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은 때로 너무 무겁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를 위에서 이끌며 그 내면과 외연의 동시 확장을 이룩한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미처 포괄하지 못하는 나머지들의 존재를 그저 잊혀지게 한다는 점에서 거대담론은 또한 불완전하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록 음악계는 이러한 거대 담론들에 의해 역사의 테두리를 넓혀왔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시작으로 비틀스를 거쳐 너바나와 프로디지까지,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던 대그룹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후 1990년대 후반이 지나면서 점점 더 희석화되었던 거대담론은 이제 록 신에서 거의 그 자취를 감춘 상태다. 이제 어느 누구도 특정 장르가 밑으로부터 솟아올라 세계를 제패하는 감격의 순간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의 록 필드는 각개전투의 양상을 확연하게 드러내며 아티스트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그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따라서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 프란츠 퍼디난드는 현재 록 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국지전의 특성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음악 공동체다. 애초부터 그들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야 말리'라는 원대한 포부 따윈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저 '소녀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는 록 댄스'를 만들겠다는 조그마한 소망을 갖고 자신들의 음악 경력에 유쾌한 방점을 찍어왔다. 작년 발표되어 빅 히트를 기록한 데뷔작의 첫 싱글 'Take Me Out'만 들어봐도 이렇듯 신명을 표방하는 '유쾌한 씨'의 음악 세계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다.
처녀작 < Franz Ferdinand >는 그러나 소박했던 목적과는 달리 너무도 큰 결과물을 추수, 주위를 놀라움 속에 빠뜨렸다. 해외 음악 언론의 반응만 한번 훑어봐도 그들이 받았던 상찬의 수위는 잘 증명된다. 영국의 <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는 그들을 표지 모델로 내세운 기사에서 "영국의 최우수 신인 밴드”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미국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 LA 타임 >지는 “전설적이다. 2004년 첫 번째로 위대한 록이 도래했다”라 보도했고, < 스핀 >지도 “타이트한 일렉트릭 기타 라인, 쾌활하고 유쾌한 코러스, 올해의 유망주” 등, 호의적인 평가로 일관했다. 몇 년 새 영국 밴드들이 거의 예외 없이 미국에서 고배를 마신 정황을 고려하면, 그들의 성과는 더욱 이례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이렇듯 화려한 갈채를 받았기에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으로 속을 태울 법도 하건만, 프란츠 퍼디난드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가벼운 스텝으로 또 한번의 록 댄스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되는 그들의 2집 < You Could Have It So Much Better >는 1년 안에 2집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언표임과 동시에 프란츠 퍼디난드가 얼마나 주위의 압박감에서 자유로운 공동체인지를 증명해주는 지표와도 같다.
"1집보다 더 훌륭한 음반을 만들어야지"라는 굳센 결심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레코딩 자체를 즐기면서 완성했다는 티가 확 난다. 이를테면 이것은 음악 청취의 즐거움이 전염될 거라는데 대한 확신의 반영으로, 비유하자면 "내가 신나게 만들었으니, 듣는 너도 신날걸?"이라는 식이다.
자연스레 이번 음반으로 더욱 확실해진 건 예술가연의 정신으로 고뇌하는 아티스트상(像)과 프란츠 퍼디난드는 그 속궁합상 최악이라는 것이다. 구식 사운드로 신식의 시대를 돌파하는 곡들이 연이어 발사되면 그에 맞춰 몸을 흔들고 마음껏 외쳐대기만 하면 그만이다. 생활의 스트레스를 음악으로 풀고 싶었던 팬이라면 'The Fallen', 'Do You Wan To', 'This Boy' 등, 초반부만 들어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Take Me Out'이 그러했듯, 박자의 변환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재주가 특히 일취월장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유사한 음악적 방향성을 갖고 있는 각개의 곡들이 확연히 구분되는 개별성을 그 안에 품고 있다는 것이다. 단출한 악기 편성에 의해 직조된 곡들이지만 다양한 리듬 플레이와 캐치한 선율을 써낼 줄 아는 능력 덕에 즐기면서도 감상할 수 있고, 감상하면서도 감탄할 수 있는 록 음반이 되었다. 간단한 리프로 듣는 이의 귓전에 깊은 묘영(描影)을 남기는 'Walk Away'와 'You're The Reason I'm Leaving'을 포함해 타이틀 'You Could have It So Much Better', 제목에서 보듯 비틀스의 음악적 재현을 노린 'Eleanor Put Your Boots On' 등의 곡들이 말해준다.
이렇듯 '무지향이라는 지향'을 지닌 그룹에게 '개러지 록 리바이벌'하며 흥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쩌면 너무 무의미한 재단처럼 보인다. 그래서 프란츠 퍼디난드는 당신이 이 음반을 듣고 충분히 즐거웠으면 그걸로 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깔리고 깔린 세상의 '엔조이 밴드들' 중 유독 프란츠 퍼디난드가 음악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즐기더라도 멋지게 즐기고 떠나자는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하고 듣는다면 전작에 이어 본 앨범은 당신에게 최고의 엑스타시를 선물해줄 것이다. 가벼운, 한없이 가벼운 밴드의 역작 앨범이다.
-수록곡-
1. The Fallen
2. Do You Want To
3. This Boy
4. Walk Away
5. Evil And A Heathen
6. You'Re The Reason I'M Leaving
7. Eleanor Put Your Boots On
8. Well That Was Easy
9. What You Meant
10. I'M Your Villian
11. You Could Have It So Much Better
12. Fade Together
13. Outsi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