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비밀의 화원
내귀에 도청장치
2005

by 신혜림

2005.06.01

지난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에서 만난 내 귀에 도청장치는 전형적인 인디 뮤지션이었다. 강력한 포효와 충격적인 퍼포먼스는 관객들을 광란의 도가니에 빠져들도록 하기에 충분했고, 누구라도 익히 알고 있는 그들의 범상치 않은 이름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무대였다.

그러나 그들의 스페셜 미니 앨범 <비밀의 화원>에서는 공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신비한 보랏빛으로 채색된 자켓 속의 네 남자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그런 모습은 철저하게 꾸며진 페르소나였을 뿐. 진짜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와 볼래?'

그래도 내 귀에 도청장치의 달콤한 속삭임에 방심할 수는 없는 것.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내딛은 비밀의 화원 입구에서 들려오는 'My doll'은 생각보다 듣기가 편하다. 한 번만 들어도 곧 따라 부를 수 있을 노래로 징글쟁글 거리는 기타 연주가 꽤 인상적이다. 인디추종자, 혹은 일반 록 팬이 아니더라도 고개를 가볍게 흔들면서 들을 만한 록 넘버다.

이어지는 'You'는 '어쿠스틱'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편안한 팝 록이다. 보컬 이혁 특유의 목소리만 아니라면 주류 가요시장에 내놔도 손색없을 만하다. 타이틀곡 '아(Y)'는 1집에 수록되어 있던 곡을 리메이킹 한 슬픈 록발라드. 기존 그들의 이미지였다면 '절규'가 더 어울렸을 법한 이별의 아픔을 담은 노래지만, 여기에서는 그저 애잔한 느낌이 더 강하다.

사실 그들은 과거에도 비판과 저항의 곡 못지않게 사랑을 다룬 노래가 많았다. 특히 히트곡 'E-Mail'이나 'Cry'도 모두 대중의 기호에 어울릴 만한 가사를 가졌다. 또 전달하는 메시지 차원을 넘어서서 익숙한 코드의 멜로디가 돋보이는 넘버들도 상당수였고, 미니 앨범의 대표곡 '아(Y)'의 원래 버전도 꽤나 가요적이었던 것을 떠올린다면 그들의 이런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화원 초입에서 긴장했던 이유는 과거에 그룹명이나 무대위의 퍼포먼스에 가려진 그들의 감성적인 면모를 세세히 살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운드 위주의 음악이 형성되는 언더 록 신에서 이정도로 대중적 작풍의 멜로디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은 따로 '미니 앨범'까지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을만한 그들의 숨겨진 장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들을 좋아하는 많은 마이너 취향 팬들은 앞의 세 곡을 듣고 '너무 가볍잖아?'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실망 방지용이었을까, 그들은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록발라드 '비밀의 화원'은 어느 정도는 사이키하게, 어느 정도는 익숙하게 만들어 내 귀에 도청장치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색깔을 보여준다.

마지막 곡 'Why?'는 유일하게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록. 이제야 그들의 본래적 모습을 되찾은 느낌이 들 것이다. 게다가 곡의 전개를 각각의 악기 솔로가 드러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앞으로 그들의 공연 레퍼토리의 하나로 자주 만날 수 있을 듯싶다.

오로지 격렬하게 지를 줄만 알 것 같던 내 귀에 도청장치도 아련한 발라드에 눈물 흘릴 줄 아는 남자들이었다. 어쩌면 그들 이름의 모델이 된 9시 뉴스의 그 정신질환자도 너무 순수해서 힘겨운 세상에 많은 상처를 받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메이저든 마이너든, 정상인이든 비정상인이든 우리는 모두 위로받아야 할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는, 벽을 무너뜨린 휴머니즘의 세상이 <비밀의 화원> 속에 자리하고 있다.

-수록곡-
1. My doll (작사: 황의준 / 작곡: 이혁)
2. You (황의준 / 이혁, 황의준)
3. 아(Y) (이경 / 송재우)
4. 비밀의 화원 (이혁 / 황의준)
5. Why? (이혁 / 내 귀에 도청장치)
6. You (MR)
7. 아(Y) (MR)

프로듀서: 송재우
신혜림(snow-forge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