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컴필레이션 앨범 에서 곡 '오! 이런'으로 첫 걸음을 내딛었던 내 귀에 도청장치(이하 내귀)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며 지난 흔적을 되밟아 가는 신보를 발표했다. < Shaman >은 초창기 1집에서 근자의 x집까지, 밴드를 대표할 수 있는 곡들을 고르게 수록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단순히 베스트 형식의 모음집이 아니라 라이브 공연의 순간들을 정성스레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이 앨범은 형식상 베스트 앨범이면서 또한 내적으로는 공연 실황 앨범이기도 하다. 음반에 기록된 곡들은 올해 3월 16일에 있었던 콘서트에서 연주하고 부른 것들이다. 팬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공연의 특성상 노래는 기존의 궤를 유지하면서도 그 형상을 달리하는 독특한 묘미가 있다.
소소하게(昭昭一) 발견되는 지엽적이거나 굵직한 변화들은 보다 감각적이고 낯설지 않게끔 청중에게 다가가는 것에 기반을 둔다. 꾸준히 대중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였던 내귀는 공연에서 좀 더 진일보한 고민들을 선보였다. 그것은 현장을 함께 한 바이올린과 첼로의 현악과 퍼커션과 건반 등의 세션에서도 알 수 있으며, 잘 알려졌으면서도 록의 노선에 있는 '한 번만 더'와 '나에게로의 초대'의 내귀식 리메이크에서 알 수 있다.
다변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퍼커션과 건반이다. 그 둘은 연주의 여백을 풍성하게 채워주다가도 '거울'에서의 퍼커션의 몽환적인 리듬, '아'의 건반 연주가 치솟는 전개에 살을 붙이는 다채로움을 만들어낸다. 'E-mail'의 힘 있는 변주를 이끌어내는 것도 퍼커션과 건반의 결합이며, 'Why can not' 중반부의 퍼커션과 드럼의 경주, 'Feel'에서 유려한 밴드의 연주와 조화를 이루는 통통 튀는 건반 등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아쉬움은 있다. 이혁의 보컬은 기교적인 면에서 유려하지 못 할 때가 있고 종종 힘이 넘쳐 절제를 잃으며, 코러스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 해 머뭇거리는 감을 준다. 특히 바이올린과 첼로는 아직 미완의 시도 같다. 바이올린은 여느 가요처럼 다소 관습적으로 활용되며, '아'나 '유리꽃' 이외의 곡에서 첼로는 그 선율과 소리를 제대로 살리지 못 할 경우가 흔하다. 물론 여기에는 공연이라는 제한과 제작 여건상의 어려움도 작용했을 것이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결성한지도 어느덧 12년이 되었다. < Shaman >은 일부 부족할지라도 그들의 긴긴 세월을 이야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러 변화들을 내포하고 있으나 앨범 후반부의 'Slave'와 'Party', '오아시스'는 그들의 고유한 사이키델릭과 인더스트리얼적인 개성을 올곧이 간직하고 있다. 'E-mail'과 '유리꽃'의 어쿠스틱한 감성도 좋으며, 퍼커션과 건반의 기용으로 이루는 장르적 결합과 변주의 풍성함도 좋다. 앨범은 이들 밴드가 낯선 사람에게도 샤먼(shaman) 같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수록곡-
1. Shaman (instrumental)
2. Go
3. You
4. 거울
5. 한 번만 더 (remake)
6. Cry
7. 아
8. 나에게로의 초대 (remake)
9. E-mail
10. Why can not
11. 유리꽃
12. Feel
13. Slave
14. Party
15. 오아시스
작사/작곡/편곡 : 내 귀에 도청장치, 프로듀서 : 내 귀에 도청장치, 공동 프로듀서 : 김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