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 취향에 따라 판단이 갈리지 않을 작품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린 데이의 신보의 경우라면 그 차이가 좀 더 극명할 듯하다. 대표작에 빗대 이야기하자면 < Dookie >에 매력을 느꼈던 이들에게는 환호성을, < American Idiot >을 편애하던 팬들에게는 판정 보류의 선택을, < 21st Century Breakdown >으로의 변화를 눈여겨보던 진보적 리스너들에게는 '다음 기회에'의 도장이 찍힌 철지난 복권을 마주하는 감상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발라드 한 곡 없이 직설 화법으로 일관하는 신보의 키워드는 '초심으로의 회귀'이기 때문이다.
알려져 있듯, 창작력에 물이 오른 이들은 2012년 말과 2013년 초를 거쳐 각각 스페인어로 1, 2, 3을 뜻하는 < ¡Uno! >, < ¡Dos! >, < ¡Tré! >라는 앨범을 두 달을 간격으로 발매 예정 중에 있다. 애초에 더블 앨범으로 발매를 계획하던 앨범 작업 과정은 작곡이 예상 외로 잘 풀리게 되어 처음의 아이디어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리더인 빌리 조 암스트롱이 스스로 밝힌 이야기이니만큼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소식으로 들린다.
앨범에는 우리가 열광하던 그린 데이의 '펑크의 원초성과 팝적 감성을 동시에 머금은' 음악이 그대로 담겨있다. 슬라이드 주법의 베이스로 그 옛날의 로큰롤을 재현한 'Nuclear family'와 기타의 꾸밈음을 활용해 좀 더 풍성한 팝 사운드를 들려주는 'Stay the night',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로 애청곡을 예약하는 'Rusty James'는 그에 대한 근거가 되어주는 곡들이다.
새로운 면모는 싱글로 커트되었던 'Kill the DJ'에 집중되어 있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Psycho killer'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도입부 리듬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드럼, 베이스, 기타라는 기본의 밴드 편성으로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간 선보이지 않았던 '댄서블한 록 넘버'라는 점에서 기존 이들의 커리어와는 차별선을 긋는 트랙으로도 들린다.
핵심은 < Dookie > 시절로의 회귀이지만, 후기 앨범들과의 연결고리도 함께 보여 반갑다. < American Idiot >을 잇는 사회비판적 메시지는 물론이요, 한 템포 늦추며 대미를 장식하는 'Oh love'의 기타 솔로에서는 < 21st Century Breakdown >의 수록곡 'Before the lobotomy'의 기타 솔로를 빌려와 기존 커리어의 확장적 감상을 전하기까지 한다. 곡의 멜로디를 기억하고 있는 고정 팬들이라면 감탄을 연발할 지점이 아닐까.
'Kill the DJ'로 대표되는 '필살 트랙'은 과거의 그것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준수하지 않은 트랙이 없다는 점이 앨범을 범작 이상의 수작으로 승격시킨다. 빌리 조 암스트롱이 이 앨범을 두고 3연작 중 '파티를 준비하는' 느낌의 워밍업 격 음반이라 밝힌 바 있으니, '그래도 뭔가 부족한 맛'이 남는 팬들이라면 곧 공개될 < ¡Dos! >를 기다려보도록 하자. 그들의 말대로라면,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파티의 한창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수록곡-
1. Nuclear family
2. Stay the night [추천]
3. Carpe Diem [추천]
4. Let yourself go
5. Kill the DJ [추천]
6. Fell for you
7. Loss of control
8. Troublemaker [추천]
9. Angel blue
10. Sweet 16
11. Rusty James [추천]
12. Oh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