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은 자우림의 김윤아와 더불어 한국의 여성 모던 록 보컬의 대표적인 채권자로 평가 받는 뮤지션이다. 그녀는 그룹 더 더(The The)의 프런트 우먼으로, 또한 그간의 성공적인 솔로 경력들을 통해 자신만의 매혹적인 보이스 컬러를 십분 발휘, 팬 베이스를 나날이 확충해왔다. 어느덧 박혜경은 공연장을 거의 꽉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보컬리스트들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더 더의 지향점이 주류 시장을 어느 정도 인식한 '말랑말랑한 록'이었다 하더라도 이 땅의 레코드 제작자들이 가장 돈이 안 된다고 눈을 찌푸리는, 기성 세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천하의 몹쓸 '예비범죄자' 집단으로 비춰져 왔던 그 '록'이라는 음악적 형태가 그녀에게만큼은 굴레였던 것일까. 박혜경은 솔로 2집부터 갑작스레 목소리의 톤을 낮추기 시작하며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의 음악적 변화가 있음을 암시했다. 확실히 두 곡 모두 뛰어난 멜로디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 1집의 '주문을 걸어'와 두 번째 작품의 수록곡인 '하루'사이의 음악적 외피는 그 느낌부터가 사뭇 달랐다.
이번 신작 [Seraphim](2003)은 이러한 박혜경의 변모된 음악적 방향타가 확실하게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는 앨범으로써 파워풀한 껍질을 깨고 그간 강현민의 외조로 일궈낸 소녀적 감성이 그 극점에 다다랐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2집까지 어스름한 그림자마냥 남아있었던 록의 내음은 완벽하게 거세되어 그야말로 달콤한 곡들이 거의 전부를 꽉 채운다. 조용한 어쿠스틱 넘버 '친구', 강현민의 작곡 캐릭터가 그대로 엿보이는 '우린 1년을 만났죠', 피아노 발라드 '이런 나' 등, 초반부만 들어봐도 일순 감지할 수 있다.
분위기는 이어진다. '친구'와 엇비슷한 '오아시스의 하늘', '이런 나'와 이란성 쌍생아인 '천사의 시', 심현보가 어느덧 강현민과 비등한 위치의 파트너에 올랐음을 알 수 있는 찰떡궁합 트랙 '잔소리', 촉촉한 감수성의 '새' 등이 바로 그러하다. 하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어 그녀의 보컬 내공이 이제는 세밀한 조정까지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한다. '진짜 캐리어'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드러나는 법이다.
하지만 박혜경은 상기한 곡들이 아닌 브라스 사운드가 주도하는 경쾌한 스카 록 송 '안녕'을 첫 싱글로 내걸어 조그마한 차별화 전략을 취했다. 여름이라는, 항상성 아닌 시기성을 고려한 점이 조금은 엿보이지만 뻔히 예상되는 발라드가 간판이 아니라는 점은 어쩌면 그녀의 용기와 자신감을 대변한다 할 수 있다. 뮤지컬 넘버 '사랑은 비를 타고 오네요' 역시 청취자들의 다양한 선택권을 적극 인정한 색다른 곡 중 하나. 이 두 곡 모두 중간에 삽입해 분위기의 반전을 꾀한 점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강도를 낮춘 솔깃한 곡들에 그녀의 입김이 몰려있는 점을 통해 이제는 박혜경이 보편적 감수성을 대변하는 '팝 보컬리스트'의 옷으로 완전히 갈아입었음을 알 수 있는 음반. 물론 군데군데 미세한 록의 양념이 처져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대세의 역전을 꾀할 만큼은 못 된다.
박혜경은 이처럼 본 레코드에서 2000년 여성 보컬리스트들의 대거 등장 속에 스스로가 자신의 장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적극 발전시켜 탈출구를 모색, 성공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따라서 작품은 우리에게 록에서 팝으로의 전환이 욕을 먹어야 할 이유가 하등 없다는, 모든 문화적 카테고리에 절대 혹은 비교 우위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앨범 내에서의 완성도'이며 박혜경은 이 임무를 더없이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수록곡-
1.친구
2.우린 1년을 만났죠
3. 12월 7일 나는 혼자다
4. 이런 나
5. 사랑은 비를 타고 오네요
6.안녕
7. 오아시스의 하틀
8. 천사의 시
9. 잔소리
10. 사랑은
11. 점쟁이
12. 새
13. 나비야
14. Seraphim
15. 예쁜 집 – 전쟁으로 상처 받은 아이들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