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직접 쓴 각본으로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으로 놀라운 재능을 과시해온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은 <인셉션>(Inception)에서 꿈의 영역을 탐구한다. 평단의 상찬과 대중들의 환대에 힘입어 "배트맨"의 새역사를 창조한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이후 2년만의 최신작. 스릴 있는 공상과학물의 테를 두른 주장의 전제는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놀란의 솜씨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이야기는 매우 창조적이며 연출력은 역시 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국제적 범죄단들이 벌이는 액션오락영화 <인셉션>은 돔 코브(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주인공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추행(追行)한다. 기업스파이인 그는 일명 “추출가”(Extractor)라 불린다. 목표한 대상의 꿈속으로 잠입해 잠재의식의 심층으로부터 가장 단단히 박혀있는 신중한 비밀을 빼내는 일을 한다. “인간의 마음 또는 정신에서 나온 하나의 아이디어는 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세상을 변형시킬 수 있고 모든 규칙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쓸 수 있다.”고 코브가 극 중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에서 그의 특별한 재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주인공 코브는 국제적 도망자 신세에 처해있다. 과거의 의도치 않은 악행으로 인해 추방당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아이들을 자유롭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수상쩍은 기업거물 사이토(와타나베 켄)는 그렇게 불가항력의 사정이 있는 코브에게 그의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아이들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절대적 기회를 제안한다. 그 일은 바로 “인셉션”, 누군가의 잠재의식을 훔치기보다 그 잠재의식 속에 아이디어를 심는 작업이다. 전대미문의 최고도 계획. 사이토는 코브와 그의 오랜 선두척후병 아서(조셉 고든-레빗)가 로버트 피셔 주니어(킬리언 머피)의 꿈으로 잠입해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대기업을 분산시킬 수 있게 해주길 원한다. 쉽게 말해 마음을 돌려놓는 작업이다. 성공하면 코브는 사이토의 약속대로 도망자신세를 면하게 된다.
코브와 아서는 팀을 조직한다. 위조범 임스(톰 하디), 약사 유수프(아바타의 딜립 라오) 그리고 신참 애리어드니(엘렌 페이지)가 바로 그들. 특히 애리어드니는 코브를 대신해 꿈속에 새로운 세상을 디자인하고 건축할 설계자로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꿈의 세계에는 또한 그들을 미행하는 신비한 그림자, 과거로부터 온 돔 코브의 여인 맬(마리온 코띨라르)이 공존한다. 그녀는 모든 작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베일에 가려있다. 출연 그 자체로 놀란의 선물과도 같은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을 위시해 피트 포슬스웨이트(Pete Postlethwaite), 톰 베린저(Tom Berenger) 그리고 루카스 하스(Lukas Haas)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등장해 원톱 주연을 지원한다.
피셔의 잠재의식 속으로 더욱 더 깊고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는 코브와 그의 정예팀은 예상치 않은 변수와 부딪치면서 더욱 위험한 상황들을 돌파하게 되고, 어쩌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미로에 갇혀 끝나지 않는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현세에서 언제나 제공되는 단조로운 일상에 마음을 두고 운명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설계한 몽세(夢世)에서 기약 없는 미래를 오직 하나뿐인 그대와 함께 백년해로(百年偕老)할 것인가.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유혹의 덫이 관객의 심연을 휘젓는다.
<인셉션>으로, 놀란은 죽음에 상당하는 상상공식을 만들어냈다. 아이러닉하게 주어진 주제다. 거의 해독불가의 줄거리를 펼쳐놓는 놀란의 스릴러는 앞으로 한 10년은 더 관객들을 꿈에서 깨지 못하게 할 기세다. 10년 동안 구상한 결과물이라서 그렇다는 건 아니다. <메멘토>(Memento, 2000)를 토대로 놀란의 지난 10년간의 상상, 공상, 망상이 응축된 영화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나 마이클 만(Michael Mann)감독의 <히트>(Heat)에 필적하는 강도 스릴러를 아우르고, <토탈 리콜>이나 <매트릭스> 그리고 <셔터 아일랜드>와 같이 시공을 초월하는 몽상적 전경의 더 나은 버전을 제시한다. 상기 각 영화들에서 장점만을 간추려서 감독 자신의 독자적인 성과물로 변조해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독자적 영화들로 자신만의 독특하고 성공적인 영역을 구축한 프랑스 감독 장 콕토(Jean Cockteau)와 미국/영국 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그리고 사실적인 범죄스릴러물의 장인 마이클 만(Michael Mann)이 연출한 일련의 작품들을 환기시키는 놀란은 정교한 영화의 미로를 공들여 만들었다. 꿈에서 관객을 포함한 뷰어들은 다른 단계로 침입하는 동안 제각기 자신만의 뚜렷한 관점과 색깔들 그리고 스타일을 갖고 임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놀란이 설계한 독특한 미로는 다면체적 접근과 감상의 장을 제공한다.
