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유투(U2)
2000

by 임진모

2009.02.01

다른 음악은 몰라도 록 뮤지션에게 어쩔 수 없이 나이는 적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현존 최고 캐리어 그룹 유투(U2)는 '전성기가 지난 노장의 앨범은 명반이 되기 힘들다'는 속설을 뒤집고 나이 마흔 살에 명반을 냈다. 2000년이면 유투의 네 멤버가 모두 1960년생, 1961년생을 감안할 때 마흔 살이거나 그에 접어든 나이였다.

그룹의 통산 10집인 <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는 어떤 젊은 뮤지션들 작품에서 접할 수 없는 고령(?)과 정체성에 따른 고민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극복의 성공적 서사시로 기록된다. 앨범을 논하면서 먼저 나이를 꺼낸 이유는 당시의 음악계가 애들 판으로 전락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보노도 나이를 의식했기 때문인지 그 무렵 '롤링스톤'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이 앨범은 자존(self-respect)을 담은 작품이다. 로큰롤 밴드에 대한 통상적 인식의 굴레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 대한 앨범이다. 항상 20대에 최고 앨범을 낸다는 생각도 인식의 굴레일 것이다. 우리는 그와 달리 30대에 수작 앨범을 냈다. 물론 20대에도 좋은 앨범을 냈지만. 우리는 갈수록 좋아질 것이다.”

그 말은 옳았다. 불혹에 낸 앨범이었지만 평단도 우호적이었고 판매량도 전작보다 성공 그래프를 그려냈다. 실험성이 가득했던 1997년의 앨범 < Pop >은 미국의 경우 100만장에 그쳤지만 <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는 지금까지 4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2005년 '롤링스톤'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을 선정했을 때 이 앨범은 영원한 명작 < Joshua Tree >(1987년, 27위), < Achtung Baby >(1991년, 62위)보다야 밑이었지만 최신작임에도 다른 어떤 유투의 앨범보다도 순위가 높은 139위를 기록했다.

진가는 그래미상에서 더 나타났다. 이 앨범에서 발표한 싱글 'Beautiful day'은 2000년 그래미상의 '올해의 레코드' 부문을 수상했다. 한번 앨범이 상찬을 받으면 이듬해에는 깨끗이 물러감이 관례이자 상식이지만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 'Walk on'으로 유투는 2001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같은 부문인 '올해의 레코드'를 거푸 수상하는 대기염을 토했다. 한 앨범에 실린 두 곡으로 2년 연속 그래미의 핵이라는 '올해의 레코드'부문을 석권한 것이다. 그래미상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그래미 측의 유투 편애!' 혹은 '얼마나 당시 상줄 만한 가수가 없었으면...' 하는 뒷말이 비집고나왔지만 그렇지만 앨범 자체의 수상 가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은 없었다.

앨범은 전작 < Pop >에서 보여준 실험성과 과욕을 배제하고 자신들 본연의 재래식 록이라 할 < Achtung Baby >와 < Zooropa > 시절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기타리스트 디 에지(The Edge)는 “테크노와 댄스 아이디어와 미학으로 < Pop > 시절의 실험기간을 마치고 나니 다시 흙 냄새나는 어떤 것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과는 < Pop >에 실망하거나 당황했던 팬들이 빠르게 유투에 대한 애정을 회복해갔음을 증명했다.

그들만의 로큰롤로 복귀하되 나이에 맞춰 약간은 힘을 뺐다. 이 부분이 핵심. 폭발성이 여전하지만 에너지 완급조절이 돋보이는 'Beautiful day'와 'Walk on'에 그 '중용'의 미학이 드러났다. 후자는 디 에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기타 톤과 보노의 그림 그리는 듯한 노련한 보컬이 환상의 조합을 일궈내는 1980년대 유투 록의 전형이지만 그 시절 특유의 아우성과 포효는 많이 줄어들었다.

힘에 부치는데서 나온 게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으로 강도를 낮추었다고 할까. '관록의 록'을 시범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의도적이든 아니든 후련함과 가슴 때리기를 원하는 강경파들에게는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꿋꿋하게 질러댄다고 록 밴드의 면모를 다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보노는 말한다. “1980년대 초반 우리들의 음악은 무아지경을 야기하는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섹시하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는 섹시하면서도 무아지경을 일으킨다. 말하자면 이제 우리는 (록의) 후위를 맡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전위에서 강한 에너지만을 내뿜는 때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변명이지만 수긍 못할 것은 아니다.

보노의 표현대로 '홀리데이 인 호텔 로비 밴드의 필'을 지닌 R&B풍의 'In a little while'과 주테마 멜로디가 친숙한 'Wild honey'를 위시해 전체적으로 선율을 많이 살려 듣기에 매우 무난하다. 이것은 주로 관록이 솜씨를 발휘하는 영역이다. 발라드는 언제나 그렇듯 R&B 패턴의 서사적 곡조를 취하고 있으며, 그래미상에서 팝 보컬 그룹 부문상을 수상한 곡이자 앨범의 또 하나 보석인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 of'는 가스펠 분위기를 풍긴다.

프로듀스는 '유투패밀리' 다니엘 라노이스(Daniel Lanois)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맡았다. 두 사람은 1984년 앨범 < The Unforgettable >과 1987년의 < Joshua Tree >를 엮어낸 인물들이다. 주목할 것은 다니엘 라노이스를 다시 불러들인 것인데 상기한 것처럼 전성기 사운드를 재현하려 했던 의지로 풀이된다.

당시 록계를 평정했던 림프 비즈킷(Limp Bizkit)과 콘(Korn) 류의 랩 메탈 흐름과 10대 버블 검 음악 등의 주류와 어떻게 경쟁해나갈 것인가 대해 보노는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는 어른이고 그들은 애들이다!” 거기에는 어른으로서의 '관조'와 어른이기에 원초적으로 생기는 '부담'이 함께 녹아있다. 유투는 세월이 제공한 이 두 가지 명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내고 또 극복했다. 명백한 '새천년 최초의 록 명반'이다. 세계평화에 대한 염원('Peace on earth'), 미국 9. 11사태에 대한 입장('New York') 그리고 장외의 빈곤국가 부채탕감 운동 등 그들 전유(專有)의 정치적 지향은 여전하고.... 이런 것으로 그들의 존재는 한층 견고하다.

큰 테두리에서 말하자면 유투의 과제는 위에서 지적한 관조와 부담 간의 줄다리기에 따른 긴장의 조절 여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04년의 앨범 <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도 그러했고 곧 나올 열두 번째의 신보 < No Line On The Horizon >도 그 두 가지 정서 사이의 갈등이 낳은 산물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이 강하게 작용했는가에 따라 앨범의 운명도 결정될 수밖에 없다.

-수록곡-
1. Beautiful day
2.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 of [추천]
3. Elevation [추천]
4. Walk on [추천]
5. Kite [추천]
6. In a little while
7. Wild honey [추천] 
8. Peace on earth
9. When I look at the world
10. New York
11. Grace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