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Offramp
팻 메스니(Pat Metheny)
1982

by 정우식

2002.01.01

팻 메스니의 음악은 동사다.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는 운명을 지난 사람처럼 그의 연주는 안정된 편안함을 찾기보단 보이지 않는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전작과 차별화된 시도로 재즈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팻 메스니 그룹은 그래서 음의 순례자라할 만하다.

그 순례 여정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작품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앨범 <Offramp>이다. 팻 메스니가 재즈를 넘어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발돋음하게 된 계기가 돼 준 본 작은 '기타 신시사이저' 연주의 매력을 한껏 발휘하며 1980년대의 재즈 미학의 한 부분을 창신(創新)한다.

날이 선 트럼펫 소리와 흡사한 기타 신시사이저 연주는 앨범이 나올 당시까진 청중들에겐 생소한 영역이었다. 팻은 기타신시사이저를 통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음까지 연주해내며 청취 경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기타 신시사이저연주는 <Offramp>의 주(主)재료가 돼 연주 전체에 신비스런 분위기를 만든다. 고독이 몸부림치는 듯한 기타 신시사이저의 울부짖음은 팻의 음악 동반자 라일 메이스의 물방울 타건과 만나며 기성의 연주 스타일로 대변되는 램프(ramp)를 벗어난(off) '신천지'로의 음악을 감행한다.

우리나라 재즈 팬들에게 <Offramp>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바로 팻 메스니란 존재를 우리에게 처음 소개해 준 앨범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서울 청계천 해적판 가계들을 통해 배포됐을 때 만해도 그가 재즈 연주자임을 안 사람은 별로 없었다.

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록에 심취했던 록 음악 수절파들은 본인들의 음악 취향을 고민케하는 연주를 찾아 헤매던 중 팻 메스니의 연주를 접한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그의 연주 스타일에 팬들은 환호했고 팻 메스니와 그의 친구들이 발표한 <Offramp>는 푸른색의 자켓에 찍혀 음악 매니아들 사이에 회자된다. 설사 재즈를 모르더라도 일반 음악팬들도 기꺼이 다가갈 수 있는 연주, 그것이 팻 메스니의 연주였다.

앨범의 백미이자 팻 메스니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명곡 'Are you going with me?' 는 우리 내면에 살고 있는 한 보헤미안의 슬픈 노래다. 단 고드리브(Dan Gottlieb)의 시작을 알리는 드럼의 타(打)와 스티브 로드비(Steve Rodby)의 어쿠스틱 베이스 진행은 이제 막 떠나려는 기차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팻은 곡 중반부부터 유창한 기타 신시사이저 솔로로 죽는 날까지 함께 가져 가야만하는 인간의 고독을 그려냈다.

정갈한 팻의 기타 울림은 청중을 향해 손짓한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 맑고 은은한 느낌을 자아내는 'Au lait'는 안개가 자욱한 호수 한가운데를 노니는 나룻배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운치 있는 명연이다. 업비트의 경쾌한 연주 'Eighteen'은 사춘기 소녀의 발랄하고 수줍은 감성이 전해진다. 70년대 싱어송 라이터 제임스 테일러 (James Taylor)에게 바치는 포크 재즈 'James'는 봄바람처럼 살랑거린다. 포크 재즈(Folk Jazz)라고도 불리는 팻 메스니의 연주는 진지할 것을 요구 하지 않는다. 팝을 좋아하든 록을 좋아하든 그는 대중에게 그저 들어와 만끽하라고 할 뿐이다.

가슴 뿌듯할 만큼 붙잡고 싶은 기타 선율만큼 귀에 아른거리는 실험적인 사운드는 팻 메스니 음악에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게스트로 참여한 브라질 출신 퍼커션 주자 나나 바스콘켈로스(Nana Vasconcelos)는 앨범에서 팻의 기타연주만큼이나 독보적인 존재다. 방언을 연상시키는 중얼거리는 보이스는 동양적인 신비감마저 전해준다. 브라질 전통 타악기 베림바우와 각종 퍼커션을 능숙하게 다루는 나나의 피처링은 당시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 그룹의 월드뮤직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프리/아방가르드 스타일에 대한 관심도 엿보인다. 예고 없이 울리는 자명종처럼 등장하는 타이틀 트랙 'Offramp'는 기타 신시사이저와 퍼커션이 만나며 형언할 수 없는 충격파를 전해준다. 포크 선율의 상큼한 멜로디가 팻의 음악세계의 전부가 아님을 대변해 준다.

<Offramp>가 발매됐을 80년대 초반, 재즈는 창조의 고갈상태에 놓여 있었다. 70년대 재즈 록 사단의 잇단 해산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전자음과 단순한 비트로 채색된 상업적인 연주곡으로 포장됐고 윈튼 마샬리스로 대변되는 포스트-밥(Post Bop) 계열 재즈 정통 재즈를 표방하며 난해한 곡 구성으로 대중성을 외면한 고급 예술의 영역을 향해 파고들었다.

기성의 연주 음악에 상상력을 자극을 줄 수 있는 참신한 인재에 목말라 있던 차에 팻 메스니의 부상은 재즈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청바지 차림의 줄무니 티를 입고 연주하는 곡마다 친절한 해설을 곁들이는 팻 메스니의 무대 매너는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텁텁한 분위기에서 연주하는 재즈 연주와는 완전 다른 차원의 느낌이었다. 자유분방한 느낌의 연주, 장르 영역을 뛰어 넘는 도전적인 연주 구성, 여기에 청중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멜로디 제조 능력까지 겸비한 아티스트의 출현인 셈이다.

80년대 내내 계속된 팻 메스니 그룹의 음악 여행은 그칠지 모르는 발군의 창작욕을 발휘하며 잇단 수준작들을 쏟아낸다. <Offramp>의 신선한 충격은 <The First Circle>(1984)의 'The first circle' ,<Still life/talking>(1987)의 'Last train home' <Letter from Home>(1989)의 'Have you heard'로 이어진다. <Offramp>의 탄생은 팻 메스니와 그의 친구들이 제시한 재즈계 내 음악 충격파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

-수록곡-
1. Barcarole
2. Are You Going With Me?
3. Au Lait
4. Eighteen
5. Offramp
6. James
7. The Bat, Pt. 2
정우식(jassbo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