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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We Fail
이승열
2011

by 배순탁

2011.08.01

“우리는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누구나 실패하지만 그 경험들로 인해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계속 도전하는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삶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새 앨범은 그래서 고독하지만 희망적이다.”

신보에 대한 이승열의 위와 같은 설명은 나에게 곧장 '몰락의 에티카'를 떠올리게 해줬다. 몰락의 윤리학이란 그렇다면 무엇인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에 따르면, 그것은 '숭고한 실패'다. "세계가 그들을 파괴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지키려고 한 마지막 하나는 결코 파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나머지 전부를 포기할 줄 아는 자들. 그러니까,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이승열도 말했듯이 고독하지만 마침내는 희망적인 사람들이다.

첫 곡 'Why We Fail'에서부터 이승열은 묻는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가서야 대답한다. 그 이유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그러나 알고 싶다고. 이 전개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갖는 설득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라이브의 질감을 한껏 살린 연주 파트와 더불어 그 어딘가에는 분명히 존재할, 따뜻한 눈물을 노래한다. 벼랑 끝에 서서 몰락을 예비하는 자들을 위한 찬가 '라디라'는 또 어떤가. 업 템포에 가까운 리듬이지만, 그 정서는 분명 무겁고 어두운 성질의 것이다. 우리네 안타까운 삶의 표정들을 결국에는 긍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그 바탕에는 떨쳐낼 수 없는 비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바로 이번 3집의 전체적인 인상이 2집에 비해 확연히 톤-다운되고, 어두워졌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그래서 3집은 2집보다는 데뷔작과 그 생존가(價)를 공유한다. 그런데 내 인생에도 워낙 부침이 많아서였는지, 나는 이런 이승열이 더 좋다. 피리를 부는 소년에 이끌려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쥐처럼, 그의 음악에 내재되어 있는 '바로크한 비장미'에 일찍부터 매혹당한 까닭이다. 실재를 견디게 해준다는 점에서 예술은 항상 일정한 정도의 숭고함을 지니는 것이다. 나에게 이승열이라는 아티스트는 그런 존재다.

음반에서는 첫 싱글 '돌아오지 않아'가 대표적이다. 바르트가 얘기한 푼크툼, 그 찰나의 결정적 순간을 풀어낸 이 곡은 지금은 떠나고 없는 그 누군가를 위해 바치는 진혼가다. 그런데, 진혼가라니. 이승열 목소리의 위력이 최대치로 발휘될 수 있는 스타일 아닌가. 해외에서는 이런 풍의 음악을 토치 송(torch song)이라고 정의하는데, 그야말로 가장 적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직면해야 맞이할 수 있을 그 어떤 구원의 순간을, 이승열의 목소리가 희망이라는 이름의 횃불로 노래한다.

'솔직히' 역시도 '돌아오지 않아'와 전체적인 궤를 같이하는 곡이다. 황량함을 자아내는 효과음들은 분명 이 세계에 대한 음악적인 변주일 것이며 점차 확장되는 스케일은 그 반대로, 도처에 자리한 절망의 블랙홀들을 어떻게든 돌파하려는 화자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일 테니까. 이런 관점에서 이승열이 본작에서 겨우겨우 붙들고 있는 한 자락 휴머니즘은 따스하다기보다는 장엄한 휴머니즘이다. 듣는 이들이 어느 순간, 그의 팔세토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이유다.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이 다음부터다. 아마도 가장 직접적인 절망의 대상일 '돈'에 그는 역설적으로 가장 흥겨운 리듬을 이식해놓았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곡은 한대수를 피처링해 화제를 모았던 '그들의 Blues'와 닮아있다. 이 두 곡은 그래서, 음반의 정서적 기조를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동인(動因)들로서 기능한다. 이승열이 직접 말했듯이 모호한 가사쓰기가 아닌 그 소재가 명확하다는 점에서도 둘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주제의 일관성은 '너의 이름', '또 다시', '나 가네', 'D 머신' 등에서도 지속된다. 이승열은 우리가 바라는 그 어떤 진짜 삶은 지금과 여기가 아니라 그 어딘가와 언젠가에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뮤지션이다. 음반 설명에 본 앨범을 '세속적 성가', '성스러운 유행가'라고 누군가가 정의해놓았는데, 이런 점에서 나 역시도 백퍼센트 동의하는 바다. 결국 세상은, 싫어하는 것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니까.

여전히 그의 음악에는 '제3의 멜로디가 부재'하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역시나 여전히, 강한 울림을 지닌 그의 목소리다. 앨범에서 이승열이 시도한 모던 록, 재즈, 포크, 블루스 등의 다채로운 장르가 이물감 없이 공존할 수 있는 근간도 다름 아닌 그의 목소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실패하는 것일까”라고. 정답이나 해답 따위는 본래 없다. “그러다가 오십 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당신이 지켜내려고 한 그 마지막 한 가지만 수호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니까.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몰락의 에티카'니까.

-수록곡-
1. why we fail
2. 라디라 [추천]
3. 돌아오지 않아 [추천]
4. 솔직히
5. 돈
6. 너의 이름
7. 또 다시
8. 나 가네 [추천]
9. lola (our lady of sorrows)
10. 기다림의 끝
11. D. 머신
12. 그들의 Blues (feat. 한대수) [추천]
배순탁(greattak@iz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