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 >에서 비틀렸던 이승열의 음악은 < SYX >로 넘어오며 뒤틀린다. 공간감은 사방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며 텍스쳐는 왜곡과 변형의 통로를 거쳐 나온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소리 실험이 아티스트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더 벌려놓는다. 여기에 이번에는 전자음악에 대한 관심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언뜻 들리는 < The Eraser >에서의 톰 요크 식 사운드서부터 근래 록 신에서의 일렉트로니카 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전자음들이 곳곳을 채운다. 일찌감치 아티스트의 음악은 좁은 의미에서의 송라이팅 단계를 벗어나 사운드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 멜로디 감이 풍부하다는 말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수식이 가능했던 예전 이승열의 시대는 일찌감치 막을 내렸다. 횡행하고 충돌하는 소리들의 한 가운데에 이 인물이 서있다.
각양의 전자음들이 끈적이는 블루스와 댄서블한 로큰롤, 감미로운 팝 발라드, 서사를 품은 포스트 록을 감싼다. 앨범의 사운드 테마는 첫 곡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미니멀한 건반 리프와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신스 사운드로 시작해 몰아치는 음향의 콜라주로 후반부를 장식하는 'Asunder'가 음반 전반의 양상을 예고한다. 절제미 있는 선율 샘플과 포화 상태에 오른 소리 집합이 병렬식으로 배치된 작법은 뉴웨이브 풍 댄스 록 'Ave'과 'Feel your body move', 여러 양태의 질감을 새긴 일렉트로니카 'Love for sale', 잭 런던의 단편소설을 헤비 블루스와 전자음의 조합으로 가져온 'To build a fire' 등 대부분의 트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혼잡해 보이는 구조가 감상의 난도를 올린다만 그럼에도 음반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를 오가는 흐름 속에서 특유의 우울하고 신경질적인 공기는 고혹적인 미로 구체화된다. 결과물들은 긴장의 끈 위에서 신경을 쥐락펴락 한다.
앨범을 계속 쥐게 하는 요인은 하나 더 존재한다. 사운드스케이프 구축에 집중을 기하며 선율의 인력을 배제시키는 듯하는 느낌도 따르나, 멜로디 단위에서도 작가는 결코 힘을 빼지 않는다. 음미의 최종 단계가 음향 실험의 산물에 닿게 되는 것과는 반대로 시작 단계는 선율의 흡입력과 조응한다. 이 지점에서 모호함으로 가득했던 전작보다 더욱 큰 설득력이 발생한다. 벌스와 코러스의 멜로디들이 대체로 간편하면서도 명료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Asunder'와 'Ave', 'Amore Italiano'에서의 리프들은 캐치하기까지 하다. 앰비언트 풍 사운드가 전반에 깔린 후반부에서도 노래 그 자체의 소구는 상당한 수준에서 조성된다. '노래1'이 대표적이다. 감각을 끌어 모으는 팝 멜로디가 훌륭한데다 사은드 콘셉트와 어우러지는 결속도 좋다. 게다가 이들의 결속 효과는 울림이 담긴 이승열의 보컬이 등장하는 시점서부터 더욱 강해진다.
음반은 잘 만들어졌다. < Why We Fail >과 < V >를 거치며 구축됐던 작가의 새로운 세계관이 더욱 확고해졌다. 결과물은 이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아티스트의 컬러는 더욱 진해지고 사운드와 멜로디가 다채로이 혼합된 산물은 매력을 발산한다. 묘하게 생성된 아름다움이 앨범에서 요동친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소리들과 명확하게 자기 형태를 유지하는 선율들, 이 상반된 두 요소가 이루는 조화가 근사하다. 실로 멋진 작품이다.
-수록곡-
1. Asunder [추천]
2. A letter from
3. Amore Italiano [추천]
4. Ave [추천]
5. Come back
6. Feel your body move [추천]
7. Love for sale [추천]
8. To build a fire
9. 노래1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