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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델(Adele)
2008

by 윤지훈

2008.03.01

영국산 화이트 소울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마약에 찌든 이슈 메이커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는 주요 부문에서만 3개의 트로피를 챙기며 보수적인 그래미를 전복시켰고, 'Mercy'로 5주째 영국 싱글차트 정상을 고수하고 있는 신인 더피(Duffy)는 와인하우스의 뒤를 바짝 쫓으며 차세대 소울 디바 자리를 노리고 있다. 조스 스톤(Joss Stone)의 등장이 하나의 '사건'이었던 몇 년 전을 떠올린다면, 현재 영국은 겹경사를 맞이한 셈이다. 그리고 2008년,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하는 소울 신예가 있다. 발매 첫 주에 영국 앨범차트 넘버원을 꿰찬 < 19 >의 주인공, 아델(Adele)이다.

최근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그래미를 휘저은 이후, 음악계에 등장한 주요 화두 중 하나는 '빈티지 소울'이다. 최신 사운드임에도 옛것을 내포한 이 복고 소울에 대중들이 신선함을 느낀 것이다. 아델의 데뷔작 < 19 >는 이러한 과거 소울로의 복귀 흐름을 정확히 간파한 앨범이다. 힙합과의 교접을 통해 대중성을 담보하려는 시도는 찾아 볼 수 없다. 정파답게 순수 보컬과 수제 연주만으로 승부를 내고 있으며, 또 과거의 맛을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

앨범 표제에 명시된 대로 아델의 나이는 만 19세. 1988년생으로 이제 막 성년의 문턱을 넘은 나이다. 물론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십대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후덕한 인상의 그녀이지만, 그 풍채에서 쏟아내는 보컬 파워는 나이가 무색해질 정도다. 부드럽고 예쁜 표정은 아델과 거리가 멀다. 간혹 쇳소리가 섞여 나올 만큼 힘차고 격정적으로, '뿜어내듯' 노래한다. 제멋대로 음을 갖고 노는 흥겨운 가창은 앨범을 듣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여기엔 은근한 퇴폐미마저 있다. 때론 교태가 넘치고, 때로는 걸쭉하게 가락을 뽑아낸다. 날렵하지만 탄탄한 목소리를 되바라지게 표현하는 재주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똑 닮았다. 현지의 언론이 아델에게 '마약을 제거한 와인하우스'란 꼬리표를 달아준 것은 여기에서 기인했을 터. 사고뭉치가 아닐 뿐이지 음색에서 느껴지는 '록' 필은 영미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음을 증명한다.

사실 아델의 성공은 2007년 말 'Sounds of 2008' 목록의 맨 앞자리에 그녀의 이름이 랭크됐을 때부터 예상 가능한 바였다. 'Sounds of 2008'은 BBC 주최로 평론가들이 주목할 만한 신인 열 명을 선정하는 행사로 영국 음악계에서 상당한 공신력과 영향력을 가진 리스트. 당시 아델은 'Hometown glory'라는 싱글 하나만을 발표한 상태였다. 훌륭한 재목임을 파악해 배팅하는 데에는 단 한곡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또 브릿 어워드는 'Critic`s Choice'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앨범을 선정했다. 불과 앨범 발매 한 달만의 성과다.

아델의 등장이 몰고 온 파괴력은 비단 영국에서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아직 정식으로 빌보드에 입성도 하지 못한 가수에게 미 음악계가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즈는 3월 19일자 기사에서 'Another British Invader'로 표현했고, 캐나다의 주요 언론들도 그녀를 비중 있게 다뤘다. 지난 2007년 내내 와인하우스의 침공을 호되게 경험한 미 대륙이 '위협'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음악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아델은 첫 앨범임에도 와인하우스가 터놓은 길을 따르며 능숙하게 난제를 해결했다. 'Right as rain'은 레트로 소울의 전형답게 시간여행을 들려주며, 마크 론슨이 프로듀싱을 맡은 'Cold shoulder'는 여전히 그만의 재기가 빛난다. 그 중에서도 잠시 괴짜 기질을 감추고 애절한 감정 표현을 전면에 내세운 'Chasing pavements'는 앨범 내에서 가장 대중적 호소력을 가져 성공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Should I give up?(내가 포기해야 될까요?)”이란 노랫말로 시작하는 후렴구 멜로디는 잊기 힘든 순간이다. 이 곡은 일찌감치 영국 차트 2위를 거머쥐었다.

에타 제임스(Etta James)나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같은 재즈 명인들의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다는 이력은 프로그래밍을 철저히 배격하고 여백을 남긴 사운드에 보컬의 여운을 살린 'Daydreamer', 'Crazy for you' 등의 곡들에서 감지할 수 있다. 'Best for last'는 이러한 재즈적 터치와 최신 감각이 적절히 조우한 예.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면서도 절대 만만하게 볼 음악은 아니다.

그래서 싱어 송라이터인 아델을 빼어난 보컬리스트 정도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작인 밥 딜런의 < Time Out Of Mind >(1997)에서 한 곡을 발췌한 것을 제외하면 그녀는 전곡을 자급자족했다. 해당곡인 'Make you feel my love'도 참신한 재해석은 아니라지만 딜런의 까칠함을 포근하게 변화시킨 재주가 돋보이는 리메이크작. 촉망받는 디바에 작가로서도 손색이 없다.

아델이 다시 한 번 빌보드를 유린한다면 빈티지 코드는 더 이상 단순한 화제 거리가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또한 '포스트-와인하우스' 가수들을 줄지어 만날 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아델은 음악에 있어서 이슈보다 가창력이, 엔터테이너보다 작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새삼스럽지만 당연한 진리를 일깨우고 있다. 그래서 무궁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어린 나이가 그녀의 최대 강점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19'를 타이틀로 정한 이유일까. 현재만큼 미래가 궁금한 뮤지션, 아델은 이미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수록곡-
1. Daydreamer
2. Best for last
3. Chasing pavements
4. Cold shoulder
5. Crazy for you
6. Melt my heart to stone
7. First love
8. Right as rain
9. Make you feel my love
10. My same
11. Tired
12. Hometown glory
윤지훈(lightblue12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