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이 투입된 탓에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조야한 비주얼의 공상과학액션영화로 완성됐으나 당시로선 심히 참신한 충격을 주며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로보캅> 등의 작품들과 함께 사이버펑크적 지위를 획득, 다수의 열광적 숭배자들을 양산한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 1984)는 원작감독 제임스 카메론(James Carmeron)이 다시 재도약의 계기로 삼은 속편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Terminator 2: Judgement day, 1991)로 연계되면서 전 지구적 영화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속편에서 유동액체기술에 의해 구현된 T-1000의 등장이 준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과학문명의 이기가 가져올 폐단을 반 이상향의 틀에서 표출해낸 비판적 성향의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되레 놀랍도록 진보한 영화의 시각기술에 환호하고 집착했다. 일명 테크노 느와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컬트클래식으로 시작한 영화의 미약한 발단은 엄청난 흥행성공과 함께 SF액션블록버스터로 재탄생하는 이율배반적 성공을 거두기에 이르렀다.
놀람과 기대로 한껏 부푼 영화팬들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함께 이 시리즈를 통해 어마어마한 근육질의 남성미를 과시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의 스크린 복귀를 이내 고대했다. 이후 <타이타닉>(Titanic, 1997)으로 “세상의 왕”(King of The World)이 된 카메론 감독은 그러나 3편에 대한 기대를 외면했고 결국 자신이 직접 투자한 아놀드만이 '돌아온다'(I'll be back)는 약속을 지켰다. 결과적으로 3편 <터미네이터 3: 기계들의 반란>(Terminator 3: Rise Of The Machines, 2003)은 평단과 대다수의 관객들에게 기대에 반하는 혹평세례를 받았다.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된 기술력으로 제조된 매력적 여성 터미네이터 T-X가 종횡무진 설치며 관객들을 유혹했지만 영화자체에 대한 급랭평가는 학수고대를 져버린 대가를 흥행에서도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더 이상의 터미네이터는 없을 것만 같았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면서 영화계를 떠났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 또한 <타이타닉>이후 뚜렷한 작품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아바타>(Avatar)를 제작중이라는 소식만 있을 뿐. 두 핵심 멤버는 물론 속편의 존 코너 에드워드 펄롱도, 사라 코너 린다 해밀턴도 없는 마당에 과연 <터미네이터>의 존재감을 되살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그러나 4편의 제작에 문제될 게 없었다.
새로운 배트맨으로 각광받으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에게 주인공 존 코너 역을 맡긴 네 번째 시리즈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Terminator Salvation)은 기계들의 반란으로 초토화된 근 미래를 배경무대로 완전한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로 “알 비 백”(I'll be back)했다.
2018년 머신들의 이유 없는 반란에 의한 핵전쟁으로 지구는 황무지로 변했고 지배관계는 인간에서 기계들에게 전복된 상태다. 이제 인류는 세상을 잿더미로 만든 기계들의 통치에 저항해 사투를 벌인다. 세상에! 형체를 알아볼 수 있게 남아난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폐허로 변한 미래는 도시도, 집도, 음식도, 농장도 다 사라졌다. 푸성귀나 통조림으로 연명하는 것 같다. 저항군들은 심해 잠수함에 있는 사령관 젠. 애시다운(마이클 아이언사이드)의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 그는 머신들의 본부 스카이넷을 파괴하고자 한다. 거기엔 수많은 포로들이 잡혀있지만 그는 대의를 위한 희생을 당연시하고 계획대로 밀어붙이려한다. 반면 코너는 자신의 미래 아버지 카일 리스(안톤 옐친)를 포함해 포로들을 구출하기로 맹세한다.
여기서 잠깐, 그 곳에는 또한 마커스 라이트(샘 워싱톤)가 있다. 이 남자는 과거로부터 왔다. 코너와 닮은 점이 많은 그는 극저온의 수면에서 깨어난 과거 살인범이다. 이번 편에서 의외의 발견이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캐릭터. 그의 죽음과 소생, 다른 생존자들과의 조우 그리고 격전으로 거의 두 시간동안이 지나간다. 줄잡아 90퍼센트가 코너와 그를 중심으로 한 액션 장면들이다. 10년 후 미래, 휴먼과 머신들 간의 대결전과 관련해 상영시간의 대부분은 액션장면, 추격 장면, 모터사이클 장면, 경작-트럭 장면, 헬리콥터 장면, 전투기 장면, 우뚝 솟은 거대로봇과 비행선 장면 그리고 주먹다짐장면들의 차지다. 실로 전략시뮬레이션게임 플레이의 쾌감을 방불케 할 정도다.
