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얼/쇼크 록의 교주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의 음악은 1990년대 사운드의 결정판이었다. 그들은 헤비 메탈, 테크노, 고딕, 인더스트리얼, 로큰롤, 그런지 등, 1990년대에 유행한 다양한 음악적 텍스트를 한데 모아 그것을 거대한 음의 덩어리로 분출, 이른바 맨슨 광신도들을 몰고 다녔다. 그래서 마릴린 맨슨표 음악은 딱히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광대하다. 허나 이처럼 포괄적이면서도 분산됨 없이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한다. 하나로 결속해 광기 어린 에너지를 마구 뿜어댄다.
이것이 바로 마릴린 맨슨의 힘이자 그만의 특수성이다. 무엇보다 그의 디스코그라피 중 최고로 평가 받는 1997년의 앨범 <Antichrist Superstar>가 이를 생생히 증명해주었다. 사실 2003년의 근작 <Golden Age of Grotesque>도 발매 시기만 뉴 밀레니엄 이후였을 뿐, 다분히 전성 시절의 마릴린 맨슨을 연상케 할만큼 회귀성이 강했다.
이번에 발표되는 마릴린 맨슨의 베스트 컬렉션 <Lest We Forget>은 그래서 중요하다. 세기말을 휘저었던 모든 카오스적 소리샘들의 집합소이자 향연장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혼돈과 무질서, 어두움과 절망 등의 부정적인 음악 정서가 음반을 저류하며 듣는 이들의 청(聽) 감수성을 맹공한다. 그곳에 희망이란 없다. 강렬한 두 시그니처 송 'The Beautiful People'과 'Rock Is Dead'를 비롯해 그들에게 유명세를 안겨 준 첫 히트곡 'Sweet Dreams(Are Made Of This)', 댄스 메탈을 구현한 'mOBSCENE', 무섭게 내리찍는 'Disposable Teens' 등의 기존 넘버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고딕 신스 팝 밴드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의 곡을 리메이크한 앨범의 유일한 신곡 'Personal Jesus'도 뉘앙스는 별반 다르지 않다. 오리지널이 지니고 있던 음습한 분위기를 오히려 배가해 마릴린 맨슨 특유의 다크 파워를 더욱 상승시켰다. 이쯤 되면 원곡을 능가하는 커버는 몰라도 '원곡에 못 지 않은 커버' 정도의 평은 무난히 획득할 전망이다. 골수 팬들의 환호성과 외침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 하다.
바야흐로 2004년이다. 세기말을 훌쩍 지난 뉴 밀레니엄이 스타트를 끊은 지 거진 4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서서히 희망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마릴린 맨슨의 음악이 뉴 밀레니엄에는 다소 힘을 잃을 것이라 예견했던 전문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전쟁의 포화와 테러의 참상으로 세상은 밝아지기는커녕 점점 얼룩져 만가고 있다. 비록 히트 선곡집으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마릴린 맨슨은 지금도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때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그 때가 바로 마릴린 맨슨 제 2 전성기의 시작일 것이다.
-수록곡-
1. The Love Song
2. Personal Jesus
3. mOBSCENE
4. The Fight Song
5. Tainted Love
6. The Dope Show
7. This Is The New Shit
8. Disposable Teens
9.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10. Lunchbox
11. Tourniquet
12. Rock Is Dead
13. Get Your Gunn
14. The Nobodies
15. Long Hard Road Out Of Hell
16. The Beautiful People
17. The Reflecting God
18. (s)A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