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인터뷰

박혜경

by 손민현

2025.10.31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가시화하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법은 대중가요였다. ‘내게 다시’, ‘Lemon tree’,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를 포함해 후배들의 리메이크 세례를 받은 ‘안녕’과 ‘고백’ 등 박혜경의 디스코그래피에는 그 너울거림이 여러 빛깔로 담겨있다. 우리는 그의 음악으로 아름다웠던 시절을 감각하고 망설이던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기억에 먹이를 던져주곤 했다. 감정을 움직이는 목소리의 힘을 실감하던 나날이었다.


이렇게 독특한 음색으로 아름다운 순간을 선물해 온 박혜경의 음악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죽을 때까지 노래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 그는 가창에 있어 여전한 애정과 열정을 드러냈다. 밴드 더더(TheThe)에서 시작해 솔로로 활동, 그와 함께 한 프로듀서, 곡이 담고 있는 시간과 일화들, 앞으로의 활동에 있어서 본인의 감각을 자신감 있게 내보였다. 섬세한 표현이 확고한 자기인지로부터 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날의 담화를 전한다.




어떻게 박혜경은 이렇게 특별한 목소리를 갖춘 가수가 되었는가?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잘 만났다. 타 소속사에 있을 때 내 목소리가 록을 하기에는 힘이 없고 부드럽다는 평가도 들었는데 ‘록이 꼭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 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맞섰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만난 정규철 프로듀서가 내 음악을 듣고, ‘너는 네 목소리가 곧 네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순수하고 깨끗하게 마음을 흔드는 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고 그때 내 음악의 방향이 정해진 것 같다. 

시작을 함께 한 밴드 더더(TheThe)는 어떻게 시작했는지.
신촌 우드스탁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였을 거다. 사장님께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과 기타리스트를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김영준을 만났고 그가 써온 곡을 들어보았다. 가져온 곡보다도 부끄럽고 유치하다며 들려주지 않은 노래들이 너무 좋더라. ‘나는 이 곡 이렇게도 부를 수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밴드 더더를 함께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꽤 맹랑한 시절이었다.

솔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더더는 듀오였고 처음에는 김영준의 영향이 컸다. 2집부터 강현민의 곡을 더 싣고 내 색깔이 더 주목받았지만 결국에서 내가 지향하는 음악적 색깔과 팀의 목표는 달랐다. 결국 나는 곡을 쓰고 싶었고, 팀으로서는 나 혼자 부각되는 것도 약간 불편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어렸고 나도 자기 독립 의지가 강했다.

스스로의 보컬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생각보다 드라이하다. 목소리가 듣기 편안한 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좋아할 법한 노래는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노래의 운명은 첫 마디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매력이 없으면 사람들은 끝까지 듣지 않고 노래는 지루해지고 만다. ‘하루’를 예를 들면 첫 소절인 ‘참 나쁘죠...’를 노래처럼 부르지 않고 의도적으로 말하듯 툭 읊조렸다. 이제는 그 의도가 곧 본능이 된 것 같다. 이런 보컬이 내 색깔이라 생각하고 그만큼 목소리가 왜곡되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다.



독보적 음색이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노래할 때는 어떤 감정으로 부르는가?
‘빨간 운동화’를 포함해 거의 모든 곡을 첫사랑을 떠올리며 그 감정으로 불렀다. 너무 깨끗하고 아름답고, 순수하고 감사해서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사랑이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음악이었고, 그 사람 때문에 쓴 가사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그를 보고 싶진 않다. 그때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지금도 진하게 남아있다.

