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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jacion Oral Vol.1
샤키라(Shakira)
2005

by 배순탁

2005.07.01

비단 라틴 그래미 시상식이 독립적 영토를 확보했다는 사실적 근거를 말하지 않아도 이제 라틴 음악은 월드 뮤직이 유행의 꽃을 피우고 있는 현재, 가장 선호도가 높은 장르 중 하나로 폭 넓은 인기의 세례를 누리고 있다. 이전까지는 지구촌 시장 진출을 위해 영어로 부르는 것이 필수였지만 지금의 탈국적, 무국적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장점은 있겠지만 과거와 같은 큰 메리트는 더 이상 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번에 라틴어 새 음반 < Fijacion Oral Vol.1 >으로 다시금 정열의 여신이 될 준비를 끝마친 샤키라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다. 그녀에게는 아마도 이미 영어 앨범 < Laundry Service >와 2004년의 라이브 레코드 < Live & Off The Record >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마련해두었기에, 영어로 부르든 라틴어로 부르든 팬 층의 쏠림 현상은 거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자신감의 발로 덕분인지 신보에서 샤키라는 그 매혹적인 중음역대 허스키 보이스를 마음껏 내지르며 라틴의 젊은 여제가 다시 돌아왔음을 선포하고 있다.

올해 역시 새 앨범을 내놓았던 제니퍼 로페즈가 블랙 뮤직 쪽으로의 완전 경사(傾斜)를 택한 데 반해 샤키라의 입장은 그야말로 단호한 듯 보인다. 라틴 팝 하나만으로도 지구촌 음악 팬들을 석권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무모한 수도 있을 용감성과 대담성을 한껏 표출하고 있다. 라틴의 빅 스타인 알레한드로 산즈(Alejandro Sanz)와의 듀엣곡이자 첫 싱글로 발표되어 전세계 라틴 차트를 싹쓸이하고 있는 'La Tortura'(고문)과 그녀 특유의 낭만적 활기와 생기로 곡 전체를 리드하고 있는 미드 템포의 감성 라틴 넘버 'La Pared'(벽)만 들어봐도 이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전작 < Laundry Service >에 비해 전체적으로 톤 다운(tone-down)된 사운드 스펙트럼을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 샤키라의 신보 파악을 위한 핵심 키워드이다. 'Whenever, Whatever' 보다는 'Underneath Your Clothes' 쪽에 더 가깝다 말해도 좋을 정도로 템포를 한층 늦춰 로맨틱한 분위기를 강화하는데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예쁜 라틴 발라드 소품 'Obtener Un Si'(예스라고 해줘), 록 쪽으로 제법 무게가 실린 러브송 'Dia Especial'(특별한 날), 멜로디컬 발라드 'No'(이제 그만) 등이 잘 말해준다.

이 외에 흥겨운 리듬과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Escondite Ingles'(잉글리쉬 숨바꼭질), 샤키라의 가사 쓰기에 대한 재기를 엿볼 수 있는 'Las De La Intuicion'(여자의 직감), 힘차게 방점을 찍는 'Lo Imprescindible'(피할 수 없는) 등은 < Laundrey Service >와의 지나친 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힘을 실은 고(高)중력 넘버들로 해석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샤키라는 남미 권에서 그 열정적인 무대 매너와 파워풀한 목소리로 명성이 자자하다. 같은 콜롬비아 출신이자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상 문학상을 받은 문호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그녀를 두고 “샤키라의 음악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아무도 그녀처럼 노래하거나 춤출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은 이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유명한 일화가 되어버렸다. 곡을 쓰는 실력도 일취월장 했지만 하나의 분명한 악기로 기능하고 있는 그녀의 보컬은 여전히 마법을 거는 듯 아름답고 또한 칭찬할 만하다.

음반 재킷에서 보듯, 이제는 섹시 스타의 도발적 이미지보다는 성숙한 한 명의 아티스트로 다가서려는 샤키라의 이번 도전은 아마도 큰 지각변동이 없는 한 히트의 존에 무사히 연착륙할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광 팬을 자처했던 대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 역시 이 앨범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게 틀림없다. 지금, 샤키라를 필두로 라틴 팝이 다시 한번 정열의 마차를 타고 그 화려한 쇼 무대를 준비 중이다.

-수록곡-
1. En Tus Pupilas 너의 눈동자 안에서
2. La Pared 벽
3. La Tortura 고문
4. Obtener Un Si 예스라고 해 줘
5. Dia Especial 특별한 날
6. Escondite Ingles 잉글리쉬 숨바꼭질
7. No 이제 그만
8. Las De La Intuicion 여자의 직감
9. Dia De Enero 1월의 어느 날
10. Lo Imprescindible 피할 수 없는
11. La Pared (Version Acustica) 벽 (어쿠스틱 버전)
12. La Tortura (Shaketon Remix) 고문 (셰이크톤 리믹스)
배순탁(greattak@iz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