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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Assassination Under God - Chapter 1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2024

by 신동규

2024.12.30

끊임없이 휘두르다 보면 칼날도 결국 무뎌지는 법. 소리인지 소음인지 모를 아슬한 경계도, 매우 변칙적이거나 놀랍도록 단순하던 특유의 박자감도, 듣기 불편하면서도 매력적이던 일렉트릭 기타도 얼굴을 감췄다. 나인 인치 네일스, 람슈타인과 함께 인더스트리얼 메탈 신을 이끌던 마릴린 맨슨의 형상이 좀처럼 흐릿하다. 그러나 그만큼 명확해진 장점에 주목한다. 그간에 비해 친절하고 쉽다. 이는 넘치는 광기를 나름 제어하려 애쓴 결과이자 어느덧 노장 밴드의 반열로 접어드는 그들이 설정한 타협선과 같다.


인더스트리얼 요소와 메탈 자체의 농도만 바라본다면 < The Pale Emperor >보다 덜하고, < Born Villain >과는 비슷하다. 그럼에도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교주의 자태는 오히려 위 두 작품에 가깝다. 포인트는 실험성과 대중성 사이의 저울질이다. 하드 록이나 블루스 계열의 음악을 접합하거나 각종 이펙터와 기계음 혹은 전자음을 교묘히 비틀어 새로움을 좇기보다 안정적이고 고른 흐름을 가져와 적당한 보컬 톤으로 흡수 범위를 넓힌다. 그렇게 얼터너티브와 고딕 록에 기댄 비율이 자연스레 높아졌고, 그 결과 선공개한 세 곡은 21세기에 발표한 마릴린 맨슨의 싱글 중 가장 뛰어난 상업적 성공을 안겼다.


첫 트랙 ‘One assassination under god’에서 ‘No funeral without applause’로 이어지는 연계는 과거의 기억을 잃은 듯한 완곡한 변전이 고스란히 새겨있다. 가창과 악기 모두 음률적 전개에 중점을 두고 멜로디를 부각하자 핀란드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 칠드런 오브 보덤(Children of Bodom)과 같이 헤비메탈의 미학적 스케일을 중시했던 밴드가 떠오른다. 물론 속도와 창법 면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그만큼 마릴린 맨슨의 최근 행보가 ‘듣기 편한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지난날의 사운드를 잊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이후의 곡들이 초반부의 흡인력을 저해하지만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만은 여전히 고무적이다.


데뷔작의 파격도 벌써 삼십 년 전이다. 어쩌면 세월에 따른 피하지 못할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기괴, 과격, 선정, 광기의 아이콘 수식을 마다치 않던 그들도 수십 년을 지나오는 동안 ‘안티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외치던 본인과 언젠가부터 달라진 자신을 발견했으리라. 중요한 건 그들은 끝까지 버텼다는 것이다. 인더스트리얼 메탈 신에 깊이 내린 뿌리는 장르가 인기를 잃어 하나둘씩 떠나갈 때도 흔들리지 않았고, 록의 여러 분파와 교류하며 양분을 얻어나갔다. 마릴린 맨슨이 준비한 첫 번째 챕터는 분명 익숙하고 평범하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이들을 더 낯설게 만드는 생경하고도 반가운 맛이 가뿐히 녹아들어 있다.


-수록곡-

1. One assassination under god [추천]

2. No funeral without applause [추천]

3. Nod If you understand

4. As sick as the secrets within

5. Sacrilegious

6. Death Is not a costume

7. Meet me in purgatory

8. Raise the red flag [추천]

9. Sacrifice on the mass

신동규(momdk778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