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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iors
그린 데이(Green Day)
2024

by 김태훈

2024.02.01

‘구원자(Savior)’가 누구일까? 병든 미국 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난세의 영웅일까? 세상을 아예 갈아엎는 혁명가? 혹은 그린 데이 본인들이 그 역할을 자처하려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의 음악을 살리기 위해 재합류한 프로듀서 롭 카발로(Rob Cavallo)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뭐든 간에 그린 데이의 14번째 앨범 < Saviors >는 그들을 구원한다.


2019년, 분열과 혐오로 물든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바라보며 완전히 의욕을 잃은 그린 데이는 반항이라는 변명의 탈을 쓴 현실 도피작 < Father Of All… >을 내놓았다. < Dookie >의 즐거움, < American Idiot >의 시의성이나 견고한 완성도와 비교해 보기도 어려운 괴작의 탄생에 팬들은 기겁했고, 그린 데이 본인들조차도 만족할 수 없었다.


< Saviors >는 현재를 직시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전작과 같이 애써 외면하지 않은 결과, 그린 데이식 펑크 록의 본질이 되살아났다. 첫 트랙이자 그들의 전형에 가까운 'The American dream is killing me’는 과거 ‘21st century breakdown’에서 노래한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면이 더욱 짙게 드리운 2020년대의 풍광을 노래한다. 다소 앙상하고 뻔하긴 해도 어쨌든 다시 목소리를 높여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 자체의 새로움은 없지만, 익숙한 풍미를 되찾았다. ‘Look ma, no brains!’나 ‘1981’처럼 신나게 달리는 곡은 초기작 < Kerplunk! >의 ‘Who wrote Holden Caulfield?’나 ‘Welcome to paradise’처럼 강렬한 기타 톤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부드러운 멜로디와 간혹 튀어나오는 재기발랄한 기타 리프는 < Nimrod >의 기발함이 연상된다.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Last nights on earth’ 그리고 ‘21 guns’ 등으로 대표되던 특유의 서정성은 세월의 흐름 덕분인지 더욱 깊어졌다. ‘Goodnight Adeline’은 빌리 조 암스트롱의 애절한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를 동원한 록 발라드의 조합이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바이올린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 구성의 ‘Father to a son’은 < ¡Tré! >의 ’The forgotten'에서도 쓰인 스타일을 훨씬 편하고 간결하게 재구성한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Fancy sauce’는 냉소 안에서 낭만을 찾아 헤매는 자의 절규처럼 들린다. 특히 모든 세션이 폭발하며 감정을 터트리는 후반부 구성은 < 21st Century Breakdown >식 장대한 록 오페라를 잠깐이나마 되살리는 최상의 하이라이트다.


의외로 가장 큰 수확은 정공법으로 만든 ‘Bobby sox’에 있다. 위저(Weezer)의 파워팝이 연상되는 단순한 멜로디 및 코드 진행과 정석적이고 반듯한 구성, ‘내 애인이 되고 싶니‘라고 외치는 가사에 딱히 특별한 첨가물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이 가득하다. 약간의 우울감을 내재한 다른 수록곡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더욱 돋보인다.


< Saviors >는 그린 데이 음악 스펙트럼 집약체다. 앨범 내내 익숙한 요소들이 끊임없이 재생되지만, 그 범위는 생각보다 꽤 넓고 여전히 매력적이다. < ¡Uno! >, < ¡Dos! >, < ¡Tré! > 트릴로지로 크게 넘어져 생긴 흉터를 감싼 < Revolution Radio > 시절이 그랬듯, 붕대를 감고 다시 일어나 그들의 자리로 돌아왔다. 예전처럼 하늘 높이 날진 못해도, 부러진 날개를 다시 붙이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이것이 구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수록곡 -

1. The American dream is killing me

2. Look ma, no brains!

3. Bobby sox [추천]

4. One eyed bastard

5. Dilemma

6. 1981

7. Goodnight Adeline [추천]

8. Coma city

9. Corvette summer

10. Suzie chapstick

11. Strange days are here to stay

12. Living in the ‘20s

13. Father to a son [추천]

14. Saviors

15. Fancy sauce [추천]

김태훈(blurryday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