이 순수한 감정이 조이의 '안녕', 장범준의 ‘고백’, 가장 최근으로는 아이유의 '빨간 운동화' 등 최근까지 리메이크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후배들이 다시 부른 노래는 어떻게 들었는가.
조이의 ‘안녕’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보통 리메이크하면 원곡과 차별점을 많이 두던 과거의 작법과 달리 보컬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원곡을 보존한 느낌이다. 다른 측면에서 박혜경의 ‘고백’을 잊게 했던 장범준도 좋았다. 가수인데 가수 같지 않은 옆집 오빠 같은 느낌을 잘 살렸다. 그리고 아이유는 말할 필요가 있나, 그를 보며 과거에 덜 현명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자기 관리, 노래, 기타, 연기까지 모두 완벽하다.

비교적 최근에 발매한 싱글 ‘Nerd girl’(2017)은 신스팝이다. 장르와 타이틀 모두 박혜경을 염두에 둔 건지.
인디 밴드 롱디가 곡을 가져왔는데 멜로디가 너무 좋았다. 사실 피처링으로만 참여하려 했으나 녹음하고 보니 가사와 노래가 너무 좋아서 내 이름으로 발매하게 되었다. ‘너드’라는 소재에 대해서는 요즘 이런 번외의 사람들에 대한 집중도 이뤄지는 추세고, 원래도 내가 그런 사람이니까 괜찮았다.

시티팝 스타일로 ‘내게 다시’를 재해석한 ‘러빙유’(2023)의 제작 일화도 궁금하다.
이것도 재밌는 일화가 있다. 워터밤 페스티벌에서 뜻밖에 섭외 연락이 왔고 그 디제이가 편곡을 독특하게 해서 가져왔다. 찾아보니 그 행사는 내가 나갈 곳이 아니었지만 (웃음), 곡은 그대로 두기에는 아까움이 컸다. 

‘Lemon tree’가 수록된 리메이크 음반도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상업적인 선택지였지만 제2의 삶을 가져다준 운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는데 처음 곡을 받았을 때 가사가 너무 발랄했고 당시 나는 30대가 넘어 ‘언제까지 이런 노래만 불러야 하나?’ 싶더라. 더구나 결별 직후에 녹음했던지라 떨림이 그대로 담겨있다. 곡은 신나는데 슬프고 우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고승욱 엔지니어가 목소리를 만지지 않고, 말하는 것처럼 꾸미지 않으려는 내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잘 만져줬다. 자세히 들어보면 어떤 침울함과 슬픔이 느껴진다. 


박혜경과 반려견 사랑이

그렇다면 직접 뽑은 가수 박혜경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나는 당시 인기 있는지도 몰랐고 항상 목말랐다. 그래도 2002년 장충체육관 콘서트를 마치고 세종문화회관 공연 논의하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소속사 문제나 부담감 등으로 하지 못했는데, 돌아보면 내게 가장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나는 왜 1등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아쉬움도 컸다. (1등 한 노래는 없지만 2등 곡이 10개가 넘지 않나.)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나는 독보적인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늘 다짐했다. 모든 노래에 항상 ‘이 사람은 재해석되어야 한다. 당시에 저평가됐다’라고 댓글이 달리지만 아는 사람들이 오묘하게 찾아 들어주었고 감사하게도 오래 사랑받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박혜경의 곡들은 CF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데.
‘내게 다시’, ‘Delight’,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It’s you’, ‘동화’, ‘Feel me’, 빨간 운동화’, ‘우린 1년을 만났죠’ 등 38개의 광고에 내 노래가 삽입되었다. 감독들이 세련된 팝을 좋아하다 보니 한국 노래지만 가요 같지 않은 내 곡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최시라나 김혜수 같은 배우 분들이 곡을 많이 들어주었다. 어떤 CF에도 김민희 배우가 촬영할 때마다 내 노래를 매일 틀었고, 광고 감독이 그 노래를 알게 되어 넣었다고 들었다.

본인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음반은?
더더 시절에는 ‘It's you'와 ‘내게 다시’가 수록된 2집 < The One & The Other >, 그리고 솔로 활동 때는 ‘Rain’과 ‘Feel me’가 수록된 < Feel Me >다. 홍보가 힘들었는데 가장 많이 팔렸다. 

