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고민을 했다고 들었다. 사람 뼈로 만든 퍼커션을 쓰고 천장에 마이크를 달아보기도 하는 등, 뭔가 다른 소리를 뽑아보고자 했던 프란츠 퍼디난드의 눈물겨운 노력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되었다. 좀 더 댄서블한 전자음악의 느낌을 주기 위해 걸스 얼라우드(Girl Aloud)의 히트 싱글들을 뽑아낸 것으로 유명한 프로듀싱 팀 제노매니아(Xenomania)까지 끌어들이며 어느 때보다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후문이다. 끝내 씨에스에스(CSS), 핫 칩(Hot Chip)을 거친 댄 캐리(Dan Carey)로 프로듀서를 변경하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지레 신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사실 생각보다 전위적인 시도가 많이 목격되지는 않지만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또 훨씬 노련한 솜씨로 곡들을 요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뭔가를 기대했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금만 참을성 있게 앨범을 감상하다 보면 녹록지 않은 이들의 솜씨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프란츠 퍼디난드의 신보를 즐겁게 감상하기 위한 포인트는 대략 세 가지다. 첫 번째 포인트는 이전과 달라진 사운드의 질감이다. 이들의 1, 2집이 조금 건조하긴 하지만 상당히 경쾌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3집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축축한 공기가 저류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앨범의 첫 포문을 여는 'Ulysses'부터가 그렇다. 개러지와 포스트 펑크가 적당한 비율로 뒤섞여 있는 이 곡은 늦은 밤 소도시의 뒷골목 풍경처럼 을씨년스럽게 입김을 토해낸다. 자극적인 키보드 리프가 인상적인 'Twilight omens'도 음습하고 위태로운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적당히 덧칠해진 비장미는 이상하게 상승하는 느낌을 주며 곡을 아주 신비스럽게 포장한다. 'Ulysses'나 'Twilight omens'의 어둡고 축축한 음들은 비호감이 아니라 곡에 오묘한 상승감을 주며 오히려 호감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할 것은 전체적으로 곡들이 어두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의 장기인 급격한 템포의 전환, 난폭한 코러스가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 또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Take me out'의 그 드라마틱한 템포 전환과 난폭함에 열광했던 이들이라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내성적인 피아노 인트로와 매끄러운 크루닝으로 시작, 갑자기 엄청난 출력으로 피치를 올리는 'Bite hard'는 물론이요, 불량한 베이스라인 그리고 흡사 정신병자를 연상시키는 알렉스 카프라노스의 보컬연기가 어우러진 'What she came for'의 난폭한 코러스는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프란츠 퍼디난드 모습 그대로 듣는 이를 쥐락펴락 한다. 이 두 곡도 훌륭하지만 하이라이트는 'Lucid dream'이다. 차가운 금속성 노이즈가 둔탁하게 귀를 때리는 가운데 4분 50초경부터 펼쳐지는 신시사이저의 웅장한 드라마 앞에서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써커스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변화무쌍함과 의외성이야말로 팬들의 프란츠 퍼디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 번째로 눈여겨 볼 사항은 앞의 두 가지 요소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매력이다. 그 매력이란 바로 능글맞음이다. 옛 음악의 유산들을 주저하지 않고 자기 식으로 요리하고 있는 것이 그 능글맞음의 핵심이다. 약간 헐렁하게 들리지만 캐치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Send him away'는 킹크스(Kinks)의 성기고 까끌까끌한 소리를 말끔하게 매만진 것처럼 들린다. 'Live alone'은 옛 음악의 향취가 더욱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별다른 가공 없이 80년대 뉴웨이브 사운드를 그대로 재연한다. 블론디(Blondie)의 'Call me'나 'Atomic'만큼 탄력적인 디스코 리듬의 뉴웨이브 사운드가 귀에 참 잘 감긴다. 프란츠 퍼디난드식 능글맞음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좋은 순간이 많은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약점은 'Take me out'이나 'Do you want' 같은 킬링 싱글이 없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좋지만 소위 듣자마자 '꽂히는' 싱글이 없다. 비슷한 느낌이지만 'No you girls'와 'Turn it on'이 'Take me out', 'Do you want to'의 짜릿했던 순간을 이어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앨범미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만족스럽지만 싱글의 파괴력은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에 이번 앨범은 후크송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외면을 당할 공산이 크다. 그런 우려가 만약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전작에 비해 현저하게 감퇴된 댄스 그루브 탓일 것이다.
-수록곡-
1. Ulysses [추천]
2. Turn it on
3. No you girls
4. Send him away
5. Twilight omens
6. Bite hard [추천]
7. What she came for [추천]
8. Live alone
9. Can't stop feeling
10. Lucid dreams [추천]
11. Dream again
12. Katherine kiss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