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 스틸>(Real Steel)은 근 미래, 로봇이 권투선수를 대신해 링 위에서 싸운다는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비록 작고 다소 엉성하긴 하지만 실제로 로봇들의 쟁탈전을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보거나 전시회의 일환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기에 아주 헛된 망상만은 아니다. 다만 영화에서 나타나는 로봇들은 우람한 체형의 거구에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첨단기계장치다. 터미네이터와 트랜스포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 자체로 민첩한 발놀림과 감각적인 균형감을 내재하고 있다.
한 번 쓰러지면 거북이처럼 등을 이용해 몸을 일으켜야만 하는 현재의 리모컨 원격조종로봇들과는 일단 차원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색상과 설계 면에서도 <리얼 스틸>의 로봇들은 매력적인 외관을 과시한다. 스릴만점의 액션을 수반한 감격적 드라마의 견인차 역할을 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는 단언컨대 미래적 공상과 1980년대식 가족드라마의 전형을 결합해낸 멋지고 놀라운 성과물이라 할 만하다.
외형적으로는 미래적인 상상력을 구현하는 한편 이야기는 과거 지향적이다. 가난뱅이 스파링 파트너에서 부자 챔피언 복서로의 지나온 역정을 그린 <록키>(Rocky)에서부터 팔씨름 대회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오버 더 톱>(Over The Top, 1987), 심지어 이 영화에서도 랩 음악 사운드트랙으로 다시금 환기되는 에미넴(Eminem)의 (8 Miles)까지 밑바닥 정서를 자극해 승화시키는 다수의 명화들을 회상하게 만든다. 소원해진 부자지간의 정을 회복하는데 로봇 격투기가 일종의 스포츠로써 중대한 매개체 구실을 하고 결국엔 깊은 가족의 유대감을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전개는 일련의 유사품들을 짜 맞춘 수선 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토리를 발진시키는 원동력은 휴 잭맨(Hugh Jackman)이 주연한 찰리 켄튼, 원래 권투선수였던 그는 이제 깡통로봇이나 다름 없는 고철덩어리 로봇을 싣고 다니며 날품팔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나마 이 누더기 로봇이라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했던 심산마저 실제 황소의 뿔에 받혀 날아갈 지경에 이른다. 없는 돈마저 내기 빚으로 담보 잡히게 생긴 절망적인 그에게 아내의 부고 소식이 찾아오고, 생면부지의 11살 된 아들의 양육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또 다른 로봇을 살 자금을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말종이 따로 없다.
새로운 돈벌이 로봇을 살 돈이 필요한 찰리는 아들과의 조건부 동행을 수락한다. 찰리의 아들 맥스 켄튼(다코다 고요)을 만난 순간부터 이야기는 드라마로 진입한다. 찰리의 아들 맥스는 총명하고 말수가 적은 사춘기 직전의 어린이(10-12세)이다. 유전적으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 등의 하이테크제품들을 잘 다루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으로 보인다. 나름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책 없이 무정하게 살아온 나쁜 아빠보다 되레 다정다감하고 의젓한 면모를 보인다.
골칫덩이 찰리에게서 어찌 저런 아들이 나왔을까 의아할 정도다. 나중에 아들을 위해 쾌거를 성취해내는 멋쟁이 아빠로 거듭나기 전까지 찰리는 비겁의 최첨단을 보여줄 뿐이다. 누이 데보라(호프 데이비스)와 함께 찰리를 입양하려는 데보라의 남편 마빈(제임스 리브혼)과 모정의 거래를 통해 여름동안만 한시적으로 아들을 맡아 돌보겠다고 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치사한 놈인지 알만하다.
드라마를 전개시키는 구심점역할을 하는 아들 맥스는 대단한 아이다. 그저 돈이나 왕창 벌어보자는 도박형 수단으로 대하는 아빠와 달리 아들은 진정으로 로봇을 좋아하고 그래서 애정을 표한다. 아빠 찰리가 고물 수집장에서 쓸 만한 부속품을 찾는 동안 그는 우연적 필연으로 골동품 훈련용 로봇과 조우한다. 진흙투성이 땅 속에서 걷어 올린 이 로봇은 아톰(Atom)이라 불린다. 찰리는 고대유물이나 다름없는 이 로봇이 여전히 파이팅 로봇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놀랍게도 로봇은 완전히 녹슨 고철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아톰을 재활 훈련시키고 새로운 기술들을 가르친다. 특히 아톰은 상대방의 동작을 인식하고 그대로 모방해내는 “반사방식”(Mirror Mode)을 갖추고 있어 전직 권투선수였던 찰리와는 임자 만난 격. 맥스는 아빠의 아바타로서 아톰이 승리할 거라고 확신한다.
이윽고 드라마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최후의 격전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무시무시한 천하무적 로봇 제우스와의 빅 매치, 가장 깜짝 놀랄 흥분의 도가니로 시청각을 압도한다. 황소와 한판 뜨는 첫 장면과 중도에 벌어지는 몇몇 로봇격투액션도 선명한 움직임으로 실감나는 현장감을 구현하지만 시민의 희망과도 같은 아톰과 막강 자본력을 과시하는 거대로봇 제우스가 펼치는 최후의 결투장면은 오락적 재미의 최첨단을 보여준다.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을 복싱 사각 링으로 옮겨낸 <록키4>(Rocky Ⅳ)에 버금가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들이 연속해서 전개된다. 실제 인간선수들이 맞붙는 경기나 진배없는 감흥을 끌어낸다.