가장 마음이 가거나 본인의 매력이 잘 녹아든 곡도 궁금하다.
‘고백’은 내 시작을 함께 한,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Rain’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또 ‘동화’는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곡이다. 가사가 나온 직후 녹음실에서 불렀는데 재녹음을 해도 첫 순간의 감정이 나오지 않아 그대로 가게 됐다. 지금은 성대 수술도 하고 세월도 지나 다시는 이때처럼 못 부를 것 같다.

특별한 곡을 하나 더 꼽자면 음료수 광고에 삽입된 더더의 ‘It’s you’. 강현민에게 수많은 CD를 들려주며 ‘나 이런 거 부르고 싶어’라고 말했고 결국 탄생한, 내 음악적 지향이 담긴 곡이다.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인 그는 항상 날 믿어줬다. 사막 같은 다 죽어있는 공간에 내가 노래하면 새 생명이 돋아나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인의 곡 중에서 역주행을 바라는 곡이 있다면.
멜로디가 좋은 ‘I want you’가 역주행하길 희망한다. (만화주제가였던 ‘카누를 타고 파라다이스에 갈 때’도 최근 인기가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하는지.) 작곡가가 사실 내 목소리를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노래할 때 녹음실에 있던 모두가 ‘이거야!’라고 놀라셨다고 하더라. 처음 녹음 당시에는 워낙 바빠서 기억도 못 할 만큼 금방 끝내고 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젊은 분들이 많이 찾아서 재녹음 요청도 올 정도다. 올해 공연에서 처음으로 불러볼 계획이다.



앞으로의 활동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대중가수는 ‘사랑’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창작이 아니어도 나는 죽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다. 샹송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최근에는 우리말로 된 샹송 곡도 쓰곤 했다. 무엇이든 관계없이 어떤 곡이 되었든 최대한 노래하고 싶다. 최근에는 결국 가수 스스로가 활로를 찾아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하고 매일 밤 고민하고 찾는다. 

정규 음반을 발매한 지 상당히 오래됐다. 새 앨범에 대한 생각은.
언젠가는 새로운 음악을 내겠지만 어느 순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솔직히 나는 다시 록을 하고 싶다, 박혜경만의 록. 물론 피아노도 좋아하지만, 일렉트릭 기타가 주는 긴장감이 너무 좋기 때문에 기타와 함께 할 것 같다. 

록과 일렉트릭 기타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곡 구성적으로도 건반은 나와 피치가 비슷해서 목소리와 겹친다. 그러나 기타와 베이스는 나를 받쳐줄 수 있는 좋은 소스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공연할 때도 어쿠스틱 세션이 아닌 일렉트릭 기타 한 대와 함께 하면 독특해서 반응이 좋다. 라디오헤드 노래를 커버해서 부르면 공연 때 관객이 울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박혜경만의 스타일을 계속 가져가는 게 예전만큼 반응이 없을 수도 있을 텐데 괜찮은가.
너무 마음을 쓰지 않으려 한다. 음원 차트만이 기준이 아니지 않나. 지금은 오히려 매체가 발달하면서 꼭 차트를 겨냥하지 않더라도 알릴 수 있는 시대가 되지었다. 음악이 좋으면 결국 누군가 알아준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워낙 사람이 많고 활동을 해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AI와 마케팅도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SNS 속에서 소비되는 방식도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박혜경을 음악의 길로 이끈 인생 음악은?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의 신디 로퍼는 충격적이었다. 카디건스와 라디오헤드, 꼴통스럽고 동화스럽기도 한 스매싱 펌킨스도 좋아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듣고 시네드 오 코너에 빠진 기억도 생생하다. 방송이 잡혀있는데도 무작정 삭발도 따라 했으니 말이다(웃음).



진행: 임진모, 손민현, 한성현, 신동규
정리: 손민현
사진: 한성현
손민현(sonmin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