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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And Night
칼리 래 젭슨(Carly Rae Jepsen)
2026

by 한성현

2026.11.01

사랑에 빠지면 매 순간이 소중하다. 길게만 느껴지던 하루 24시간도 짧아진다. 습관적으로 곡을 만들어 방대한 창고에 쌓아 두는, 누구보다 부지런한 뮤지션에게는 이만한 재료도 없을 것이다. 'Call me maybe'의 반짝스타부터 팝 음악의 언더독 아티스트를 거쳐 결혼 끝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칼리 래 젭슨. < Day And Night >는 2025년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작곡가 남편과의 풍요로운 사랑을 24곡, 더블 앨범으로 넘치도록 풀어낸다.

< Emotion > 이후 그의 정체성을 형성한 1980년대 신스팝은 '밤'을 담당하는 두 번째 디스크에 할애했고, '낮'으로 명명한 첫 사이드는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 소울과 사이키델릭 팝을 표어로 내걸었다. 라이브 악기 편성으로 온화함을 잔뜩 적신 캔버스 위 즐거운 나들이가 한창이다. 'After all'이 이른 아침 은은한 햇빛처럼 문을 여는 이래 조곤조곤 잠을 깨우는 듯한 'Habits of creatures'의 그루브, 제목을 닮아 바람이 맑게 부는 'Blue skies'와 싱그러운 소프트 록 'Burning heart'가 순차적으로 칼리 래 젭슨의 세계를 넓힌다.

쉬운 길을 가리라 예상했던 일몰 이후의 사운드트랙도 의외의 우회로를 택했다. 'Don't leave me on the dance floor' 외에 알짜배기 팝 후렴의 비중은 적지만 새로운 모험이 이를 상회하고도 남는다. 첫 3연타만으로 계산은 종결, 특히 두꺼운 베이스와 스산한 보컬이 섞여 밤안개를 피워내는 'Amalfi Coast'는 그 신비로운 분위기가 오싹할 정도다. 밤 문화를 찬미하는 올빼미족도 놓치지 않았다. 팬들을 일종의 가족으로 묶어 음악 안에서의 연대감을 축복하는 'Motivation'은 간헐적으로 보여준 하우스 리듬 장악력이 정점에 오른 트랙이다.

한 번에 투하한 곡의 양이 많아 후반부가 흐려지는 함정은 앨범 발표 1년 뒤에 관례 행사처럼 미수록곡 모음집을 공개했던 아티스트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팝의 규격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였을까. 브릿지 파트를 생략한 채 두 번째 후렴 직후 막을 내리는 구조가 반복됨에 따라 물리적으로 잔상을 남길 시간이 부족할 때가 잦다. 물론 어디까지나 초반의 높은 선명도에 상대적으로 밀리는 것일 뿐 절대적인 약세까지는 아니다. 'No labels, I love you'가 좋은 반례다.

스트리밍이 보편 소비 방식이 되면서 차트 경쟁을 위해 거름망 없이 곡을 무턱대고 배출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난다. 숫자 놀음과 한참 전부터 거리를 벌린 아티스트는 역시나 그런 게으름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트랙이 최상급은 아닐지언정 각 노래에 특정 시간을 할당한 콘셉트, 낮과 밤이라는 타이틀을 빌려 충분한 차별점을 심은 기획은 더블 앨범 구성에 정당성을 선사한다. 많이들 간과하나 실은 가장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내용이 바로 이런 '근거' 아닌가. 칼리 래 젭슨은 그렇게 끝까지 기본기 싸움에서 승리한다.

-수록곡-
CD 1
1. After all [추천]
2. Habits of creatures [추천]
3. Versailles
4. On wires [추천]
5. Blue skies [추천]
6. Burning heart [추천]
7. Wild child
8. Good fine alright
9. Something tragic
10. Soft
11. Lonely side of the bed
12. Just a little walk on the moon

CD 2
1. Never let a good thing die [추천]
2. Amalfi Coast [추천]
3. Patience power passion [추천]
4. Don't leave me on the dance floor
5. Motivation [추천]
6. You don't know how it feels
7. Near or far
8. Diver
9. Hold me to the light
10. That's just me
11. No labels, I love you [추천]
12. Super sage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