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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ce Is Easy
스타세일러(Starsailor)
2003

by 배순탁

2003.10.01

음악의 시작은 목소리였다. 인간들은 오직 그들의 성대 울림만으로 하늘의 창조주를 찬양했으며 삶의 진한 궤적들을 노래하였다. 그들은 목소리를 통해 홑으로 된 음들이 겹으로 열리는 감동의 순간을 맛볼 수 있었다. 보조 기구가 발명되어 목소리와 함께 음악의 길로 매진한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목소리는 최초의 악기였다.

'진짜' 악기가 등장하며 목소리와 함께 뮤직 스페이스를 누비고 다닌 이후에도,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목소리의 힘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 아직도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때 악기보다는 목소리에 먼저 반응한다. 거의 무조건 반사다. 특정 악기를 전문으로 연주하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이 명제는 대개의 경우 참일 것이다. 목소리는 오선지 위의 음표들을 음화(音化)하는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하며 음악은 그것으로 인해 자존(自存)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는 록 음악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이즈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스타세일러(Starsailor)와 뮤즈(Muse) 신보 사이의 명(明)과 암(暗)이 여기에서 갈린다. 스타세일러는 보컬을 맡고 있는 제임스 월시(James Walsh)의 탁월한 가창력으로 인해 자신들만의 음악 성채를 굳건히 한 반면, 뮤즈는 아직도 라디오헤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매튜 벨라미(Matthew Bellamy)의 목소리 때문이다. 동시대의 모던 록 공동체들 중 단연 발군임을 자랑하는, 그리고 라디오헤드와는 애초부터 방향성이 다른 뮤즈의 연주 하모니조차 이럴 때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만큼 목소리가 갖는 청각적 영향력은 여타 악기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설명하였듯, 스타세일러는 정확히 반대다. 그들은 제임스 월시의 목소리 덕에 결국 강력하다. 제임스 월시 역시 선배들의 잔영이 감지되는 보이스를 지녔지만 하나가 아닌 여럿이 녹아 들어있기에, 즉 다중(多重) 캐릭터를 지닌 목소리로 인해 그만의 보컬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과거의 유산들을 음악적 자양분 삼아 체내에 흡수한 뒤, 자신만의 보컬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것. 이를 통해 스타세일러는 이른바 'post'(~의 후예)의 족쇄에서 벗어나 그룹만의 독자성을 일궈낼 수 있었다. 데뷔작의 수록곡들, 예를 들면 'Fever', 'Alcoholic', 'Good souls' 등을 통해 이를 대번에 파악할 수 있다.

신보에서도 제임스 월시만의 음악 공식은 계속된다. 초반부의 원, 투, 쓰리 펀치인 'Music was saved', 'Fidelity', 'Some of us' 등을 포함, '월 오브 사운드'를 도입한 명 프로듀서 필 스펙터(Phil Specter)가 사운드 조율을 맡은 첫 싱글 'Silence is easy' 등을 통해 그의 보컬 주술이 나래를 활짝 펴며 듣는 이들의 청(聽) 감수성과 조우한다. 다소 감정 과잉의 상태였던 과거에 비해 목소리가 한결 여유로워져 무엇보다 듣기에 편해 좋다. 거슬림 없이 쭉 나아간다.

처녀작이 또한 버클리 부자에게서 물려받은 다소 어두운 포크적 감수성으로 채색되었다면 본 2집 앨범은 보다 다채로운 소리샘을 담아내 차별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스케일이 커졌다. 'Telling them', 'Bring my love', 'Four to the floor' 등에서 도입된 현악 세션을 통해 그가 인디 신이라는 조그마한 인큐베이터에서 메이저의 화려한 무대 위로 본격 도약하려 하고 있음을 대번에 파악할 수 있다. 곡들 사이사이에 'Shark food', 'White dove', 'Born again' 등을 끼워넣으며 능수능란한 분위기의 전환을 꾀한 점은 '곡 배치'라는 측면에서 눈길을 잡아 끈다. 전체적으로 소리의 볼륨을 대폭 확대해 더 '로킹'해진 점도 달라진 스타세일러를 느끼게 해 준다. 예상 외로 많은 실험을 가한 작품이다.

자연스레 음악의 세기와 넓이를 동시에 확보한 스타세일러의 이 탁월한 소포모어 앨범에서 제임스 월시는 영락없는 음악 감독의 풍모를 뽐내고 있으며 나머지 멤버들의 연주 기량 역시 일취월장, 밴드 음악의 피크를 찍고 있다. 바로 목소리와 악기들이 한데 어울려 연출하는 한 편의 천상의 화음이다. 스타세일러는 지금 그들 앞에 놓여져 있는 별천지의 세계를 향해 배를 진수하였다. 음반의 높은 완성도를 생각해보면, 꽤 긴 항해가 될 것 같다.

-수록곡-
1. Music Was Saved
2. Fidelity
3. Some Of Us
4. Silence Is Easy
5. Telling Them
6. Shark Food
7. Bring My Love
8. White Dove
9. Four To The Floor
10. Born Again
11. Restless Heart
배순탁(greattak@izm.com)