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었을 때 단번에 '무언가'가 다가오는 음악, 이것만큼 좋은 음악이 어디 있을까. 좋은 음악이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직관성과 충동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 프란츠 퍼디난드는 좋은 음악을 뽑아낼 줄 아는 몇 안 되는 밴드 중 하나다. '소녀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는 록 댄스'를 만들겠다는 이들의 목표는 얼핏 보기에는 그저 그런 소박한 소망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이 조그만 바람에는 상당한 포부가 서려있다. 듣기만 하면 바로 어깨를 들썩이게 할 수 있는 음악이 그리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분명 어려운 과업임에도 프란츠 퍼디난드는 매 앨범마다 제 목표를 늘 성공으로 이끌고 있다. 2000년대의 가장 멋진 앨범이었던 셀프 타이틀 앨범 < Franz Ferdinand >를 시작으로 밴드의 음악에 맞춰 발을 구르는 록 팬들은 매해 늘어나는 추세다.
꾸준함에 먼저 박수를 보낸다. 새로운 사운드를 조금씩 시도하면서도 밴드는 고유의 제 스타일을 확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으레 한 색깔로 파고든다하면 다량의 클리셰를 남기며 몇 안 되는 방법론에 구속되는 일련의 함몰 경로가 대표적인 경우겠으나 밴드는 조금 예외로 둘 필요가 있다. 첫 앨범 < Franz Ferdinand >에서 두 번째 앨범인 < You Could Have It So Much Better >로 넘어갈 때에는 사운드의 몸집을 불려보기도 했고 전작인 세 번째 앨범 < Tonight: Franz Ferdinand >에서는 마이너 풍의 스케일과 전자 음향을 활용하는 변화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잘한 변용들을 구사함과 동시에 누가 들어도 주인공을 추측케 할 수 있는 프란츠 퍼디난드 만의 색깔을 지속해서 덧칠해나갔다. 밴드를 정의하는 경쾌한 리듬감은 이들의 음악을 늘 탄탄하게 뒷받침했고 스트레이트한 진행과 캐치한 기타 리프는 제 성향을 쉽게 잃지 않았으며 알렉스 카프라노스의 보컬은 변함이 없었다.
< Right Thoughts, Right Words, Right Action >이라 명명된 이번 앨범도 결국 동일한 맥락 위에 위치한다. 어두운 톤의 일렉트로니카를 담아냈던 지난 앨범과 비교했을 때, 이번 신보는 특유의 밝은 색채와 아날로그 사운드로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는 변화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쉽사리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다시 말해 한결같다는 인상을 받는 이유는 프란츠 퍼디난드가 가진 고유의 스타일을 이번에도 적절히 용해시켰기 때문이다. 여전히 활력이 넘치고 여전히 댄서블한 음악이다. 늘 그래왔듯 이들의 노래는 어깨를 가만히 내려놓는 것을 도리려 더 힘든 일로 만들어버리고 까딱거리는 발목을 멈추게 하는 것을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일로 만들어버린다. 첫 트랙 'Right action'부터 마지막 트랙인 열 번째 곡 'Goodbye lovers & friends'로 이어지는 앨범의 매 순간마다 밴드는 듣는 귀를 재미있게 들었다 놓는다.
리드 싱글로도 치고 나왔던 앨범의 선두 트랙 'Right action'은 그중에서도 단연 제일 재미있는 곡이다. 펑키한 기타 리프는 시종일관 흥겨움을 유지하고 힘이 넘치는 코러스와 여기에 맞춰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는 신선한 공기를 빵빵하게 주입한다. 이어지는 'Evil eye'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훌륭한 알렉스 카프라노스의 보컬 연기를 손꼽아본다면 넘실거리는 베이스 라인 위에서 목소리로 춤을 추는 이 곡을 꼽아야 할 테다. 그러나 모든 사운드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그림을 고려했을 때 베스트 트랙은 단연 'Love illumination'이다. 곡의 시작부터 댄서블한 비트와 매력적인 기타 리프가 귀를 점령한다. 기타와 교차되면서 등장하는 바리톤 색소폰 연주도 소리에 풍부함을 선사하며 라이브 무대에서는 빈티지한 키보드 사운드로 대체되는 오보에의 솔로는 말할 필요도 없이 멋지다. 앨범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이자 프란츠 퍼디난드 표 댄스 록이 눈부시게 날아오르는 순간이랄까. 최고의 킬링 트랙이다.
물론 이후의 곡들도 빼놓을 수는 없다. 독특한 박자감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Stand on the horizon'도 그렇거니와 펑크 스타일로 뻗어나가는 'Bullet'과 키보드의 너른 활용이 돋보이는 'Treason! animals.'도 언급하지 않는다면 아쉬울 트랙들이다. 자신들의 음악을 이루는 기본적인 틀을 이루면서도 각 노래마다 다른 포인트로 재미를 주고 있는데 이러한 곡들이 그 증거라 하겠다. 전개 방식이나 사운드에 있어서 조금은 전위적인 'The universe expanded'와 'Goodbye lovers & friends'도 이와 같은 범주에 해당된다. 다만 이 곡들이 자리한 후반부에 있어서는 다소 침침하면서도 실험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댄서블한 음악의 골자가 어느 정도 방해를 받는 것은 아닌지 싶은 인상을 준다. 이러한 시도를 전부터 안 해온 것은 아니었지만 작품 자체가 맥이 빠지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그림은 아쉽게 비춰진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보다도 앨범 곳곳에 자리한 매력들이 상당하기에 작품은 일정 수준 이상의 위치를 일찌감치 점령하고 있다. 늘 그래왔듯 프란츠 퍼디난드의 신보도 역시 매혹적이고 마력이 넘친다. 신나는 팝 사운드로 단숨에 팬들을 사로잡으며 발랄한 재능으로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묵직한 무게감이나 굵직한 부피감은 존재하지 않지만 사실 이들의 목적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의 자기 확립보다는 흐름 밖에서의 자기 충족에 있어 왔다. 첫 앨범 < Franz Ferdinand >도 그랬고 < You Could Have It So Much Better >도 그랬으며 < Tonight: Franz Ferdinand >도 기실 그랬다. 신나는 사운드와 경쾌한 스텝, 방방 뛰는 분위기를 제하고서도 프란츠 퍼디난드를 설명할 수 있을까. '소녀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는 록 댄스'라는 본능을 향한 밴드의 목적에 신보는 이미 충실하다. 올해도 우리는 이들의 음악으로 즐기고 흔들고 구를 수 있겠다.
-수록곡-
1. Right action [추천]
2. Evil eye [추천]
3. Love illumination [추천]
4. Stand on the horizon
5. Fresh strawberries
6. Bullet [추천]
7. Treason! animals [추천]
8. The universe expanded
9. Brief encounters
10. Goodbye loves & fri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