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은 그 자체로 파괴력을 지닌다. 대중문화의 으뜸 마케팅 요소 가운데 하나가 오랜만에 다시 보는 반가움이다. 1년 만에 돌아와도 컴백이라고 하는 판에 양파는 자그마치 6년이 흘러 신보를 내놓았으니 이건 '진짜' 컴백이다. 신곡 '사랑.. 그게 뭔데'는 발매 당일에 온라인 인기차트 정상에 오를 만큼 뜨거운 팬들의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2007년의 컴백' 감이다.
가수가 2-3년만 공백을 가져도 잊혀져버리는 '급속 망각'의 가요계 흐름을 감안하면 이례적 분전이다. 여고생이던 1997년에 데뷔한 양파는 '애송이의 사랑', '아디오(A'ddio)', '스페셜 나이트(Special night)' 등 연속 굵직한 히트를 치면서 당대 어린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제는 성인이 된 팬들이 꽤나 세월이 흘렀어도 그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은 활동할 당시 나름의 강한 자취를 새겼다는 뜻도 된다.
진정한 성공의 이유는 반가움이라기보다는 이미 오래 전에 따낸 '가창력의 가수'라는 타이틀에 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호소력을 갖춘 창법과 안정된 음색으로 R&B에 기초한 애절한 기조의 발라드를 불렀었다. 신보는 그러한 역량이 깊이를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상당수 여가수들의 아킬레스건인 '앵앵거리는 소리'가 없다.
음악을 잘하려는 욕구로 미국에 날아가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하기도 한 그의 노래솜씨가 진화했음은 신보의 첫 곡 'Marry me'에서 뚜렷이 발견된다. 재즈분위기의 이 곡에서 양파는 음의 장단을 유려하게 장악하면서 독자적 표현세계가 있음을 과시한다. 양파의 전형적 발라드인 '사랑.. 그게 뭔데' 역시 미덕은 보컬의 성숙이다. 가창력은 노력과 관록이 요구된다는 것을 다시금 일러준다.
문제는 양파의 표현영역이 그의 부재 사이에 '발라드의 여왕' 자리를 꿰찬 이수영을 통해 팬들에게 꽤 익숙해져있다는 점이다. 인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선도(鮮度)가 높아야 하는데, 이러한 식의 슬픈 발라드를 팬들은 이수영으로 충분히 경험한 터라 신선함은 확실히 덜하다. 'Marry me'와 후반부에 수록된 '그녀를 버려요'를 제외한 '나 때문에'나 '한사람', '러브 레터' 등 많은 곡이 누구 건지 모르고 들으면 이수영 노래로 착각할 수도 있다. 6년을 쉰 마당에 좀더 차별화를 위한 고민을 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과감하게 치고 나가지 못한 것은 양파 스타일을 기억하는 고정 팬들에 대한 배려일 테고, 그것은 곧 성공에 대한 부담을 의미한다. 공백기에 가요계의 모양새와 생리도 크게 바뀌었다. 가슴이 패인 대담한 의상차림의 재킷은 섹시 컨셉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스스로도 노래 잘하고 섹시한 '아이비'를 라이벌로 지목하고 있다.
잘 나가는 작곡자군단인 박근태, 김도훈, 황성제, 이승환 등의 곡으로 꾸민 것도 안전하게 가려는 전략이 읽히는 대목. 신보가 나오자마자 다섯 번째 수록곡 '그대를 알고'가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 거야'에 대한 표절 논란이 야기된 것도 이 부문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샘플링한 '사랑.. 그게 뭔데' 또한 아이비 '유혹의 소나타'의 방법적 재판(再版)이라는 점도 마찬가지. 같은 작곡자의 같은 방식이란 점은 인식측면에서 선도 하락을 유발한다.
현실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서 현재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소속사의 문제로 그는 음반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얼마나 노래하고 싶었는지 그 갈증과 동시에 그것을 억누르려는 자제가 곳곳에 드러난다. 대중가수 음반으로는 괜찮다. 분명 무지 반갑다. 그런데도 조금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양파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
-수록곡-
1 Marry me(양파 작사, 양파 작곡)
2 나 때문에(최갑원 작사, 김도훈 작곡)
3 사랑.. 그게 뭔데(강은경 작사, 박근태 작곡)
4 한사람(윤사라 작사, 김도훈 작곡)
5 그대를 알고(윤사라 작사, 김도훈 작곡)
6 Love letter(최갑원 작사, 김도훈 민명기 작곡)
7 La vie en rose(양파 작사, 이승환 작곡)
8 울지 않는 법(양파 작사, 황성제 작곡)
9 기억해(윤경 작사, 이승환 작곡)
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양파 작사, 김진환 작곡)
11 그녀를 버려요(양파 작사, PJ 작곡)
12 친절하네요(양파 작사, 양파 작곡)
프로듀서 김도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