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이 없었다면 위저는 푸른 색 재킷이라서 < Blue Album >으로 불리는 1994년의 데뷔 앨범으로 한때 떠들썩했으나 곧 망각의 늪으로 사그라진 반짝 그룹의 신세를 벗지 못했을 것이다. 위저는 < Blue Album >의 예상 밖 폭풍으로 마니아와 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록 천하를 가르는 듯 했지만 처녀작과 너무 달랐던 차기작 < Pinkerton >의 실패로 커다란 낙폭을 경험했다. 그해 최악이라는 일각의 비판과 저조한 판매고는 그룹의 음악감독 리버스 쿼모(Rivers Quomo)의 5년간의 잠적을 가져왔다.
공연을 통해 팬들이 여전하다는 걸 확신하고 자신감을 재충전한 리버스 쿼모는 2001년 처녀작의 재기와 감각을 완연히 회복한 이 앨범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고 일대 감명을 받아 만든 < Pinkerton >의 우울하고 거칠고 무거운 톤과 작별하고, 첫 앨범의 밝고 재미있는 재기발랄 분위기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녹색 재킷이라서 '그린 앨범'으로 불리는 이 앨범은 여러 가지 점에서 < Blue Album >으로의 선회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릭 오케이섹(Ric Ocasek)이 다시 프로듀서로 분했다는 것도 그렇고, 앨범 커버를 첫 앨범처럼 증명사진 찍듯 뻣뻣하게 네 멤버가 서 있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점도 형식부터 영광을 재탈환하려는 형식 욕구가 엿보인다. 9번째 수록곡은 관련이 있든 없든 제목이 'Glorious day'다.
물론 그 정점은 음악이다. 리버스 쿼모는 여기서 < Pinkerton >을 어지러이 수놓은 자기연민 즉 개인적 터치를 버렸다. 팬들의 뜨겁고 변함없는 지지에 마음이 움직이면서 팬들을 위한 앨범으로 방향을 되돌린 것이다. '사적(私的)에서 공적(公的)으로!' 앨범의 방향성을 조정했다고 할까.
앨범의 포문을 여는 'Don't let go'에서부터 'Photograph', 'Hash pipe', 'Island in the sun'으로 이어지는 네 곡의 무한 흡수력은 <블루 앨범>의 'My name is Jonas', 'Buddy Holly', 'Undone-the sweater song', 'Say it ain't so'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 이상이다. 위저의 마니아들은 지금도 사석에서 <블루 앨범>과 <그린 앨범>의 우열을 놓고 즐거운 논박을 벌이곤 한다.
곡 중간 중간 지루함을 없애는 악기와 코러스의 산뜻한 장치들, 캐치 멜로디, 3분도 채 안 되는 러닝 타임에 고저 장단 온습 강약의 완벽 드라마를 엮어내는 구성은 실로 리버스 쿼모만이 가능한 '센스의 융단폭격'이다. 포스트 그런지 이후의 록을 듣지 않은 사람도 'Hash pipe'와 'Island in the sun' 두 곡이 건네는 환상적 재기(才氣)에 모처럼 록의 매력을 실감했을 것이다. 꽤나 많은 음악팬들이 리버스 퀴모에게 '감각의 천재'라는 찬사를 보내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2002년 10월 록 전문지 <롤링스톤>이 실시한 '독자들이 뽑은 100장의 앨범' 설문 결과는 흥미롭다. 위저의 앨범이 무더기로 선정된 이 조사에서 롤링스톤은 <블루 앨범>과 <그린 앨범>을 합쳐 21위로 선정했다. 커버 색깔이 다를 뿐 앨범 타이틀은 같아 독자들이 구별하지 않고 응답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혼동도 작용했겠지만 두 앨범의 무게감이 팬들에게 비슷하게 비쳐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팬들과 평단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던 < Pinkerton >이 예상을 깨고 이 조사에서 당당 16위를 차지하며 부활(?)한 것도 <그린 앨범>의 여파임이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이 수작 앨범 덕분에 위저는 반짝 밴드로 매몰되지 않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는 주요 밴드로 위상을 다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린 앨범>은 <블루 앨범>과 마찬가지로 리버스 쿼모에 의해 '싱어송라이터 앨범'이면서 동시에 '밴드 앨범'의 성격을 공유한다. 이것은 여타 밴드들한테는 발견할 수 없는 위저만의 미덕이요, 특전이다. 리버스 쿼모는 선율 배치를 비롯한 발군의 곡 감각을 뽐내면서도 위저의 앨범을 그만의 재능에 그치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있다.
밴드만이 가능한 '파워 팝' 혹은 '이모 사운드'가 없다면 위저의 음악은 결코 헤비 사운드를 즐기는 팬들로부터 외면을 당했을 것이다. 특히 후반부의 곡들인 'Simple pages'나 'Glorious day', 'O girlfriend'에서 이러한 강공 지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평크, 팝, 헤비메탈 등이 다채로운 요소들이 버무려진 독특한 스타일이라는 점이 위저의 매력이지만 그것은 그린 데이처럼 가볍지 않고 충분히 무겁다.
멜로디는 화려하지 않지만 잘 들리고 그러면서도 밴드연주의 하모니와 코러스는 육중한 위저 사운드의 정체성을 알려면 'Knock-down drag-out'라는 곡 하나면 된다. 감각적이어서 상큼하고, 무거워서 통쾌한 이종(異種)의 맛이 동거하기에 전 세계의 팬들이 자진해서 위저에 홀리는 것이다.
오는 7월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펼쳐지는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에 출연이 확정된 위저에 쏟아질 팬들의 환호가 미리부터 그려진다. 거기에 참여할 팬들이 가장 듣고 싶은 레퍼토리는 <블루 앨범>과 바로 이 <그린 앨범>에 수록된 'Photograph', 'Hash pipe', 'Island in the sun'이다.
-수록곡-
1. Don't let go [추천]
2. Photograph [추천]
3. Hash pipe [추천]
4. Island in the sun [추천]
5. Crab
6. Knock-down drag-out [추천]
7. Smile
8. Simple pages
9. Glorious day
10. O girlfriend
전곡 작사 작곡 Rivers Quomo
프로듀서 Rick Ocase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