한 지점에서 적어도 네 개의 다른 구상이 동시에 일어날 만큼 혼란스러운 영화는 놀란 자신도 길을 잃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작과 끝, 앞뒤 분간을 명확히 해야 할 감식력을 요구한다. 아주 성공적으로 뛰어난 독특함, 다층적인 내러티브는 영화를 단순히 지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심리적 과제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인셉션>은 매우 지능적인 영화지만 놀란 감독은 오락성의 끈도 놓치지 않았다. 강탈 장면들 속에서 대양영화들의 음영이 공존하고, 다른 지점들에서는 <매트릭스>(The Matrix), 그리고 눈에 갇힌 설경 전투가 펼쳐지는 종극의 장면들 동안에는 007 제임스 본드 무비 시리즈 중 <여왕폐하 대작전>(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1969)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큐브릭과 만의 영화들과 일부 달리, 놀란은 그의 비도덕적인 캐릭터들에 감정적으로 투자하는 관점을 유지한다. 영화가 너무 냉랭하거나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특히 주인공 코브에게 정서적 비중을 크게 둔 감독의 뛰어난 배역선정은 작품의 완성도를 격상시킨다.
디캐프리오는 그의 캐릭터의 중심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상흔을 되찾는다. 그는 일견 절도범이고 한편 첩보원이다.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 자신의 잠재의식은 숙명적 최후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쳐야만 하는 절호의 기회를 망칠 수 있는 결정적 매개변수로 크게 작용한다. 여러모로 인물됨에서 <인셉션>에서 그의 역할은 마틴 스콜세지의 걸작 스릴러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에서 치유불가의 정신적 외상에 휩싸인 연방보안관을 연기한 것과 유사하다.
한 쌍의 배다른 동생 격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고든-레빗은 디캐프리오와 같이 어린이 시트콤 아연배우 출신으로 여기서 전도유망한 드라마적 배우 중 하나임을 다시금 입증한다. 그리고 비록 다른 배역들보다 등장 빈도는 적지만 코띨라르는 영화에서 팜므 파탈적 성향의 인물로서 빛을 발한다.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ies)에서의 그녀보다 훨씬 더 나아 보인다.
페이지는 <주노>(Juno)에서 주인공 페르소나를 졸업해 조디 포스터(Jodie Foster)의 젊은 시절에 필적하는 진보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디캐프리오의 부하 중 매우 중대한 역할, 꿈의 설계자로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필연적인 해설자로서 관객의 안내자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배트맨 비긴스>(Batman Begins, 2005)에서 했던 것 보다 더 많은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들을 워너비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탐욕스러운 기업 비즈니스와 그들의 욕심이 또 다른 대상의 삶과 생계를 어떻게 파괴시키는지에 대한 인간적 고찰. 가장 크게 놀랄만한 캐스팅은 아마도 하디일 것이다. 그는 팀에서 정중하면서도 공격적인 인물을 연기한다. 거의 007 제임스 본드적인 연기라고 할까.
기술적 수준에서 꿈의 세계를 경이롭게 묘사한 특수효과들, 영상 없이 독립적으로 작곡한 후 놀란 감독에 의해 영상과 함께 편집된 한스 짐머(Hans Zimmer)의 총체적 스코어 그리고 월리 피스터(Wally Pfister)의 촬영기술은 최상이다. 빌딩들은 기울고 거리는 휘감기고 극중 인물들은 부유하고, 직통선 없이 복잡하게 얼키설키 꼬인 미로는 웹상의 실로 무한한 분석에 영감을 주는 것처럼 경이로운 시각적 장관을 연출한다.
영화음악에 있어서 놀란 감독은 작곡가 한스 짐머에게 영화제작 전 이미 음악을 별도로 만들어주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음악이 완성되면 감독 자신이 직접 그 음악을 영화에 편집해 넣겠다는 심산이었다고. 그래서인지 음악은 영화를 위한 음악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콘서트를 위한 독립음악의 성향이 강하다. 지금까지 한스 짐머가 영화를 위해 만들어온 음악의 총서와도 같다. 그의 지난 영화 속 음악의 영감과 악상 그리고 요소, 재료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따라서 그 음악을 자신의 영화세계에 적절히 채색한 놀란 감독의 재량은 더욱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스 짐머가 작곡하고 놀란 감독이 직접 편집해낸 <인셉션>의 스코어는 대체로 느린 템포의 곡조로 일관한다. 감정과 감상 사이를 오간다. 이는 무엇보다 스코어의 초점이 남자주인공 코브와 그의 아내에 관한 로맨스에 맞춰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라 비 앙 로즈>에서 에디트 피아프로 열연 오스카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꼬띨라르와 연관해 'Non, je ne regrette rien'(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을 꿈에서 깨는 신호인 “킥” 장면에 사용한 것은 절묘한 선곡. 놀란 감독이 영화 내에 편집해 넣기 너무 편리하도록 배려한 짐머의 콘서트 풍의 모음곡들은 여러모로 지금까지 영화음악가로서 그의 전력을 총괄한 서재와 같다고 할 만하다. <크림슨 타이드>, <더 록>, <니나>, <다빈치 코드> 등 전례의 작품들을 총망라하며 마이클 니만(Michael Nyman)과 반젤리스(Vangelis)의 영역까지 침범한다.