그야말로 볼거리는 로봇들의 실감나는 격투장면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자칫 무감각하다 못해 결국에는 지루한 로봇전쟁으로 끝내버리고 마는 속편부터의 <트랜스포머>와 달리 극적인 요소의 하나로서 아톰에게 애정이 가게 만드는 감정적 요인들이 부재하다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순수하면서도 야무진 매력을 겸비한 꼬마 맥스의 역할과 함께 아톰의 존재감은 관객들을 동화시키는 결정타다. 강철망사 면상 뒤로 달아오르듯 광채를 발하는 아톰의 푸른 눈과 바싹 여윈 근육질의 본체는 이상하게도 묘한 동정심을 자극한다.
쓰레기처럼 버려진 자신을 발견한 맥스의 처지와 더불어 공감을 자아낸다. 그는 호감 가는 약자다. 애정 어린 약자인 아톰의 캐릭터 성향은 인생의 낙오자인 찰리의 섀도복싱과 겹쳐 투영되면서 행운의 반전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감동의 수위를 향상시킨다. 이는 곧 제작자로 영화에 참여한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좋아하는 영화적 요소이기도 하다. <이.티.>(E.T)와 <에이아이>(A.I)에서와 같이 스필버그는 여기서도 극강의 동정적 호소력을 발하는 캐릭터를 창출해내기 위해 아톰을 디자인하고 스크린 테스팅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번쩍거리는 하이테크 경쟁로봇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훨씬 더 애원하듯 보이는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리얼 스틸>은 실사영화다. 공상과학만화영화가 아니다. 현실감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그게 비록 할리우드식 값싼 감동일지라도 그것도 장기라면 장점이라고 호평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캐릭터가 분명하고 인물들의 관계설정이 명확하다. 액션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사실적이다. 종국에는 감격을 선사하는 흥미진진한 줄거리도 확실히 한 몫 한다. <트랜스포머>에 열광한 어린이 필두 관객이라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호감을 주는 극적인 공감대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트랜스포머>로 로봇장난감에 대한 꿈을 이뤘다면 아톰은 동심의 환상까지 만족시켜줄 의외의 쾌거다. 필시 기대치 이상의 수확에 환호하게 될지도 모를 일!
영화를 위한 스코어는 대니 엘프먼(Danny Elfman)이 작곡했다. <스파이더 맨>삼부작을 위시해 다수의 영웅적 캐릭터들과 기괴한 상상 공상 망상적 판타지 장르영화에 영감을 제공한 바 있는 그는 <리얼 스틸>에 전원의 목가적 느낌을 강조하는 컨트리풍의 기타를 특징으로 오케스트라와 결합한 드라마적 배경음악을 사용하는 한편 왕년 록 밴드의 멤버로서 일가견이 있는 본색을 드러내 강력한 전기기타 전류를 증폭시킨 <아이언 맨> 풍 하드록&헤비메탈 사운드로 실제 강철로봇들의 배틀에 파워에너지를 증강했다. 또한 맥스의 동작에 따라 힙합 춤을 추는 댄싱 로봇으로도 재밌는 면모를 보여주는 아톰의 캐릭터 성향에 준해 에미넴(Eminem)을 비롯한 다수의 힙합뮤지션들의 노래들을 사용해 청각적 오락성을 한층 더 강화했다.
삽입곡을 별도로 묶어낸 사운드트랙앨범에는 에미넴과 그의 사이드 프로젝트 그룹 배드 미트 이블(Bad Meets Evil), 50센트(50Cent), 베로니카(Veronica) 피처링 팀버랜드(Timbaland), 비스티 보이스(The Beastie Boys), 옐라울프(Yelawolf) 피처링 크리스탈 메쏘드(The Crystal Method), 레이지 어겐스트 머신(Rage Against Machine)의 기타 톰 모렐로(Tom Morello)와 프로디지(Prodigy),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라이벌 선스(Rival Sons)의 초강력 울트라 파워 록 & 힙합 송들이 실렸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맨 처음 광활한 대지를 트럭으로 달리는 찰리 켄튼의 도입부 장면에 감상적으로 깔린 알렉시 머독(Alexi Murdoch)의 어쿠스틱 서정시가 'All my days'(나의 모든 나날들)를 되뇌기 쉬울 것이다. 참고로 이 노래는 머독이 다수의 사운드트랙에 기여한 영화 <어웨이 위 고>에서 선 보인바 있다.
-수록곡-
1. Fast lane-Bad Meets Evil(Edited)
2. Here's a little something for ya-The Beastie Boys(Edited)
3. Miss the misery-Foo Fighters
4. The Enforcer-50Cent
5. Make some noise(put'em up)-The Crystal Method feat. Yelawolf
6. Till I collapse-Eminem(Edited)
7. One man army-Prodigy&Tom Morello
8. Give it a go-Timbaland feat. Veronica
9. The midas touch-Tom Morello
10. Why try-Limp Bizkit(Edited)
11. Torture-Rival Sons
12. All my days-Alexi Murdoch
13. Kenton-Danny Elf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