와 거칠어진 기타 디스토션으로 나타난 김창완의 목소리는 여전히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물론 김창완 혼자만의 역량은 아니다. 밴드 전체와의 상호작용이 발산하는 사운드를 이끌어냈다. 염민열의 두터운 기타 배킹이 인상적인 '독수리가 떴네'나 이상훈의 강렬한 키보드 전주가 돋보이는 '옷 젖는 건 괜찮아'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앨범이 전하는 생동감은 전 트랙을 한 번에 담아내는 원 테이크 방식에서도 기인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로 녹음해내는 과정은 모든 곡을 듣는 이의 전면으로 내세우며 현장감을 발생시킨다. 더불어 밴드에는 긴장을 더해주며 전체적인 사운드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첫 트랙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저기'의 솔로 라인이 돋보이는 이유는 이러한 파트들 사이의 유기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실로 통쾌한 라이브의 현장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울림을 계승하는 사운드라는 의미와 산울림을 벗어난 김창완밴드의 사운드라는 다른 의미인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역시 후자다. 산울림, 엄밀히 말해 자신의 곡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 위의 이어달리기가 아니었을 터, 변화와 발전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그들은 밴드 사운드라는 멋들어진 답안을 내놓았다. 혁신의 발판을 순수한 연주로부터 구상해냈다는 것, 선책(善策)을 넘은 현답(賢答)이었다.

몰아치는 러닝 타임 속에 밴드의 젊음이 느껴진다. 일부 신세대들에게는 여전히 나이 든 '김창완'이 이끄는 늙은 그룹이라 여겨지지만 단순히 77년산(産) 오래된 술로 치부해버리기엔 김창완은 지금도 신선하고 김창완밴드는 매번 새롭다. 부단히 오늘날의 '금지곡'을 떠올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쉼 없이 음악적 새로움을 향해 움직이는 분홍 굴착기가 보인다. 물론, 그것을 움직이는 연료의 이름은 젊음과 열정이다.

-수록곡-
1.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추천]
2. 금지곡 [추천]
3.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4.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
5. 저기 [추천]
6. 독수리가 떴네
7.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추천]
8. 옷 젖는 건 괜찮아 [추천]
9. 지구가 왜 돌까 [추천]
10. 팩스 잘 받았습니다
11. 길엔 사람도 많네
12. 멀어져간 여자
이수호(howard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