게임 플레이에 필적하는 흥분과 자극은 삽입음악에서도 동일하게 반영되어 나온다. 흥미롭게도 기계들이 음악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단순히 소리의 전파를 감지해서겠지만 음악의 유혹적 덧에 걸린 머신들은 노래 소리에 득달같이 달려든다.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Rooster'(1992년 < Dirt >앨범에서 발췌)와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You could be mine'이 바로 그 요인. 어둡고 불길한 미래의 배경에 조화하는 우중충한 얼트-록과 거친 반항적 메탈이 기계들을 유인한다.
특히 건스 앤 로지스의 메탈노래는 속편의 사운드트랙으로 소개돼 운명적 인기를 얻은 곡. 1991년 메인스트림 록차트 3위, 싱글차트 29위에 랭크되었다. 존 코너가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 머신을 낚는 유인책으로 사용한 이 노래는 이외의 이전 시리즈에 대한 경의와 존경의 표식들과 함께 기존 열광팬들을 의식한 설정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을 공표한 <터미네이터 구원>의 음악은 대니 엘프먼(Danny Elfman)이 지휘권을 넘겨 받았다. 3편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을 작곡한 마르코 벨트라미(Marco Beltrami)의 다음단계 투입된 그는 이번 시리즈가 무엇보다 미래 묵시적 영웅담의 품새를 띄고 있는 것에 착안한 음악을 악보에 옮겨냈다. 브레드 피델(Brad Fiedel)의 오리지널 테마를 여일함과 동시에 훨씬 더 강력한 어쿠스틱 교향악적 사운드요소들을 혼합해 벨트라미를 승계했다. 엘프먼이 1, 2편의 원형질은 물론 3편과의 연장선상에서 음악을 착안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전면적이 아닌 부분적 결합이다.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을 융합하되 피델의 오리지널테마의 일부만을 차용했을 뿐이다. 1, 2편에서 피델이 머신들을 강조하기위해 공장제 인더스트리얼사운드를 중점적으로 다룬 것들 중에서 5화음의 강철 다듬질 사운드 리듬을 상징적으로 가져왔다. 이는 오프닝 타이틀 음악의 종결부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암울한 세상과 기계들을 상대로 한 인간들의 활약을 묘사하기 위해 깊고 어둡고 육중한 일렉트로닉사운드를 불온한 금속성 사운드의 일격을 동반한 퍼커션의 강타와 결합했다. 앨범에서는 'Opening', 'The Harvester Retur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가장 격앙된 액션 시퀀스의 많은 부분에서 강력한 브라스의 강세에 의해 증음된 사운드의 결합이 주의를 끈다. <스파이더맨>(Spider-man),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2001), 그리고 <원티드>(Wanted, 2008)에서 귀에 익은 엘프먼의 트레이드마크 사운드가 특히 퍼커션과 현악의 사용면에서 현저히 나타난다.
적어도 일면, 엘프먼은 타이틀테마에 의하여 피델의 원형사운드를 추종한다. 6화음 상승/하강 모티프에 의해 표현되는 피델의 모티프는 냉철하고 단호한 그리고 군악적으로 연주되는 한편 엘프만의 것은 온화하고 부드럽고 감성적이다. 흥미롭게도 이 모티프는 존 코너보다 하이브리드-터미네이터 마커스에게 특징적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는 영화의 실제 중심인물로 그려지는 캐릭터를 가리킨다. '오프닝'에서 금관악기 군에 의해 담차게 소개되지만 이 타이틀테마 또는 곡의 부분적 악절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사운드트랙을 관통해 산재한다. 'Fireside'에서는 부드러운 기타, 'Salvation'에서는 피아노로 연주되어 들린다.
존 코너도 물론 그 자신의 테마를 마찬가지로 가진다. 테마의 핵심적인 요소는 영웅적인 8화음으로 표출된다. 엘프먼은 새롭게 확립한 이 악상을 오프닝 타이틀테마에 곧이어 스코어에 균형감 있게 적용해 상징성을 준다. 아마도 존 코너의 테마 중 가장 호소력 강한 연주는 'Broadcast'일 것이다. 처음에는 프렌치 혼으로 이후에 현악 반주로 들려온다. 마커스와 코너, 주축이 되는 두 캐릭터를 위한 테마는 전반적인 악곡을 관통해 누비고 나아간다. 하지만 'Salvation'에서 감성적인 화음으로 다시 접속된다.
동공이 확장되게 만드는 아주 멋진 비주얼과 액션 외에 엘프먼에 의해 깔린 새로운 음악적 기반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어 좋은 대작이요 그에 합당한 사운드스코어다. 전매특허 연작물의 새로운 시작에 이어지는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가 음악과 함께 한다.
-수록곡-
1 Opening
2 All is Lost
3 Broadcast
4 The Harvester Returns
5 Fireside
6 No Plan
7 Reveal/The Escape
8 Hydrobot Attack
9 Farewell
10 Marcus Enters Skynet
11 A Solution
12 Serena
13 Final Confrontation
14 Salvation
15 Rooster 6:14 performed by Alice in Cha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