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는 없었다. 데뷔반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호사가들은 밋밋하고 평이한 결과물이라고 몰아붙일지도 모르겠다. 매혹적인 뿅뿅거림과 중독적인 멜로디는 로파이(Lo-Fi)한 어쿠스틱과 함께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놀랍도록 분방했던 4차원의 가사들도 '힐난'과 여전히 벌어져 있는 '상처'로 한 톤 다운된다. 2집에 대한 혹독한 부담에 대한 답은 '깜짝쇼'가 아닌 조휴일의 '속내'였다.
좋은 일만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싶었지만
배신으로 물든 갑판 닦아 줄 수 있는 믿을만한 선원도
하나 없이 홀로 물을 가르네 슬퍼라
배가 떠난 부둣가에 빌어먹을 선원의 노래
발만 겨우 담가 놓고 모험담이 끊이지 않네
나를 팔아먹은 사람들을 기억하기엔 내 갈 길이 멀어서
두 번 다신 돌아보지 않으리 슬퍼라
-'이별노래' 중에서
믿을만한 선원 하나 없어 슬프지만 셔플리듬으로 시동을 건 배는 두터운 코러스의 벽을 만들며 힘차게 항해를 시작한다. 신인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반응과 소속사와의 결별 등의 여러 정황속에서 그의 혼란과 좌절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거짓말', '열번도 속아줄테니' 등의 단도직입적인 단어는 '무임승차', '외아들', '아침식사'등에도 계속 응어리로 맺혀있다. 미국에서 건너온 이방인의 시선은 좁게는 음악판 넓게는 대한민국의 뒤틀린 단면을 정확히 조준해, 독설에 가까운 따가운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Love shine', 'International love song', '젊은 우리 사랑'에는 컨트리(Country)풍의 리듬과 패턴이 더해졌다. 안타깝게도 이 장르는 헤비메탈과 랩의 요람속에서 자란 1980년대 이후의 한국 감성과는 이질적이라는 취약점을 가진다. C-Am-Dm-G의 쉬운 코드 진행은 친숙하지만 곡들을 비슷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피할 수 없다. 전작에서 돋보였던 싸비나 화려한 연주를 찾기 힘든 것도 '어딘가 허하다'고 느껴지는 결정적 이유다.
이에 비해 속도감 있는 '무임승차', 가사에 뼈가 있는 로큰롤 '외아들', 트로트 고고가 연상되는 '날씨'는 명징하고 선명하게 들린다. 1집과 가장 유사한 '복고풍' 무드와 점성도 높은 '찰기'의 성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작과의 차이가 있다면 국적을 넘나들던 코스모폴리탄적인 성향이 희석되고 오히려 '메이드 인 코리아'의 색과 가까워졌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개로 빗대어 19세 딱지가 붙은 '강아지', 홍대 동네 수퍼 로큰롤 스타라며 인디밴드의 단면을 풍자했던 '아방가르드 킴(Avant Garde Kim)' 같은 짜릿한 문제작도 여전하다. '음악하는 여자'에서는 누구라고 콕 집을 순 없지만 어느정도 예상 가능한 상대에게 '음악하는 여자는 징그러' 라며 도발을 건다. 거기에 '밤'과 '방'을 주무대로 한 '기사도'는 일찌감치 외설 논란에 불을 붙였다.
힘차게 항해를 떠난 배는 어쩐 일인지 해일에 먹히기 직전이고, 결국 앨범의 마지막 장에는 허우적거리는 손만 둥둥 떠있다. 사람과의 '관계'라는 암초에 부딪혀 심해속으로 가라앉으면서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걱정하지마 자기야 (물에 빠진 게 아니라) 그저 수영하고 있을 뿐이야!” 소포모어 앨범은 한국과 미국의 사이, 사람과 사람 복판에 존재하는 '바다'에서 겪은 심정을 참담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담았다. 그의 말처럼 이 음반은 검정치마 2집이라기 보다는 조휴일의 독백, 독집에 가깝다. 모질고 씁쓸한 한국음악판상륙기 말이다.
-수록곡-
1. 이별노래 [추천]
2. 무임승차 [추천]
3. Love Shine
4. 외아들 [추천]
5. International Love Song
6. 날씨 [추천]
7. 아침식사
8. 음악하는 여자 [추천]
9. 젊은 우리 사랑
10. Ariel
11. 기사도
12. 앵무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