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애정과 헌사'를 바쳐온 아티스트에 관한 글을 쓴다는 건 어찌 보면 괴로운 일이다. 특히 그들의 음반이 개인적으로는 썩 괜찮아도 절대적 기준에서는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사태는 한층 심각해진다. 전자의 주관과 후자의 객관 사이에서 마음은 갈피를 채 잡지 못하고 마치 시소에 올라탄 양 요동을 친다. 정체된 글 속에서 늘어가는 건 오로지 빈 맥주 캔과 수북이 쌓인 담배 꽁초들 뿐이다.
유투(U2)가 이번에 발표한 대망의 신보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이 바로 그런 케이스에 속한다. 앨범은 유투의 과거 작품들과 비교해봤을 때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뒤쳐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수록 곡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바로 전작인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2000)와 함께 놓고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첫 싱글 'Vertigo'는 'Beautiful Day'의 흡인력에 못 미치고 'Miracle Drug'는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 of'의 깊이를 넘어서지 못한다. 빠른 템포의 'All Because of You' 역시 'Elevation'의 활달한 구성을 그저 부러운 눈망울로 쳐다볼 뿐이다. 유투 사운드의 전형을 들려주는 'City of Blinding Lights'나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렇듯 명백한 본 음반의 단점을 잠시 뒤로 물리고 (그래도 있을) 장점만을 캐치하기 위해서는 딱 세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첫째로 보노의 목소리에 비록 녹이 슬긴 했지만 그림을 그리듯 풍부한 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 둘째로 베이스와 드럼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정확히 2/4를 분담하며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에지의 기타가 한껏 디스토션을 머금고 포효하지만 아름다운 딜레이 사운드의 매력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 등이다.
음반의 이러한 굿 사이드들은 서로 합쳐져 특정한 효과를 발휘한다. 바로 대가의 공력이 삼투되었기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일주일전 들었을 때와 지금 들을 때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그룹이 숨겨놓은 사소한 장치들이 하나하나 발견되는 순간, 재미는 배가되고 감동은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온다. 왠지 모르게 심심하게 들렸던 멜로디가 청감(廳感)에 공진을 일으키고 단순해보였던 리듬 패턴이 서서히 세련미를 내뿜는다. 따지고 보면 첫 청취 때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진정한 맛을 깨닫게 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이렇게 놓고 보면 그리 기이할 일도 아니다.
설명했듯, 이번의 뉴 레코드는 밴드 역사의 '통시적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는 완성도가 달리는 것이 사실이다. 헌데 이 단점 덕에 음반은 오히려 빛을 발한다. 동시대의 여타 앨범들과 견주어봤을 때, 즉 음악의 '공시적 관점'에서 조감해봤을 때는 단연 발군임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교 우위적 입지' 때문에라도 본 신보는 비판의 칼날을 비켜서고 스스로를 곧추세운다.
이는 곧 요즘의 메인스트림 음악들이 그만큼 천편일률과 구태를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주위만 둘러봐도 올해에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기가 힘들다는 푸념이 많이 들린다. 음악이 풍성했던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실로 서글픈 일이요, 애석한 현실이다.
이처럼 조금은 다른 방식이지만,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은 당대의 현재를 일체의 가감 없이 반영해온 유투의 올곧은 태도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마치 거울과도 같은 앨범이다. 처음 음반을 접하고 느꼈던 당혹감이 일주일이 지난 현재 싹 풀어진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록곡-
1. Vertigo
2. Miracle Drug
3.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4. Love And Peace Or Else
5. City Of Blinding Lights
6. All Because Of You
7. A Man And A Woman
8. Crumbs From Your Table
9. One Step Closer
10. Original Of The Species
11. Yahw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