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에도 살아남은 노장 메탈밴드의 성공비법”
<Permanent Vacation> (1987), <Pump> (1989)로 두 차례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라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에어로스미스(Aerosmith)가 4년의 공백기를 마치고 돌아온 1993년은 록 계의 지각변동이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너바나와 펄 잼의 얼터너티브 록 폭풍에 이어 앨리스 인 체인스와 스톤 템플 파일러츠가 각각와 로 얼터너티브 록 지평을 확장하며 헤비메탈을 융단폭격하고 있었고, 라디오헤드의 ,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그리고, 펄 잼의 등이 제2차 공습을 위해 장전 중이었다.
반면 오랜만에 돌아온 팝 메탈의 제왕 본 조비(Bon Jovi)와 데프 레파드(Def Leppard)는 각각 재기 작품들인 와 로 얼터너티브 록 군단에 대항해 부분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제 자신들의 시대가 아님을 통감했고, 80년대 메탈 붐을 주도했던 황태자들인 포이즌(Poison)의 , 워런트(Warrant)의 , 그리고 윙어(Winger)의 은 흥행참패를 기록했다.
이제 에어로스미스를 우상으로 여기며 성장해왔던 후배 메탈 밴드들이 팝계를 장악하던 80년대 말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헤비메탈은 확실히 '끝물'이었고, 얼터너티브 록이 빠른 속도로 음악 판을 장악해 나가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메리칸 메탈의 '원로' 에어로스미스의 11번째 앨범 은 이런 시대상황과 무관하게 발매되자마자 곧바로 정상에 올랐다. 그렇다고 에어로스미스가 얼터너티브 록으로 방향 선회를 한 것은 아니었다. 성공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어느 시대에도 통할 수 있는 좋은 곡들이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록 팬들은 도식화된 상투적인 헤비메탈 음악에 지긋지긋 했을 뿐 헤비메탈이라는 음악형식 자체를 증오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신세대의 감각을 불어넣어 트렌드를 적극 수용한 것 역시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노장이 가진 음악적 경륜과 신세대들이 가진 감각을 포용했으니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여기에는 스톤 템플 파일러츠와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s)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브렌던 오브라이언(Brendan O'Brien)의 믹싱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의 믹싱은 이들의 음악을 '최신형'으로 바꾸어 놓았다. <Permanent Vacation>, <Pump>의 '영광'을 진두 지휘했던 프로듀서 브루스 페어번(Bruce Fairbairn)과 히트곡 제조기 데스몬드 차일드(Desmond Child), 짐 발렌스(Jim Vallance)로 구성된 드림팀 역시 다시 한번 앨범을 완벽한 록 사운드로 채워 넣는데 기여했다.
미디어 시대인 만큼 뮤직비디오는 감상을 돕는 필수 요소로 작용했는데, 간판 보컬리스트 스티븐 타일러(Steven Tyler)의 친딸 리브 타일러(Liv Tyler)와 알리샤 실버스톤(Alicia Silverstone)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는 한마디로 '만점짜리'였다. 사이버 사랑, 신세대식 생활방식을 담은 다룬 X-세대 감각의 뮤직비디오는 에어로스미스의 음악이 신세대와 얼마나 잘 매치되는지 입증하였고, 두 여배우마저 90년대의 스타로 부상시켰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이후 최고의 흑인 로커로 통하던 레니 크레비츠(Lenny Kravitz)와 댐 양키스(Damn Yankees)의 두 재간꾼인 잭 블레이즈(Jack Blades)와 타미 쇼(Tommy Shaw)등 화려한 게스트의 참여 또한 앨범에 제트 엔진을 부착해 주었다. 그렇지만 에어로스미스는 트렌드와 게스트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지나친 방향선회로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신세대 감각을 입힌 '에어로스미스표 음악'이었던 것이 이 앨범 강점이었다.
조이 크레이머(Joey Kramer)의 파괴적인 비트에 맞추어 간판 기타리스트 조 페리(Joe Perry)의 흥겨운 기타 리프와 시원한 코러스로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는 'Eat the rich' (영국 34위)에서부터 앨범은 듣는 사람들을 66분4초 동안 거부할 수 없는 짜릿한 록 파티로 초대한다. 시타르와 일렉트릭 기타를 섞어놓은 것 같은 독특한 음색으로 환각적인 기타 리프를 창출해낸 'Livin' on the edge'(영국 19위, 미국 18위)와 곡 중간에 랩을 삽입하는 파격을 보인 흥겨운 록 잔치 'Shut up and dance'도 압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기에는 유려한 멜로디의 코러스 라인으로 감상인구를 사로잡아버리는 3곡의 명 발라드 'Crazy'(미국 17위), 'Cryin'(영국 17위, 미국 12위, 골드싱글 기록) 그리고 'Amazing'(영국 57위, 미국 24위)이 있다. 아마도 록음악이 나오는 카페를 출입한 사람이라면 90년대 중반 이 곡들과 친숙하지 않은 팬들은 없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앨범은 그룹 결성 23년만에 처음으로 전미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동시에 그룹의 베스트셀러였던 전작 <Pump>과 타이인 700만장이 팔려나갔고, MTV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는 마치 필연인 것처럼 이들에게 상을 안겨 주었다. 특히 최고권위인 그래미상은 94년 (최우수 하드록 앨범 상), 95년 (최우수그룹 상) 2년에 걸쳐 이들의 빛나는 업적을 치하했다.
팀의 내분과 여러 악재로 깊은 슬럼프에 빠져있던 아메리칸 헤비메탈의 대부 에어로스미스가 방황을 마감하며 1985년 를 발표했을 때, 록 팬들은 노장 밴드의 고군 분투에 격려의 박수를 보냈고, <Permanent Vacation>, <Pump>과 함께 제2전성기의 불꽃을 화려하게 지폈을 때 록 팬들은 열렬히 환영했지만 그 불꽃이 오랫동안 지속되리라 믿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은 이것을 입증하였고, 그 불꽃은 다시 한번 정상을 차지한 '97년의 <Nine Lives>를 거쳐 새로운 세기를 넘어서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전성기를 마치고 오랜 부진 속에 복귀한 그룹이 이토록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해낸 사례는 팝의 역사상 없었다. 트렌드의 적극적인 수용을 통한 자체 혁신으로 일궈낸 개가였다.
-수록곡-
1. Intro
2. Eat the rich
3. Get a grip
4. Fever
5. Livin' on the edge
6. Flesh
7. Walk on down
8. Shut up and dance
9. Cryin'
10. Gotta love it
11. Crazy
12. Line up
13. Can' t stop messin'
14. Amazing
15. Boogie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