'Old souls'(오래된 영혼들)는 방겔리스(Vangelis)의 전설적인 영화스코어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를 연상시킬 만큼 환상적, 사사적인 공상과학과 시각적 스타일 면에서 놀란은 시공을 초월한 솜씨를 보여준다는 것을 방증하는 곡이다. 놀란은 사실 <블레이드 러너>의 광팬이고 짐머는 그러한 그의 향수에 부합하는 회고조의 분위기를 주입했다. <인셉션>은 어쩌면 오늘의 <블레이드 러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차가운 기계적 사운드에서 온기를 품어내며 진한 영감을 준다. 모호함과 공허함의 분위기를 강화하는 전자음의 전율은 또한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 사운드트랙 중 데이비드 아놀드(David Arnold)의 'Night at the opera'와도 유사하다. 007 제임스본드 음악적인 영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증험인 것 같다.
불가사의한 열쇠를 의미하는 제목의 큐 '528491'은 감정과 정서적 증폭이 매우 큰 곡으로 육중하면서 거대한 혼과 강타하는 타악기 비트로 매듭짓는 사운드가 매우 강한 임팩트를 가한다. 'Mombasa'(몸바사)는 내폭성이 강한 트랙. 전반적인 스코어에서 타악기의 사용빈도는 극히 적지만 이 곡에서 아마도 퍼커션 사용의 80%를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스코어는 전적으로 감정을 자극하고 장대한 서사적 공상과학의 감을 창출한다. 스크린에서 일어난 장면과 기막히게 조응한다. 속도감 넘치는 긴박감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반복적 리듬패턴이 압권. 시청각적 화려한 오락물을 목표삼은 놀란 감독의 진정한 성취라 할 만하다. 굉장히 경쾌하게 시작하지만 이내 곧 환상적인 액션 큐로 폭발해 들어간다.
'Time'(시간)은 짐머의 트레이드마크를 결합한 환상적인 곡. 시종 감정적 증강을 계속하는 놀라운 테마를 가지고 있다. 가장 긴 큐 'Waiting for a train'(열차를 기다리며)은 <블레이드 러너>적 영감을 주는 또 하나의 다른 트랙. 매우 향수어린 느낌을 간직한 곡 'Old souls'와 흡사하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 3분 즈음의 연주시간 동안 절망적 음산함과 자연발생적 암흑의 분위기를 번갈아 오가며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변화한다. 6분 즈음에는 방겔리스적인 신서사이저 연주를 통해 더욱 드라마틱한 무드를 주입한다. 그런데 7분4초 즈음에 에디트 피아프의 명창 'Non, Je Ne Regrette Rien'이 개입하면서 꿈과 현실의 분계선을 긋지만 여전히 낯선 분위기의 사운드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분 29초의 연주시간은 경이로운 사운드의 파노라마를 들려준다.
<인셉션>은 실로 총체적으로 혼합된 작품이다. 짐머의 진술에 따르면 “이 영화를 위해 만든 음악은 심히 전자음악적인 스코어이다. 거기엔 오케스트라가 공존하지만 일렉트로닉음악의 요소들이 균등하게 관심을 공유한다. 또한 1980년대 영국밴드 스미스(Smiths)의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조니 마(Johnny Marr)를 초빙해 기타연주를 부탁했다. 조니와 오케스트라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사실상 음악의 도처에 혼합되어 있다.” 이와 같이 짐머는 전자음악과 연관된 전자장비들을 혼용했지만 샘플 녹음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면에서 아직은 섯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오스카시상식에서 그들의 이름이 호명될 것이라는 전망도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다크 나이트>가 놀란에게 가져다주지 못한 영예를 이 영화가 안겨줄지도 모를 일이다. 10년 동안의 준비가 허사가 아니었음을 입증한 놀란의 이 프로젝트는 순수 창작적 깊이나 지적인 수준에서 공히 최고의 성과물로 인정받아야 함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단언컨대 <인셉션>은 시간과 물질적 투자 면에서 영화 관람의 진기한 경험의 장을 제대로 전하는 숨 막히는 성공작임에 분명하다. 3D입체영화, 리메이크, 리부팅, 속편들, 그리고 스타들만 즐비할 뿐 실속 없는 작품들이 판치는 현재의 영화시장에서 관객들은 실로 대단한 독창적 오락물을 대하는 쾌감에 어리둥절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